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건축이 뽐내면 작품은 죽는다"..그가 화려함을 버린 이유

울산|김종목 기자 2022. 1. 2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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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건축가 안용대(가가건축사무소 대표)는 지난 1월11일 페이스북에 ‘건축가 없는 공공건축’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1월6일 울산시립미술관 개관식에서 미술인과 건축가가 뒷전으로 밀린 걸 비판하는 내용이다. 전·현직 관료·정치인들이 주연 자리를 독차지한 개관식에서 미술관 신임 관장 서진석이 마이크를 잡았으나 ‘미술관 건립 경과보고’만 하고 말았다. 안용대는 2014년 그가 설계자로 참여한 ‘부산시립미술관 부설 이우환공간’ 개관식에서 건축가 자리가 아예 없던 일도 떠올리며 “그나마 시장표창 주고, 세 번째 줄에 자리 만들어 준 울산시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2011년 11월 안중근기념관 준공식 때 설계자인 김선현·임영환이 초대받지 못했다. 건축인들이 ‘건축가의 자리가 없는 사회를 통탄한다’ 제목의 성명서를 냈다. 당시 한겨레 건축 전문기자였던 구본준은 같은 달 17일 성명 소식을 전하며 이런 사례를 적었다. “최근 가장 주목받은 세계적 공공건축물로 꼽히는 베를린 국회의사당 리노베이션 준공식. 새 의사당의 열쇠를 국회의장에게 건넨 사람은 리노베이션을 맡은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였다. 하나 더. 올해 준공된 로마의 새 명물 국립현대미술관 준공식 초청장에 적힌 공식 초대자는?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도 미술관장도 아닌 건물의 설계자 이라크계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였다.”

울산시립미술관 건축가 안용대(가가건축사무소 대표)가 지난 18일 미술관 앞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잔디 마당은 본관과 카페 건물을 수직으로 잇고, 울산 동헌과 객사를 좌우로 잇는다. 김종목 기자

안용대 페이스북 글을 읽은 뒤 미술관에 개관 1주일 만에 1만 명(22일 기준 2만 명)이 다녀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출품작 못지않게 건축물 사진도 많이 올랐다. 지난 18일 울산시립미술관에서 안용대를 만났다.

■“초대 작가부터 먼저 인사를…”

“기분 나빴던 걸 해소하려는 부분도 있죠. 인간인데 왜 그런 게 없겠습니까? 있겠죠.” 개인 기분보단 더 큰 문제라고 여긴 건 관행이다. 그가 보기엔 특별전 개막을 겸하는 미술관 개관식의 주연은 우선 작가들이어야 한다. 그다음이 미술관 학예사들과 관장, 건축가다. 공공건축의 결과물을 ‘지자체장의 치적’으로 삼는 관행과 미술인·건축가를 위계 관계에서 관료 아래로 두는 문화에 제동을 걸고 싶었던 듯하다. 그는 의무감 때문에 이 글을 올렸다고 한다.

안용대 페이스북 화면 캡쳐.

“‘조금 더 문화적으로 근사할 수 없냐’가 말하고 싶었던 거죠. 사실 (정치인·관료를 주빈으로 하는) 관행을 그대로 따르는데, 폼 안 나는 짓을 여전히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시장이라면 개막전 초대 작가들을 먼저 인사시켜주고 싶어요. 그게 굉장히 폼나는 시장의 자세예요. 그게 시대 가치거든요. 여러 정치 행정가들이 나가서 먼저 몇 마디 한다고 그거 뭔 도움이 되겠어요. 재미없죠. 전략적이지도 못하죠. 문화를 먼저 존중하면 정치적으로도 더 대접받고, 이슈화되고, 선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런 스킬이 모자랐느냐’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안타까운 거예요.”

안용대는 페이스북에 국공립 미술관 홈페이지에 건축물이나 설계 건축가에 대한 소개가 없다는 점도 지적했는데, 인터뷰 때도 이 사실을 거론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설계자 민현준 선생 소개가 한때 올랐는데, 어느 날 없어졌더군요. 민 선생한테 물어봤더니 자신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페이스북엔 개관식·개막식·준공식을 숱하게 다녔을 한 정치인이 “설계가 예술의 한 장르임을 아는 데는 긴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침묵을 지켜온 설계사의 책임도 있어 보입니다. 미래를 위해서도 이렇게 안 대표처럼 목소리를 높이기를 바랍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안용대는 “저로서는 떠들 이유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쉽게 떠들 일’은 아니다. 공공건축에서 갑은 늘 공공기관이기 때문이다.

