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틱낫한 스님
[경향신문]
20세기 전반기 한국 사회는 불가의 언어로 이른바 화택(火宅·불타는 집)이었다. 일제의 강점과 한국전쟁 등 고난의 시기, 종교는 세상의 등불 역할을 했다. 경허·만공·만해·한암·효봉 선사와 같은 큰스님들이 나타났고, 이후 김수환 추기경과 성철·숭산 스님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우리 곁을 지켰다. 이들이 떠난 후 국내에서 크게 존경받은 정신적 스승들이 있었는데, 불교계에서는 달라이라마와 틱낫한 스님이다. 달라이라마가 거주하는 인도 다람살라에는 한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틱낫한 스님의 책 <화>는 국내에서도 100만부 넘게 팔렸다. 특히 틱낫한 스님은 <무소유>의 법정 스님처럼 평이한 말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큰 위안을 주고 영향을 미쳤다.
그 틱낫한 스님이 지난 22일 입적하자 달라이라마는 “내 친구이며 영적 형제”라며 스님을 기렸다. 두 스님은 공통점이 있다.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에서 반전·평화운동을 벌이다 이후 30여년 동안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자 프랑스 보르도 근교에 수행공동체인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를 세워 마음챙김 명상과 걷기 명상을 널리 전파했다. 달라이라마 역시 고국인 티베트에서 떠나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하지만 두 스님의 진정한 공통점은 자신들이 당한 고통과 억압에 분노하거나 압도되지 않고 평화와 명상으로 승화한 것이다. 이들의 평화 메시지가 분단을 겪은 한국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라이라마의 티베트불교와 틱낫한 스님의 임제종은 한국불교처럼 대승불교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위로는 깨달음을 얻고 아래로 중생을 제도한다)이라는 보살 정신은 참여불교로 나타났다. 이들의 메시지는 세계 평화를 기원했고 출발점은 각자의 마음이었다. 틱낫한 스님은 “부처와 보살은 ‘지금 바로 이곳’에 있으니 먼 곳에서 찾지 말라”고 했다. 세상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양극화에 차별·혐오, 코로나19 등으로 우리 마음은 더 빈한해졌다. 위대한 정신적 스승이 세상을 떠난 후 빈자리는 더욱 커졌다. 이제 누가 ‘지금 바로 이곳’에서 마음과 사회의 평화를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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