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트럼프 편들었다가.. 사퇴 요구 받는 흑인 대법관

정지섭 기자 2022. 1. 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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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美 두번째 흑인 대법관 토머스
'1·6 사태 문서열람' 반대 의견 내
현직 대 법관 중 가장 '우클릭' 평가
백인 아내, 극우세력과 연대의혹
대법관 입지 위태롭다는 관측도

미 연방 대법원은 최근 지난해 극우 단체들이 조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 인증 절차를 막으려 의사당에 난입한 ‘1·6사태’와 관련한 중요 결정을 내렸다. 연방 하원 조사위원회가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측근들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백악관 문서의 열람을 최종 허가한 것이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극렬하게 반대해 온 것으로 오는 11월 미 중간선거에 허리케인과 같은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평가된다.

대법원의 당시 판결은 8대1로 압도적이었다. 1심과 2심은 트럼프가 주장한 기밀유지특권은 현직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는 이유로 트럼프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1·2심의 판단이 구속력 있는 선례가 되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달았을 뿐, 결정 자체를 뒤집지 않았다.

대법관 9명 중 유일하게 트럼프 편을 들어 열람 금지에 찬성하는 ‘극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이 클래런스 토머스(74)다. 이 결정 이틀 뒤 주간지 뉴요커가 클래런스 토머스 아내 지니 토머스가 1·6사태 주동 세력과 오랫동안 연대해왔다는 폭로 기사를 냈다. 1·6사태와 관련해 지도부가 최근 기소된 ‘오스키퍼스’와 오랫동안 친분을 맺어왔으며 오스키퍼스 행사에서 축사도 했다는 것이다. 뉴요커는 ‘지니 토머스는 대법원에 위협이 되고 있나’라는 제목으로 클라랜스 토머스의 판결 성향과 아내의 정치적 행보의 연관 가능성을 제기했다. 토머스는 한 차례 이혼한 뒤 1987년 현재 아내와 재혼했는데, 당시 흔치 않았던 흑인과 백인 간 혼인이었다. 보수 성향 변호사이자 로비스트로 활동해온 지니 토머스는 1·6사태 때 주도적으로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번 판결로 미 역사상 둘째 흑인 대법관이자 최선임인 클러랜스 토머스가 다시 미국 안팎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1991년 취임한 그는 현직 대법관 중 이념적으로 가장 ‘우클릭’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소수인종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차기 대선 재대결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고, 미국 사회의 이념 대결이 갈수록 격화하면서 그의 행보가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클래런스 토머스의 주요 판단

1948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나 예일대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엘리트 법조인 코스를 거쳤다. 미주리주 검찰차장, 농업 재벌 몬산토 변호사를 거쳐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교육부 인권담당 차관보, 양성평등고용위원장을 지냈다. 이후 차기 대법관 후보군의 집결지인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용됐다. 미 역사상 첫 흑인 대법관 서굿 마셜이 1991년 은퇴를 선언하자 부시 대통령은 토머스를 후임으로 낙점했다. 순탄할 것 같았던 임용 과정에 돌발 변수가 터졌다. 동료 판사로 일했던 흑인 여성 변호사가 TV 청문회에 나와 ‘토머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그는 힐의 주장을 강력히 부인했고, 인준안은 상원에서 찬성 52 반대 48로 통과됐다. 당시 청문회를 담당했던 상원 법사위원장이 바이든 대통령이다. 바이든은 30년 뒤 2020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시 청문회가 토머스 측에 유리하게 진행되도록 방조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시달렸다.

평생 유색인종과 소수자 인권을 위해 노력하며 진보적 의견을 제시했던 서굿 마셜과 달리 토머스는 주류 보수층 가치에 부합하는 목소리를 주로 냈다. 대표 사례가 2009년 소수인종투표권 보호법 위헌 소송에서 내린 나 홀로 의견이다. 이 소송은 텍사스의 한 지방자치단체가 “연방 정부가 소수인종의 투표권을 법으로 규정한 것이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하면서 전국적 관심사가 됐다. 당시 쟁점은 일부 자치단체들이 투표 규칙을 개정할 때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한 규정의 위헌 여부였다. 대법관 8명이 이 규정을 통해 소수인종의 투표권을 보호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결정했지만, 토머스만 유일하게 “법이 제정된 지 40년이 지나 정치 환경이 달라진 만큼 효용성이 없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첫 흑인 대통령(버락 오바마)과 첫 흑인 법무장관(에릭 홀더)이 지키려는 소수인종 권리에 대해 흑인 대법관이 홀로 어깃장을 놓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토머스는 동성결혼 합법화(2015년 6월·반대), 성소수자 고용 차별 금지 법제화(2020년 6월·반대), 불법이민자추방유예제도(DACA)존속(2020년 6월·폐지) 등 이슈에서 보수층을 대변하는 강경한 의견을 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 닐 고서치 대법관 등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사안에 따라서 진보적인 의제에 찬성표를 던진 것과는 대비됐다. 토머스는 2020년 트럼프 행정부의 DACA 폐지 위헌 소송에서 진보 편을 든 로버츠 법원장에 대해 “법적이 아닌 정치적 의견을 냈다”고 비판할 정도로 뚜렷하게 보수 색을 나타냈다. 그런 그가 미국 사회에 이목이 쏠린 미시시피주 낙태법 위헌 소송에서도 강경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여성의 임신중절권리를 보장한 현행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오랫동안 비판해왔던 그에게 이번 소송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라고 전망했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아내와 극우 세력 연대 의혹이 확산될 경우 대법관 입지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뉴스위크는 “문서 열람 소송에서 트럼프 손을 들어준 토머스 대법관에 대한 사퇴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법학교수, 변호사,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사 잡지 애틀랜틱의 놈 온스타인 칼럼니스트는 “아내가 폭동 세력과 긴밀하게 연관돼있는데도,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소셜미디어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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