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빅테크 기업 '지네발 경영', 시민단체는 왜 침묵하나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22. 1. 25. 03: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신'이라던 플랫폼 기업, 골목 상권 침해하고
상장 첫날 대량 매도 통해 현금화하는 '도덕적 해이'까지
'문어발식 경영' 비판받던 재벌도 감히 못 하던 행태
네이버 본사와 카카오 본사./조선DB·뉴스1

디지털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들의 경쟁력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내수 시장 규모에 비례함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구글·아마존·메타·우버·에어비앤비, 중국의 알리바바·텐센트·위챗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성공 요인은 기술 혁신 자체보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사업 영역을 발굴하고 선점한 데서 찾을 수 있다. 플랫폼 사업의 가장 큰 특성은 수요 중심 기업이라는 점이다. 먼저 한계생산비용이 거의 제로(0)에 근접해 극단적인 규모의 경제가 발생한다. 더 나아가 새로운 고객이 참여할 경우 기존 고객 역시 이득을 보는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해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탈 때 발생하는 비용이 높고, 따라서 고객을 묶어두는 잠금효과(lock-in effect)가 매우 강하다. 전통적 파이프라인 사업에 있어 기술과 자본력이 주요 경쟁 요소였다면 이들에게는 기술과 고객의 수가 더 중요한 경쟁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적어도 사업 초기에는 선점 효과 측면에서 해당 국가의 내수 규모가 클수록 유리하다.

이렇게 내수 중심으로 발전한 플랫폼 기업들이 자국을 넘어 해외로 진출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버나 에어비앤비처럼 현지의 경쟁자들이 경쟁력을 갖추기 전에 최대한 빨리 진출해 시장을 선점하거나 유튜브처럼 아예 완전히 새로운 발상으로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잠금효과를 활용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깊이(depth)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혁신 기술을 통해 과거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 영역을 끊임없이 발굴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없으면 기업 인수를 통해서라도 혁신 기술과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만들어 나간다. 페이스북이나 애플이 메타버스에 총력을 기울이고 유튜브를 인수한 구글이 여전히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손으로 인수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잠금효과를 활용하는 또 다른 방식은 폭(breadth)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즉 ‘잡힌 고기’인 고객에게 변형된 형태의 묶음 판매(bundling)로 범위의 경제를 극대화한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일 필요도 없다. 약간의 차별화를 통해 고객에게 편의성을 제공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존 고객을 기반으로 수요 독과점을 통해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깊이와 폭의 결정적 차이점은 기존 사업체들과의 충돌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폭의 확장에 주력하는 플랫폼 사업체들은 국내 시장에서 수요 독과점 지배력을 통해 초과 이윤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굳이 해외로 진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국내에서 기존의 사업 영역을 잠식하면서 갈라파고스화된다. 우리나라의 플랫폼 사업자, 특히 빅테크들의 현주소다.

최근 배달 업체들이 배달 수수료를 대폭 인상해 영세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비용면에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은행 같은 대기업도 빅테크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은행이 디지털 기술이나 사업 발상이 크게 뒤져 빅테크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열위에 처하게 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 금융회사, 특히 은행에 강력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우리 안에 갇혀 순치된 호랑이다. 반면 핀테크 육성책에 힘입어 빅테크 업체들은 제대로 된 규제를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규제의 경계를 들락거리면서 원하는 사업을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다. 야생의 늑대다. 거기에 고객 수 측면에서 은행은 빅테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은행마저도 이런 상황인데 택시·대리운전·미용실·퀵서비스 업체들이 이들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과거 재벌들이 무분별한 ‘문어발식 경영’으로 중소기업에 피해를 끼친다고 비판했는데 이들 빅테크 기업들은 ‘지네발식 경영’으로 중소기업뿐 아니라 골목상권까지 닥치는 대로 침범한다. 그야말로 잠금효과를 이용해 마음껏 지배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빅테크 기업의 대명사 격인 한 업체가 쪼개기 상장을 하면서 경영진의 배만 불리더니 아예 상장 첫날 대량 매도를 통해 현금화하는 ‘도덕적 해이’의 진수를 보여줬다. 일찍이 재벌들도 감히 보이지 않던 행태다. 소관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도 문제지만 과거 재벌들을 ‘천민 자본주의’라고 매도하며 사사건건 문제 삼던 시민단체들은 왜 이러한 행태에 침묵하는지 그것도 참 의문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