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왜 유망 산업에 R&D 투자하나..'국민 생존' 분야 집중해야"
[경향신문]
국가 과학기술정책을 운영하는 대통령 직속기구의 고위 인사가 현 정부의 연구·개발(R&D) 정책 방향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양자 컴퓨팅이나 인공지능(AI)처럼 기업들이 알아서 기술 개발을 할 첨단 산업 분야가 아니라 감염병 대응이나 미세먼지 해결 같은 공공 분야에 정부의 연구·개발이 집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25일 서울 종로구 자문회의 사무실에서 개최한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R&D의 전체 방향을 조정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과학기술정책과 관련한 큰 틀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기관으로, 의장은 대통령이다. 위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과학기술 관련 분야의 장관들과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장관급 민간 인사 대우를 받는 염 부의장은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전체 R&D 규모는 100조원을 달성했다. 이 가운데 민간 부문을 뺀 정부 부문은 30조원에 이른다. 그런데 염 부의장은 정부 R&D 상당 부분이 이른바 유망 산업 분야에 투자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에선 미래 먹을거리에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이지만 염 부의장은 다른 생각을 제시했다. 유망 산업에 대한 투자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이미 하고 있고, 심지어 정부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염 부의장은 “정부 R&D 투자는 내일의 먹을거리가 아니라 국민의 생존과 관련한 부문에 집중돼야 한다”며 “정부가 AI에 투자 안 해도 어차피 민간 기업에서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염 부의장은 “국민 입장에선 감염병 해결이 가장 중요한데 30조원에 이르는 정부 R&D 비용 가운데 이 분야에는 3000억원을 쓰면서 ‘열심히 했다’고 말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염 부의장은 미세먼지 해결이나 고령화 대응도 정부 R&D가 앞장서야 할 분야로 꼽았다.
염 부의장은 현 정부에서 자문회의가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는 “청와대 등에서 정책 결정을 앞두고 자문을 요청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별로 없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여러 방향에서 청와대의 정책 검토를 돕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검토 요청에 대한) 답을 주시오’ 같은 방향으로 자문회의가 활용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염 부의장은 자문회의에 대한 대통령의 참석이 적었던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대통령의 참여가 적다 보니 부처 장관들의 적극적인 참여 또한 적어졌다는 것이다.
염 부의장은 자문회의를 통해 새로운 국가 과학기술 운영의 틀을 제시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민간 중심의 과학기술정책 운영체계 확립, 기초와 공공 연구 확대의 계기 마련 등과 같은 성과도 있었다”며 “자문회의에서 나온 공적과 한계를 평가해 차기 정부에서 적절한 발전 방향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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