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붕괴사고 가해자가 피해자 구조하는 나라

윤예원 기자 2022. 1. 2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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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아흐레가 지난 19일.

붕괴 사고 현장에서 만난 실종자 가족들은 작심한 듯 광주시와 광주 서구,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붕괴 사고 현장을 지켜보면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늦어진다'였다.

광주시와 현대산업개발이 구조대원의 안전 탓에 수색이 지연된다고 하면 실종자 가족들은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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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원 기자

“광주시장은 의자에 앉아서 담화나 하러 왔나. 사람이 콘크리트 아래 깔려있는데, 가족인 우리가 너무 부끄럽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와야 정부도, 현대산업개발도 움직일 것인가?”

광주광역시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아흐레가 지난 19일. 붕괴 사고 현장에서 만난 실종자 가족들은 작심한 듯 광주시와 광주 서구,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붕괴 사고 직전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5명은 아직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지은 지 수십 년 된 아파트도 아닌, 신축공사 중이던 아파트가 무너지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지만 인허가와 관리·감독 책임자인 광주 서구청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작년 6월 광주 학동 건물붕괴 참사 이후 재발 방지를 다짐했던 이용섭 광주시장도 다를 건 없었다. 이 시장은 현장에 상주하며 실종자 구조 작업을 지휘하겠다고 했지만, 실상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붕괴 사고 현장을 지켜보면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늦어진다’였다. 실제로 모든 게 늦어지고 지연됐다. 타워크레인 해체도 늦어졌고, 실종자 구조 작업도 늦어졌고, 정부 차원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설치도 늦어졌다.

실종자 가족이 구조를 독촉할 수도 없었다. 광주시와 현대산업개발이 구조대원의 안전 탓에 수색이 지연된다고 하면 실종자 가족들은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실종자 가족들은 자신들이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소방대원들은 목숨을 걸고 구조 작업에 나서고 있고, 인근 상인과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도 다 자기들 탓인 것만 같다는 이야기다. 잘못은 공사를 한 현대산업개발과 그 하청업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지자체에 있는데 말이다.

사고 현장에선 지금도 매일 두 차례 브리핑이 열린다. 광주시와 현대산업개발의 책임자들이 마이크를 잡고 구조 작업에 대해 설명한다. 그때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저 사람들이 사고의 책임자인데 왜 구조 작업까지 맡고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종자 가족의 이야기에 정부 차원의 중수본이 차려진 건 사고가 나고 2주가 지난 이달 24일이다. 그동안 사고의 책임자가 구조와 수습을 맡는 일이 계속됐다. 구조 작업까지 늦어지니 실종자 가족 입장에선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이러니 현대산업개발 관계자가 ‘콩으로 메주를 쑤었다’고 해도 실종자 가족이 믿을 수 있겠는가.

실종자 가족들은 이제 자신들을 ‘피해자 가족’으로 불러달라고 한다. 피해자가 있다면 누군가는 가해자일 수 밖에 없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현대산업개발과 광주시, 광주 서구청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건 기본적인 상식이다. 하물며 가해자가 피해자 구조 작업을 책임지는 게 말이나 되나. 지금 광주에선 상식 밖의, 사상 초유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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