안용대는 ‘관람객 동선·편의’와 ‘작품 전시 기능’을 실현하는 데 주력했다. 전면 통유리로 지하 공간의 채광·환기 문제를 해결했다. 사진은 지하 1·2층 공간이다. 지하 2층 아래 작품은 슈리 칭의 ‘다음으로 가는 정원’(2021)이다. 폐차에 버섯을 심었다. 버섯은 생태계 파괴에서 생존하려 애쓰는 자연을 상징한다. 80개의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원형으로 선회하는 구조물은 얀 레이의 ‘레버리 리셋’(2016~2017)이다. 김종목 기자

■잘난 체 하는 건축이 아니라 겸손한 건축을

안용대는 비아냥조의 “더 유명해지셔야죠”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튀는 발언’으로 유명해지려거나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여러 SNS 사용자들의 스타일과도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한 예가, 그는 페이스북에 달린 150여 개 댓글 모두에 하나하나 답글을 썼다. 유명인이나 웬만한 전문직 종사자들은, SNS 답글을 가려 달기 일쑤다. 울산시립미술관 건축에 그런 품성이 반영된 듯했다.

미술관은 건축가들이 한 번쯤은 설계하고 싶은 건축물이다. 프리츠커 역대 수상자들의 건축 이력엔 미술관(박물관)이 종종 들어간다. 안용대는 ‘미술관 건축’에 대한 욕망을 버린 듯했다. 최대한 건축 자체의 성격을 최소화한 ‘중성적인’ 공간을 지으려 했다. 2017년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로마 막시 미술관을 찾았던 일을 떠올렸다. “공간이 굉장히 좋아요. 그런데 (건축에 눌려) 미술이 안 보여요. 시민분들은 울산시립미술관도 프랑크 게리의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근사하고 독특하며 두드러진 외양을 가진 건축물을 짓기를 원했을 수도 있죠. 전, 이 땅의 건축은 오브제처럼 건축이 잘난 체하기보단,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취하는 걸 하고 싶었어요. 울산시립미술관 건축 때 역사와 원도심을 존중하는 모습을 취하는 것이 또 다른 경쟁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건축가들은 돋보이는 건물을 지으려 한다. 그 욕망이 때로는 주변을 압도하고, 건축물 본연의 기능을 무시하는 일로도 나타난다. 안용대를 만난 18일 SNS에선 한 건축가의 ‘인스타그램을 위한 건축’이 비판 조로 회자했다. 그가 지은 건축물을 다룬 기사도 올랐다. 그중 하나는 독특한 외양의 복지관인데, 정작 휠체어가 다닐 수 없어 비판을 받은 것이다.

■미술관은 작품의 배경이어야 한다

안용대는 미술관 건축이 미술 작품의 배경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는 “전시장은 단순해야 한다. 건축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미술이 죽는다”고 말했다. “오브제나 화려한 공간을 추구하기보다는 기능적이면서도 공간의 경험을 제공하는 건축물을 지으려고 했다”고 말한다. 실내도 뽐내는 구조물보다는 정제된 공간감을 전달하려고 했다. 관람객이 쾌적함을 느끼도록 가능한 빈공간을 만들어 벤치 정도만 뒀다.

안용대는 ‘관람객 동선·편의’와 ‘작품 전시’에 주력했다. 통로엔 작품도 설치할 수 있게끔 했다. 슈리 칭의 ‘다음으로 가는 정원’(앞)과 백남준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 김종목 기자
안용대는 전시실도 공간 경험을 만끽하도록 넓고도 정제된 느낌을 주려했다고 말한다. 장종완의 ‘슈가캔디마운틴’(2021). 김종목 기자

‘관람객 동선·편의’와 ‘작품 전시’에 주력했다. 장방형 공간은 전시장과 통로로 나뉜다. 전시실과 전시실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맬 일이 없다. 통로도 전시장 못지않게 널찍하다. 백남준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 슈리칭 ‘다음으로 가는 정원’, 얀 레이의 ‘레버리 리셋’ 등 작품이 지하 1층 통로에 설치됐다. 안용대는 “관람 동선은 알기 쉽게, 전시실은 작품을 방해하지 않는 중성적인 공간으로 계획했다”고 말했다. 이날 별도로 만난 서진석 관장은 “안과밖에 경계가 없는 중간지대가 많이 확보됐다. 관람객이 쉽게 돌아다닐 수 있는 동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미술관은 산책하러 나가거나 영화관 가듯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지론을 반영한 것이다. 안용대는 “미술관이 만만하고 재미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안용대 이력을 보면, 미술관 건축에 욕심을 낼 법도 했다. 2008년부터 미술품을 사들인, 진성 컬렉터다. 국내외 미술관도 자주 다녔다. 2001년 부산시립미술관의 ‘도시와 미술전’부터 2021년 부산현대미술관의 ‘혁명은 도시적으로’까지 여러 차례 설치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미술을 잘 알고, 좋아하기 때문에 건축보다 미술 작품을 우선하는 미술관을 지향한 듯했다.

