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기억 '그해 우리는'이 말해주는 것..기억은 왜 다를까

한겨레 2022. 1. 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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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의 의학과 서사]김준혁의 의학과 서사(57)
진리 뜻하는 그리스 철학용어 'aletheia'는 망각의 부정어
'기억=진리' 등식 성립할까..기억은 생명체 이득따라 변형도
10년 전, 아직 고등학생이던 최웅과 국연수는 다큐멘터리 마지막 장면 촬영을 앞두고 쏟아지는 비를 피한다. 둘은 이날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둘은 이 순간이 서로의 관계가 변하기 시작한 날이었음에는 동의한다. 에스비에스

첫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묻는 것은 우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겐 가슴 아픈 기억으로, 누군가에겐 떠오를 때마다 혼자 이불을 차고 싶은 순간으로 남았을 테니까. 하지만, 첫사랑은 모두에게 소중한 무언가로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지 싶다. 2012년 ‘건축학개론’이 첫사랑의 엇갈림을 사람들에게 되새기게 만들었을 때, 영화는 아이돌 수지를 배우로 만드는 것을 넘어 사람들에게 첫사랑의 기억을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과 함께 다시 베틀로 짜서 고이 접어놓게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2022년, 꼭 10년 뒤 드라마 ‘그해 우리는’이 다시 첫사랑의 기억을 물어본다. 드라마의 성패와는 별개로, 드라마를 강제로 챙겨 보게 된 나는 궁금함이 생긴다. 이 기억이라는 녀석은 무엇이길래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넘어, 사람마다 다를까.

‘그해 우리는’은 10년 전,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의 일상을 담는 다큐멘터리 촬영 기획으로 만난 두 사람, 국연수(김다미 분)와 최웅(최우식 분)이 그 후 오랫동안 사귄 뒤 가슴 아프게 헤어졌다가, 여러 이유로 다시 만난 상황을 가슴 뛰는 음악과 장면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왜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냐고? 저 10년 전의 다큐멘터리가, 그동안 별 주목을 받지 않았던 작품이, 유튜브에서 우연히 주목을 받으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방송국이 그 참에 후속작을 찍기로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패해선 안 되는 회사 업무 때문에, 국연수는 최웅을 꼭 섭외해야 할 일까지 겹친다.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필연이라면 필연이겠지만.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순탄할 수 없다. 우선, 둘의 처절한 헤어짐이 남긴 진폭이 너무 크기에, 다시 만난다는 것이 진지하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서로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불편한 일인 탓이다. 게다가 고등학생이었던 10년 전과 달리,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각자의 직업과 역할, 새로운 인간관계로 인하여 더 복잡한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타이밍이라고 해야 할지, 두 사람에겐 각자 다른 인연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요소는 두 사람의 관계를 쥐고 있는 이전의 기억이다. 기억이 없다면 또는 서로가 이전을 떠올렸을 때 좋은 기억만 남았다면 다시 만나는 것이 무슨 문제이겠는가. 그러나 둘은 서로에 대해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서로를 다르게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다른 기억? 둘은 같은 장면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기억이 컴퓨터에 저장된 동영상처럼 과거의 정확한 복제물이라고(물론, 동영상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의 진위는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기엔 문제가 많다. 하지만 기억은 때로 어떤 사건을 다루거나 연구 과정에서 진실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가? 이런 배치되는 진술 앞에서, 둘이 다르게 기억하고 있으며 그것을 다른 맥락에서 회상하는 드라마의 장면은 의료인문학을 통해 몸을 고찰하는 나에겐 무척 흥미로웠다. 설명을 길게 늘어놓는 것보다 드라마에서 두 사람이 같은 장면을 어떻게 떠올리는지 보면서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국연수와 최웅의 기억은 왜 다를까

‘그해 우리는’의 두 주인공은 10년 뒤, 후속 다큐멘터리 촬영에 동의한다. 드라마 4화는 국연수와최웅이 고등학생 때 찍었던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촬영 장면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 회상 장면으로 가기 전에, 두 사람은 대놓고 서로의 기억이 틀렸음을 주장하는, 사랑의 시작을 서로에게 미루는 대사를 던진다.

국연수: “빤히 보일 텐데, 걔가 먼저 나 좋아했어요.”

최웅: (헛웃음) “걔가 그래요? 야, 걔 어디 아프대?”

국연수: “어, 그 촬영 끝나고 나서도 막 계속 따라다니고 만나자고 한 것도 걔가 먼저였을걸?”

최웅: (탄식) “그때 걔가 들이댔을 때 정신 차리고 도망갔었어야 되는데.”

에스비에스 드라마 ‘그해 우리는’. 에스비에스 제공

물론, 우리는 일상의 경험에서 알고 있다. 거짓말은 언제나 가능하며 우리는 책임 회피나 자기방어를 위해서 얼마든지 기억과 다른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존재임을. 위 장면에서 연수와 웅은 서로가 자신을 먼저 좋아했다고, 오히려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거짓말은 얼마든지 가능하니 이 부분은 ‘그런가 보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흥미로운 부분은 그다음 장면이다. 10년 전 다큐멘터리 촬영이 끝나는 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연수, 웅과 다큐멘터리 피디는 정자 밑에서 비를 피한다. 마침 카메라 건전지가 다 떨어진 피디는 장비를 챙기러 뛰어가고 비 오는 정자 밑에는 두 사람만 남는다. 이 장면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먼저, 웅의 기억이다.

