[여적]95세 송해의 기네스북 도전
[경향신문]
여기 자랑스러운 한 어르신이 있다. 1927년 출생이니 만 95세다. 한국전쟁 때 홀로 월남한 이산가족이다. 전쟁 중 통신병으로 휴전협정 사실을 “전군에 모스 암호로 날린” 이도 그다. 유랑극단 출신으로 스스로 ‘딴따라’를 자처하는 대중문화 예술인이다. 그에겐 ‘국내 최고령 연예인’ ‘국민 MC’ 등 수식어가 많다. ‘일요일의 남자’로 중장년 여성들에겐 “영원한 오빠”다. 30여년을 매주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고향 땅은 정작 밟지 못했다. 그는 KBS <전국노래자랑>을 1988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방송인 송해다.
KBS가 25일 그를 ‘최고령 TV 음악 탤런트 쇼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 세계기록’ 등재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기초 조사는 마치고 후속 절차를 진행 중이다. 등재가 된다면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령 MC’로 공식 인증되는 셈이다. KBS 2TV에서는 그의 인생사를 트로트 뮤지컬로 재구성한 설 특집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도 31일 저녁 방송한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과 분단 등 한국 근현대사 산증인이다. 연예인에 앞서 아들이자 남편, 아버지로서 격동의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왔다. 지금도 부모님과 고향이 그리워 눈물짓고, 부인과 아들을 먼저 보낸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리다. 노거수의 나이테처럼 눈가 주름마다에는 ‘연예인 송해’와 ‘인간 송복희(본명)’의 삶이 아로새겨져 있다. 다큐멘터리와 책 <송해 1927>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오롯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는 대중문화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방송인, 희극인, 가수, 영화배우로 대중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전국노래자랑>으로 ‘국민 친구’가 된 지 오래다.
대중의 사랑을 그만큼 꾸준히 받는 연예인도 없다. 자신의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해온 그에게 바치는 대중의 선물이다. 그는 화사한 봄꽃보다 곱게 물든 가을 단풍으로 그려진다. 낡고 닳음이 아니라 원숙과 지혜로움이 생각나 정말이지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의 묘미를 느낀다. 그를 통해 저마다 한 편의 소설처럼 치열하게 살아온 수많은 어르신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지닌 평범함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는다.
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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