■조선시대부터 층층 쌓인 시간의 켜를 표현

이 결과물은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다. 울산시립미술관 부지는 문화재 사이 놓였다. 미술관 서쪽이 울산 동헌, 동쪽이 객사터다. 문화재 사이 든 현대식 건물로는 울산시립미술관이 최초라고 한다. “미술관이 문화재 배경으로 존재해야 한다. 너무 두드러지면 문화재가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의 핵심 관건 중 하나는 주위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안용대에겐 울산의 옛 중심 도호부 자리의 ‘역사 경관’을 고려해야 했다. 안용대는 미술관이 동헌과 객사의 풍경을 해치지 않고, 두 문화재의 투명한 배경이 되도록 설계했다. 울산초등학교부지에서 발굴된 객사 터를 두곤 “과거를 기억하는 땅의 흔적”을 살리려 했다. 그는 ‘레이어드 스케이프’라고 표현했다. “시간의 켜들이 조선시대부터 층층이 쌓인 거죠. 땅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시간을 가진 땅의 의미를 살려야 했죠.”

울산시립미술관 전경. 왼쪽이 울산 동헌, 오른쪽이 객사터다. 객사터는 지금 주차장이다. 미술관 앞은 인도로 설계했으나, 관청 간 협의 문제 등 때문에 지금은 인도가 차도 사이 섬처럼 떠 있다. 울산시립미술관 제공
울산시립미술관 설계 조감도. 안용대 제공

■유리와 마당으로 난제를 풀다

지금 울산시립미술관 부지는 미술관 짓기가 좋지 않았다. 문화재 사이에 놓인 데다 좁고 기다랗다. 15m 차가 나는 경사지다. 문화재보존구역이라 층수도 2층으로 제한됐다. 메인 전시장을 지하에 둘 수밖에 없었다. 채광이나 환기 문제를 설계로 극복해야 했다.

“채광을 위해 건물 곳곳에 유리를 많이 썼습니다. (지하 공간이라) 관람객이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하기 위해 사용한 것도 있고요.” 지하 2층 메인 전시장도 지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전면 통유리에 빛이 들어온다. 1층 아카이브 공간도 통유리 곁에 만들었다. 화장실 부근 건물 구석 공간에도 천창을 내 빛이 스며들도록 했다.

울산시립미술관 1층의 아카이브 공간. 건물 곳곳에 통유리와 천창을 둬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김종목 기자

“이 유리라는 재료가 동헌과 객사를 잇는 역할도 합니다. (투명한 재료로 각 공간들을 연결해) 큰 공원 하나를 만드는 게 건축의 숨은 뜻이기도 했고요.” 카페 건물과 전시 건물을 분리했다. 그 사이 잔디밭 마당을 만들었다. 이 마당은 수직으로 건물과 건물을, 좌우로는 동헌과 객사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객사터 복원과 주변 일대 재개발이 끝나면 이 마당은 넓은 보행로 역할도 하게 된다. ‘마당-툇마루-방-툇마루-후원’이라는 한국 전통 건축 개념도 적용했다.

각 층 지붕엔 한옥 처마 개념을 도입했다. “1층 지붕 위는 전시를 보다가 쉬는 곳, 지붕 아래는 만남 같은 어떤 행위들이 일어나는 곳을 의도했어요. 비를 피하는 기능도 하고요.”

■카페가 아니라 관람객에게 내어준 테라스

통유리 역할은 또 있다. 본관과 카페 통유리를 통해 마당에서 뛰어놀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심플한 외양의 이 건축물엔 이 밖에도 여러 공공건축 요소가 들어갔다. 카페 건물 아래 주차장은 전시 공간과 분리되면서 미술관 휴관 때도 운영한다. 안용대는 “원도심 지역이기 때문에 주차장이 모자란다. 매주 월요일 미술관 휴관일엔 그냥 공용주차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건물은 늘 열려 있어야 사람들이 모인다’는 원칙을 구현한 것이다.