최웅: (보이스 오버) 뭐랄까, 그냥 좀, 모든 게 이상한 날이었어요. 괜히 어색하고.

최웅: 아, 아깐 해가 좀 쨍쨍했는데.

국연수: 그러게.

최웅: (보이스 오버) 괜히 신경 쓰이고

(최웅은 추워 보이는 연수에게 묵묵히 겉옷을 벗어준다.)

국연수: 뭐야? 고마워.

이 소년 감성의 장면을 연수는 전혀 다르게 회상한다.

국연수: (보이스 오버) 그런 분위기였을 리가 없어요, 절대.

국연수: 뭘 봐?

국연수: (보이스 오버) 그때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어요.

국연수: 정신 사나우니까 가만히 좀 앉아 있지?

최웅: 아, 아까는 해가 분명히, 해가 쨍쨍했는데?

국연수: 대기 불안정. 지금 우리나라 상층에는 찬 공기가 머물고 있는데 낮 동안 기온이 크게 오르면 대기가 급격하게 불안정해져서 강한 상승 기류로 인해서 비구름이 갑자기 발달….

최웅: 넌 이 상황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싶냐? 사람 피곤하게.

국연수: 고1 때 배우는 건데 네가 알 리가 없으니까 얘기해 주는 거야.

이 정도면 두 사람은 아예 다른 시공간에 있었던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지 싶다(첨언하면 드라마 애청자분들은 이 기억의 차이가 어떻게 두 사람의 애틋함으로, 새로운 관계로 이어지는지를 잘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또렷한 기억도 때로 틀릴 때가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중요한 탐구 질문은 두 사람의 기억 차이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기억의 오류 가능성은 인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기억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기억은 변형되어 저장되고 회상된다

사실 기억은 오랫동안 진실의 통로로 여겨져 왔다. 대표적인 것이 법원에서 증인의 효력이다. 법원에서 증인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면, 증인의 증언은 상당한 무게를 지녀 법적 증거로 채택된다. 증인이 진실을 말한다면, 기억은 과거의 진실을 우리 앞에 전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것은 기억이 고대에서 근대까지 진실을 담지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리스 철학은 진리를 ‘알레테이아(aletheia)’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망각의 강에서 유래한 말인 ‘레테(lethe)’, 망각 앞에 부정접두어 ‘a’를 붙인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인들은 망각이 없어진 상태, 즉 잊어버린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진리라고 믿었다. 소크라테스는 태어나기 전 이데아(완벽한 세계)에 있던 영혼은 진리를 알고 있으나, 탄생하면서 레테 강을 건너와야 하기에 인간은 진리를 모두 잊어버린 상태라고 가정한다. 소크라테스에게 진리 깨닫기는 잊었던 진리를 다시 떠올리는 것이며, 따라서 그의 교육 방법은 상기를 도와주는 방법, 산파술이라고 불렸다.

이 망각과 진리의 구도는 근대까지 이어지며 앞서 법과 관련지어 말했듯 기억(과 망각)은 계속 연결되어 있었다. 정신의 구조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명하려 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도 이 경향은 그대로 유지되며, 프로이트는 히스테리를 포함한 여러 정신질환의 원인을 억압된 무의식, 즉 망각에 놓았다. 프로이트에게 망각은 자아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활용하는 방패 같은 것이었다. 자아가 소화하기 힘든 폭력적인 사실 앞에서, 망각이 작동하여 그것을 은폐·억압한다. 하지만 기억은 진리이며, 따라서 소멸할 수는 없고, 억압되었던 기억은 다시 회귀하여 주체를 괴롭혀 여러 정신질환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프로이트가 해명한 기억과 망각의 구조였으며, 프로이트의 치료법으로 많은 사람이 어릴 때 자신이 겪은 폭력을 고백하며 그것을 현재 자신이 겪는 정신질환 증상의 원인으로 여겼다.

‘기억’ 하면 가장 유명한 예술 작품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일 것 같다. 흐물흐물 늘어진 시계들은 그 자체로 감상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늘어난 시계와 개미 떼로 뒤덮인 시계 모두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잡을 수 없는 인간의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시간을 잡을 수 없기에, 우리는 기억이라도 잡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보다. 뉴욕현대미술관

하지만 프로이트의 기억 이론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기억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프로이트는 생각하지 못했다. 실례로 미국에선 여러 여성이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뒤 어릴 때 자기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며 아버지를 고발했지만, 근거 없는 추문이었음이 알려져 오히려 상담사가 고소당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라는 책을 쓴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에 의하면, 기억은 얼마든지 왜곡되거나 조작 가능하며 최근에 벌어진 생생한 사건에 대한 고발과 달리 소위 ‘억압된 기억’에 의존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위험하다(어떤 경우엔 정말 기억이 억압되었고, 이를 다시 되살려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쪽이 더 드물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아직 기억에 대해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뇌의 해마 부위가 기억과 학습을 관장한다고 말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기억이 저장되며 다시 꺼내지는지에 대해선 훨씬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하나는 분명하다. 예전 우리가 가정했던 ‘기억=진리’라는 등식은 틀렸다는 것. 오히려 기억은 다른 신경계의 작동과 마찬가지로 생명체가 생존과 번영에 있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렇기에 기억은 적어도 오래된 기억은 생명체의 이득을 위해 얼마든지 변형되어 저장되고 회상될 것이라고 여기는 것도 그럴듯해 보인다. ‘그해 우리는’의 두 주인공, 최웅과 국연수가 10년 전 그날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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