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이책만은꼭] 장인의 시대

2022. 1. 2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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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장인의 시대다.

'장인'(21세기북스 펴냄)에서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굽은 발로 절룩거릴지라도 자기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헤파이스토스"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존엄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자기 일에서 장인이 되고 이를 사회가 북돋울 수 있다면 세상은 분명히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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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없는 자기 만족 위한 노력, 갈수록 가치 커져
자기 일에 장인 되는 것 북돋아 주는 사회 돼야
바야흐로 장인의 시대다.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만 집중하던 달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소셜미디어는 음식, 공예, 커피 등 여러 생활 장인을 우리와 연결해 주고, 소셜 장터는 이들의 솜씨를 우리가 집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해준다.

여행도 장인을 만나는 체험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지역의 이름난 장인들 가게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음원은 무료에 가깝게 떨어지고 공연은 가격이 치솟듯, 대량생산품이나 프랜차이즈 서비스가 주는 ‘평균의 체험’이 식상해지면서, 그 순간 그곳에서 우리 몸으로 직접 겪을 수 있는 ‘유일하고 독특한 장인적 체험’의 가치가 높아지는 중이다.

‘장인’(21세기북스 펴냄)에서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굽은 발로 절룩거릴지라도 자기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헤파이스토스”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존엄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헤파이스토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못생긴 대장장이 신이다. 추레한 모습으로 종일 일만 하는 그의 모습엔 정신을 중시하고 노동을 얕잡아보는 비틀린 사유가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신은 자신의 손으로 쓸모 있고 아름다운 물건을 고안해 만들어낸다. 신적 능력을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타자를 편리하게 하는 일에 씀으로써 자신을 실현한다. 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세넷에 따르면, 장인은 손기술에 능한 사람이 아니다. “장인은 손과 머리를 오가며 대화하는 사람”이다. 일을 통해 생각하기, 즉 생각하면서 일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내재적 특성이다. 물건 만드는 사람만 장인이 아니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더 호소력 있고 아름다운 문서를 작성한 후 뿌듯한 보람을 느꼈다면, 실험실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으려고 몇 날을 애쓰다가 만세를 불렀다면, 그 순간의 당신은 장인이 된다.

장인의 삶에는 일과 보람의 분리, 즉 소외가 없다. 자신을 위해 일하는 장인은 자기 작업에 질문을 던지고 탐구를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 누가 알아주어서가 아니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이고, 순간순간 무언가에 확고하게 몰입해서 일하는 것이 좋아서이다. 장인의 작업엔 힘들 걸 잊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이 순간이 있기에 그는 주어진 조건에서 더 맛있는 빵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타인을 위해서 정해진 일만 반복하는 노동은 자동화 로봇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지만, 장인의 작업은 나날이 숙련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장인들은 자기 일에 대해 누구나 평등하므로, 장인의 작업장은 대화로 활기차다. 모두 더 나은 것을 만들려고 애쓰기에 잘못된 작업을 툭 터놓고 말할 수 있다. 도요타를 세계적 자동차 회사로 만든 가이젠(改善)은 장인문화에서만 잘 작동한다. 세넷은 불평등이 심하고 권위적인 조직에서는 문제를 같이 해석하고 개선하는 공동체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장인문화는 조직 속에서 자아를 잃고 부유하는 개인들이 자신의 아노미적 소외를 치유할 힘을 돌려준다.

그러고 보면 보장해야 할 것은 ‘워라밸’이 아니다. 일 속에서 꿈을, 즉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장인적 작업환경이다. 인간 의식은 절대 노동을 떠날 수 없다. 노동에 삶이 없다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소비나 휴식이 아니라 오직 정성을 기울인 일에서만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구나 자기 일에서 장인이 되고 이를 사회가 북돋울 수 있다면 세상은 분명히 행복해질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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