안용대는 울산시립미술관 건축 때 사람, 자연, 도시 주변 환경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우선하려 했다. 공공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공성이다. 시민을 위해 1층 옥상에 낸 테라스는 쉼터이자 전망대 역할을 한다. 이 공간에서 오래되고 작은 건물이 밀집한 원도심과 고층 타워들이 들어선 신도시, 동헌과 객사는 또 다른 전시 작품이 된다. 한옥 처마 모양의 지붕은 비를 피하고, 해를 가리는 기능도 하게끔 했다. 김종목 기자
울산시립미술관 1층 테라스. 김종목 기자

1층엔 테라스를 내 테이블과 의자를 뒀다. 미술관을 자주 다닌 이라 이런 공간 설계가 가능했다. “사실 한 시간만 작품을 보고 다녀도 되게 피곤하거든요. 어느 순간에 좀 나가서 쉬기도 해야죠.” 동헌과 객사터, 저층의 오래된 원도심의 모습과 고층의 신도시를 두루 볼 수 있다. “묘한 느낌이 있어요. 재개발의 숙명 속에 지금 남겨진 원도심의 자그만 집들, 저 멀리 초고층의 타워들 하며 말이죠. 이 테라스에서 익숙했던 도시를 새롭고 다른 모습으로 보게 됩니다. 도시가 또 하나의 전시물인 거죠.”

장애인 화장실은 물론이고 어린이 전용 화장실과 세면대도 별도로 설치했다. 2층 전시실은 어린이 전용 전시 공간이다.

지상 보행도로와 지하 2층 전시실을 연결하는 성큰(sunken) 공간의 계단 하나의 높이는 12㎝로 낮다. 계단 자체도 살짝 기울어졌다. “포르투갈 어느 도시에 갔는데, 유사한 계단이 있더라고요. 스텝을 밟아 보니까 되게 편해요. 그때 보폭과 높이를 줄자로 쟀어요. 그걸 이번에 적용한 거죠.” 애초 장애인 휠체어도 오가게 설계하려 했다. 건물 끝까지 경사로를 내도 장애인편의시설 BF 인증 기준을 맞출 수 없어 포기해야 했다.

울산시립미술관 성큰(sunken) 공간이다. 계단 하나 높이는 12㎝로 낮다. 기울기를 져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오른쪽은 수공간이다. 겨울이 끝나면 물을 채울 계획이라고 한다. 김종목 기자

■“타일 하나 마음대로 고를 수 없어”

이 계단 옆이 수공간이다. 안용대가 이번 미술관 건축 때 건축의 조형적 요소를 그나마 적용한 곳이다. “나중 (겨울이 지나) 물이 채워지면, 바람에 출렁거리는 물결이 건물 일대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하늘이 비치기도 하고, 지하라는 걸 느끼지 않게도 해주고요.”

이 공간은 사연이 있다. “전임 시장이 잔디밭으로 바꿨다가, 시장 교체 뒤 ‘공론화 과정’에서 자문위원 한 분이 ‘이 동네에 물이 흘렀다’고 해서 수공간으로 다시 계획을 바꾼 거죠.”

건축가로서 수모의 시간을 겪기도 했다. 2018년엔 울산시립미술관 설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내용 등을 담은 ‘공론화 전문가 위원회’가 여러 차례 열렸다. 그해 11월 2차 위원회 자리에서 안용대는 “공정한 공모를 거쳤다. 건축 설계는 중앙 부처 등 심의를 거쳐 결정된 사안이다. 공모전을 다시 해야 한다는 지적은 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공론화는 ‘미술관에 시정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신임 시장 뜻에 따라 진행됐다.

울산시립미술관 주출입구 투시도다. 건축 과정에서 다소 변경됐다. 수공간은 왼쪽으로 옮겨졌다. 계단은 휠체어도 오가게끔 경사로로 설계했으나 건물 끝까지 경사로를 내도 장애인편의시설 BF 인증 기준을 맞출 수 없어 포기해야 했다. 안용대 제공

한국 공공건축에서 건축가의 설계 의도는 제한되기 일쑤다. 설계의 끝은 시공인데, 그 시공 과정에 관여하기 힘들다. “조각을 한 사람은 자기가 디자인해 만들면 되죠. 공사 과정에 설계자가 의도가 녹아나지 않거나 표현이 안 되면 완성된 작품이 아닌데, 감리도 할 수 없요. 타일 하나도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를 수가 없어요. 명품은 디테일에서 결정나는데….”

