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백의자유롭게세상보기] 블라인드라는 쇠우리
되레 자사·특목고 출신들 약진
기계적 합리성에 갇혀 역효과
맹신으로 인한 운영의 묘 부족
사회학의 거장 막스 베버는 ‘쇠우리(Iron Cage)’라는 개념을 사용해 근대사회의 특징인 합리성의 양면성을 설명하였다. 쇠우리는 전근대사회와 비교되는 근대사회의 지배적 가치인 합리성이 오히려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는 우리와 같은 기능을 하는 상황을 뜻한다. 가령 합리성이 구현되는 방식인 관료제가 지나치게 발달하면 관료제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인간의 삶이 제한되듯이 수단과 목적이 전치되는 근대사회의 문제점을 베버만의 통찰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시행되는 블라인드가 전근대적 폐해를 극복하고 현대적 합리성을 구현하고 있는지 따져보면 답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아무리 블라인드를 통해 입시와 채용을 진행하더라도 어떤 단계에서는 개인의 역량과 인성을 평가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배경과 지난 시간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누구나 다른 배경에서 성장하고 타고난 인성과 능력이 다르기에 어떤 한 시점에서 블라인드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블라인드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존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2022년 서울대학교의 수시 최초 합격자를 분석한 언론 기사를 보면 학교의 후광 효과를 줄인다는 명목 아래 블라인드 입시를 실시했지만, 결과는 기대와는 반대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상위 30개교에 일반고는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특수목적고와 자사고 출신 합격자의 비율은 늘어났다.
입시를 블라인드로 실시하면 그동안 학교 이름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일반고 학생들이 제대로 평가받아 교육의 공공성과 공정성이 회복되리라 정부는 예상했겠지만, 오히려 정부와 재단의 지원을 받아 탄탄한 교과과정을 가지고 코로나19 시기에 학생들을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었던 특수목적고와 자사고의 학생이 더욱 빛났다. 입시 단계에서 블라인드를 아무리 시행하더라도 교육 경험, 교육 환경, 개인 역량 자체가 차이 나기 때문에 블라인드는 의도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블라인드 채용은 약자를 배려해야 하는 사회적 책무와 배치되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이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공공기관에 비수도권 출신이 늘었다고 발표했는데 이 통계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 시작된 이후 2017년과 2018년 공공기관 채용 결과에서 비수도권 대학의 비중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역인재 할당제를 통해 채용된 비율이 늘어난 결과이기에 이를 블라인드 채용의 결과로만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블라인드 원칙을 확대하면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지역할당 전형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공정과 균형 채용을 달성하는 방법에 블라인드 전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블라인드 과정은 목적합리성을 확보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복잡성과 역사성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게 되면 서울대 입시와 같이 의도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거나 공공기관 채용과 같이 자기모순에 직면하여 ‘블라인드=공정’이라는 쇠우리에 우리 사회를 가두어 놓을 가능성이 크다. 공정이란 우리 사회가 분명히 지향해야 할 가치임에는 분명하나 제도 차원에서 의도한 바와 같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은 물론 사회구조와 역사문화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의도하지 않은 사회 갈등을 일으키며 국민 편 가르기의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앞으로 블라인드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블라인드 그 자체는 잘못된 제도가 아니며,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공정이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제도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블라인드를 공정을 달성하는 제도로 교조처럼 신봉하며 그 제도 운영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를 밀어붙이는 자세는 바르지 않다. 블라인드에 대한 맹목적 신뢰는 우리 사회를 블라인드 쇠우리에 가두어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삶을 억압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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