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과학기술자문회의에 자문 요청 거의 없었다" 염한웅 부의장 쓴소리

김민수 기자 2022. 1. 2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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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신년간담회 "적은 투자로 코로나19 해결 못해"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이 25일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문회의 제공.

“올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약 30조원에 달하는데 고작 4000억~5000억원 투자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과 같은 감염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전세계적으로 정부 R&D 패러다임이 내일의 먹거리가 아닌 국민의 건강과 생존에 직결되는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되레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소재 교보생명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 과학기술 정책 평가와 한계점을 거론하며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역점을 둔 기초연구와 연구자 중심 연구 환경 조성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R&D에는 여전히 큰 틀에서의 정책 방향과 실행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다. 

염 부의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과학기술 정책에 거대한 변화를 시도했다”며 “신성장 산업을 발굴해서 R&D를 지원하는 산업 정책으로서의 과학기술 정책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혁신정책으로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염 부의장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1~2년 간 연구자 중심과 기초연구 진흥에 방점을 찍었다면 정부 중반을 넘어서면서 공공R&D 혁신을 추진했다. 감염병, 탄소중립, 미세먼지(대기질), 고령화 등이 주요 공공R&D 어젠다였다. 이같은 공공R&D 정책을 혁신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같은 개별 부처가 아닌 범부처가 효율적으로 긴밀한 협력구조를 가져가야 하는데 이 구조를 만드는 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R&D에서만큼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는 게 염 부의장의 판단이다. 원인으로는 자문회의의 내부 역량 부족 문제도 있겠지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가 정권 중반에 부활하면서 역량이 분산된 데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정책에 대한 의지와 동력, 관심이 집중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염 부의장은 “중요한 과학기술 어젠다와 현안에서 자문회의에 자문을 구하는 적극적인 액션이 정부에서 나와줘야 하는데 실제로 자문회의에 의견을 구하는 적이 거의 없었다”며 “포항지진이나 라돈 침대, 미세먼지 이슈에 이어 소재부품장비 위기, 감염병 위기 등으로 이어지는 이번 정부 과학기술 분야 현안에서 자문회의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염 부의장은 또 정부 부처와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자문회의가 부처 정책 실행에 도움이 되는 집결체가 돼야 하는데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만든 것은 과기정통부 뿐만 아니라 R&D 관련 범부처 협의와 높은 수준의 민간 전문가들이 모여 민간과 범부처 전체 지혜 총량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면서 “하지만 민간 전문가들도 자신의 전문 분야 전문성이 아닌 국가 전체 정책을 결정하고 방향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역량을 지닌 전문가가 많지 않은 게 한계”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같은 한계점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목표로 제시했던 공공R&D 혁신이 사실상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최근 정부가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에 대한 투자를 내세우면서 오히려 퇴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내놨다.

염 부의장은 “국가필수전략기술도 중요하겠지만 정부가 투자해야 할 일인지는 의문”이라며 “반도체 분야에 정부가 투자해서 얼마나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네이버나 삼성이 인공지능(AI)에 투자하는 것만큼 정부 투자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민간기업이 경쟁력을 지니고 잘할 수 있는 산업 분야에 집착하지 않고 근본적인 R&D 혁신 프로그램을 가져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올해 정부 R&D 예산이 29조8000억원으로 약 30조원에 달하는 만큼 한국의 R&D 투자 규모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연구비 규모만 놓고 보면 2019년 기준 미국과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5위 규모다. 논문수나 논문의 피인용횟수도 이들 국가에 뒤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국이 과학 선진국이냐는 질문에는 자신있게 대답하기가 어렵다는 게 염 부의장의 생각이다.

그는 “매년 R&D 규모를 거론하면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노벨상 수상인데 노벨상은 연구비 규모가 많다고 해서, 논문수가 많다고 해서, 인용횟수가 많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니다”며 “결국 기초과학 연구 업적 중에서 인류의 문명과 인류의 지혜, 인류의 발전 등에 얼마나 기여했느냐는 공헌도를 따지는데 30여년간 국내 우수 연구업적을 일일이 다 훑어봤지만 수준 높은 기초과학 연구로 회자되는 연구업적이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결국 미래 먹거리를 우선순위에 놓는 정책 기조와 연구자 평가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논의에 대한 컨센서스도 부족하고 중요한 과학기술 정책 관련 논의 테이블에서도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강도 높은 어조로 비판했다. 

[김민수 기자 r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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