2020년 11월 ‘설계자가 건축물의 건축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여 공공기관, 시공자, 감리자 등에게 설계의 취지 및 건축물의 시공, 유지·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제안하는 행위’인 “‘공공건축 설계의도 구현’ 제도가 시행됐지만, 울산시립미술관은 이 제도 시행 전 설계·공사에 들어갔다. 그는 시장에게 건축가가 할 수 있는 권한을 다 달라고 했다. 그나마 재료 선정 권한 등을 부여받았다. 공사 착수 뒤 2주에 한 번꼴로 자기 돈 쓰며 울산과 건축사무소를 둔 부산을 오갔다.

설계도를 보면, 미술관과 주차장 입구 쪽은 원래 인도다. 로터리와 건널목 문제가 시와 경찰서 간 해결되지 못했다. 결국은 ‘미술관과 차도 사이 인도가 섬처럼 들어가 버렸다. 안용대는 “설계도 설계지만, 시민 보행 안전 문제도 있다.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축, 기계, 전기, 소방, 통신 분야 공사가 각각 분리돼 발주되는 문제도 지적했다. 안용대는 “건축 퀄리티를 위해서라면 이 분야도 일원화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 자연, 도시에 대한 존중과 배려

안용대는 ‘오브제’처럼 돋보이는 건축물을 짓기도 했다. 주로 민간 의뢰를 받았을 때다. 그가 건축상을 받은 몇몇 건물을 보면, 풍광의 중심을 차지한다. 2018 부산다운건축상 금상을 받은 수영구 민락수변로의 ‘더 프레임(민락동 오후의 홍차)’이 한 예다. 뒷 백산과 앞 수영강을 잇는 이 건축물은 단순한 형태의 격자 형태인데도, 시선을 끌어낸다. 보는 이에 따라 주변 풍경을 압도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카페 같은 소형 건축 설계 의뢰가 들어오면, 후배들을 소개해줬다. 잘 만들면 주목도가 높아, 젊은 건축가들에겐 카페 설계는 기회다. 그러다 ‘나도 카페 설계 잘 할 수 있는데’ 하고 몇 개를 했다”며 웃었다. 그는 카페 설계 때 ‘공간의 소비’에 주안점을 뒀다고 한다.

2018년 부산다운건축상을 받은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로 ‘더 프레임’. 안용대 제공

안용대는 부산 덕천동의 ‘미래로 여성병원’ 등 여러 병원 건축으로도 상을 받았다. “인생이란 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바뀌는데, 2000년대 초반에 아주 우연한 기회에 산부인과 건물을 지었어요. 그 뒤로 줄줄이 병원 건축 의뢰만 들어오더라고요.”(웃음) 그는 전국에 병원만 50곳을 지었다. “제가 비즈니스 능력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병원 건축 설계 기회가 안 주어졌으면 사무실도 운영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고도 했다.

안용대가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은 소설가인 요산 김정한의 부산 생가터에 지은 요산문학관이다. 북카페와 전시실, 도서관, 강당을 갖춘 공간이다. 일반인도 이용 가능한 집필실도 뒀다. “김정한 선생님의 소박함, 투박함을 건축에 녹이려 했어요. 김 선생님과 개인적 인연도 있어 애착이 가는 거죠.”

아버지는 부산 노포동에서 목수로도 일했다. 안용대는 대학 다닐 때 아버지와 함께 건축 공사장에 나갔다. “그 영향을 받아서 건축가가 되는 게 되게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 건축학과 이외 다른 전공을 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대학(부산대 건축학과) 졸업 뒤 ‘공간’과 ‘이로재건축’에서 일했다. 승효상이 설계한 유홍준의 수졸당 건축에 참여한 뒤 이로재건축을 나왔다.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며 대학원에서 ‘도시 계획’을 공부하기도 했다. 건축가로서는 이른 편인 35세 때 개인 건축사무소를 냈다.

안용대는 공공건축에서 중요한 가치로 ‘배려와 존중’을 꼽는다. 그는 민간 상업 건축에서도 이 가치를 실현하려 한다고 했다.. 김종목 기자

늘 그 역할을 떠올리며 자신의 건축 철학에 대한 정의도 내렸다. 안용대는 공공건축에서 자연, 도시, 건축물 주변 환경,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울산시립미술관 건축에서 강조한 것도 배려와 존중이다. 그는 민간 건축에서도 이 가치를 실현하려 했다. “클라이언트 사업 방향을 반영하는 것이 건축가 의무이지만, 한편으로는 공간이 상품이 되는 시대인 만큼 배려하는 건축이 상품이 된다고 설득한다. 그는 건축이 사회에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울산|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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