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푸틴의 수읽기

여론독자부 2022. 1. 2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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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GPS'호스트)
러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유럽 국가
수급 차질땐 에너지 위기 닥칠수도
서방 경고에도 우크라 노리는 푸틴
무모한 모험 아닌 철저한 계산 깔려
[서울경제]

블라디미르 푸틴은 무엇을 원하는가.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실린 드미트리 트레닌과 유진 차우솝스키의 에세이는 푸틴의 속셈을 읽어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트레닌과 차우솝스키에 따르면 푸틴이 지난 1999년 이래 줄곧 러시아 최고 지도자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신중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했기 때문이다.

트레닌이 지적하듯 푸틴은 권좌에 오른 후 네 차례에 걸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대 재편 움직임을 지켜봤다. 그는 몇 차례 무력을 사용했지만 대부분 선제공격이 아니라 외부 사태에 대한 반응이었다. 2008년 조지아가 남오세티야의 자치주를 합병하기로 결정하자 그는 무력 개입을 단행했다. 2014년 마이단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로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권좌에서 축출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핵심 안보 세력권 외부에서 푸틴이 무력 개입을 한 거의 유일한 사례는 시리아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한 2008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서 푸틴은 키예프가 나토 가입의 전 단계인 유럽연합협정 체결을 거부하면 15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고 가스 공급 가격을 인하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야누코비치는 푸틴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마이단에서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민 봉기가 발생하자 해외로 도주했다. 그때서야 푸틴은 군사력을 동원해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상대로 러시아어 사용 인구가 밀집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돈바스의 분리·독립을 끌어내기 위한 협상을 벌였다. 러시아 비정규군들 역시 이곳에서 내란을 부추겼다. 푸틴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에 목을 맨 독일을 움직여 젤렌스키로 하여금 돈바스 분리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했다.

푸틴의 딜레마는 우크라이나가 서서히 러시아의 세력권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우크라이나는 더욱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친서방국가로 변모했다. 이에 보답하듯 서구 역시 키예프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다. 그러나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현지인들 사이에 영구적인 반러시아 정서가 들어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따라서 그의 목표는 미국과 유럽으로 하여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 그는 우크라이나인들이 키예프와 모스크바가 장기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갖게 될 것임을 깨닫기 원한다.

서방의 입장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는 분명 지원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기는 하지만 대전략(grand strategy)의 핵심은 아니다. 반면 푸틴에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핵심적 국가 이익에 해당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이웃으로 키예프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푸틴은 얼마든지 우크라이나의 팔다리를 자르고 힘을 빼 국가 기능 마비 상태로 묶어둘 수 있다.

트레닌은 나토와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러시아는 분리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 각각 선포한 ‘인민공화국’을 인정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미 조지아에서 이와 유사한 접근법을 사용한 바 있다. 러시아는 러시아인들이 주류를 차지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독립국가로 인정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푸틴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 푸틴은 나토가 키예프와 실질적인 동맹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와 동시에 푸틴은 지금이야말로 러시아의 힘을 보여줄 순간이라고 확신한다. 지구촌의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에너지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세계 전역에서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유럽의 상황이 심각하다. 유럽인들이 난방 연료로 사용하는 천연가스 가격은 2021년에 무려 400%나 상승했다. 이를 대체할 만한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생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동안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가스 생산을 중단했다. 결과는 자명하다. 유럽 국가들은 온통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 가스관의 자국 경유를 승인하는 대가로 연 25억 달러를 받아온 우크라이나는 제3국을 거치지 않은 채 독일을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들에 러시아산 가스를 직접 공급하도록 고안된 노드스트림 2 파이프라인으로 수입이 격감할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유럽 전역에 1970년대의 오일쇼크와 맞먹는 에너지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이는 유럽연합이 가장 꺼리는 시나리오다. 푸틴은 무모한 모험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다. 그는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위험을 감수한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그에게 유리하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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