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고향' 성남서 눈물 터뜨린 이재명.."아픈 상처 그만 헤집으십시오"

2022. 1. 2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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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자신의 친형과 관계된 인생사를 토로하며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과거 자신의 삶을 '참혹했다'고 표현하면서 아픈 상처를 그만 좀 헤집으라고 호소했습니다.

24일 이 후보는 이낙연 전 대표와 함께 경기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시장에서 열린 매타버스 성남, 민심속으로! 행사의 즉석 연설에서 이 같이 밝혔습니다. 이 후보와 이 전 대표가 야외에서 함께 유세 활동을 한 것은 처음입니다.

이 후보는 자신의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여러 차례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이 후보는 "아버지는 이 시장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셨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건물 화장실을 지켰다"며 "어머니께서 화장실에 출근하기 전에 제 손을 잡고 공장에 바래다주셨다. 그래도 행복했다"고 울먹였습니다.

이어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힘겹게 살아가느냐"면서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장사가 안 되는 사람에게 장사할 기회를 주는 게 바로 정치 아니겠나"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과거 학창시절 아버지의 리어카를 뒤에서 밀며 여학생들을 피해 구석으로 숨기도 했다면서 "이런 저의 참혹한 삶이, 어떤 곤경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라면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금보다 수십 배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른바 '형수 욕설'과 관련해서는 "제가 잘못했다. 이제 어머니도 형님도 떠났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런 문제로 우리 가족들 아픈 상처 그만 좀 헤집으라"며 "망신을 당하고 평생 이 녹음으로 고통받더라도 결론은 공무에 형님이 개입하는 일을 허용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 아래는 이재명 후보의 즉석 연설 전문입니다.

우리 여기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여기가 바로 이재명과 그의 가족들이 생계를 유지했던 곳입니다.

저희가 1976년 2월 23일날 비오는 날 새벽에 싸락눈 내리는 새벽에 저기 단대 오거리 내려서 짐 싸가지고 걸어 올라와서 세들어 살 집을 갔는데, 성남시민 여러분 기억하시는 것처럼 길이 진창이라 신발 벗겨지고 걸어다닐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시장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하셨고 제 어머니는 이 건물을 다시 짓기 전에 2층 건물에 상인 여러분 기억하시는 것처럼 공중 화장실의 소변 보면 10원, 다른 변을 보면 20원 이렇게 받았는데. 제 어머니, 여동생이 함께 화장실을 지켰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고. 저는 초등학교 마치고 저 꼭대기에 살았는데 어머니께서 화장실에 출근하시기 전에 제 손을 잡고 공장에 바래다 주셨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밤 늦게 야간작업 철야 끝내고 오면.

낮에 그 오랜시간 일하고 오시고도 아들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직도 그 때 함께 일하던 사람들, 여전히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고 위험 속에서 목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 때 여기, 통닭은 과일가게였는데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힘겹게 살아갑니까.

국가가 할 일이 뭐겠습니까. 힘겹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많은 사람이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장사가 안 되는 사람에게는 장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게 바로 정치 아닙니까, 여러분.

제가 우리 아버지, 시장에서 청소하시고 시장에서 버린 종이, 깡통, 이런 것 주워서 고물상에 갖다 파시고. 썩기 직전, 썩어서 버린 과일 줏어다 식구들 먹여살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함께 잘 사는 세상, 좌절해서 이 세상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없는 세상, 열심히 일하면 내게도 기회가 주어지고 나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그런 세상, 여러분 만들고 싶지 않습니까?

제가 힘들게 공부하다가, 제가 요즘 젊은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저도 생각해 봤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공장에서 다쳐서 팔이 이렇게 장애가 돼서 앞날이 캄캄해서 저도 다른 선택을 생각해보고 실행해 본 일이 있던 곳이 바로 이 뒤에 2층 반지하 집이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세상을 포기하고 떠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여러분. 희망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저는 정치가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고 국민을 속여서 권력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국민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국민의 명령을 따르는 충실한 일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본 정치는 전혀 그렇지 못했어요. 제가 본 정치는 국민을 속여서 편을 가르고 잘 하려는 사람들을 공격해서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언론 권력, 돈 권력, 공권력 이용해서 애먼 사람들 가해자로 만드는 그런 악 중에서도 악이었습니다. 이런 정치를 여러분 계속 지켜보시겠습니까? 이런 나쁜 정치 속에 운명을 맡길 것입니까, 여러분?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지금도 여전히 제가 탈출해보려 했던 웅덩이 속에서 좌절하고 고통받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화장실을 지키며 아들 잘 되기만 바랐던 어머니에게 거짓말하고 판검사할 실력이 안 돼서 변호사해야 하니까 어머니 이해하세요, 이렇게 말하고 25살 나이에 인권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지만, 상처가 너무 많습니다. 저희 가족이 어머니 아버지 시집 간 누나 빼고 8사람, 8가족이 반지하 방 한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 해서 우리 능력만큼, 노력하고 가지려고 했습니다.

제가 시민운동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권력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쓰는 부패한 정치와 행정을 감시하기 위해서 시민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시장이 됐습니다. 성남시민들 병원이 없어 응급의료센터 없어 분당으로 멀리 가다가 사고나는게 무서워 병원 만들기 운동 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잡혀서 처벌 받았습니다. 분당에 정자동 부정부패, 딱 대장동 같은 나쁜 부패행위 하는 것 막다가 제가 감옥 갔습니다.

제가 시장이 된 이유도 단순했습니다. 이 부패한 정치 그만두고 국민이 진정 필요한 것 하자, 그래서 시장이 됐습니다. 시장이 됐더니 문제가 됐습니다. 저를 미워하는 사람이 왜 이리 많습니까? 저를 미워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시민들이 시키는대로 열심히 했고 부정부패 못하게 막았고 공정하게 권한 행사하도록 공무원들 지휘 잘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가만 놔두지를 않더군요.

그러다가 결국은 성남 사람들 다 알지 않습니까. 제 가족들을 동원해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여러 형제 중 한 형제를 그들이 성남시의회 비례대표 공천 주겠다, 이재명 쫓아내면 시의회 의장 시켜주겠다고 작업하고 유혹해서 그 형님이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형님의 목적도 있었겠지요. 저는 압니다. 권력은 옆에 가까이 있기만 하는 것도 권력이 됩니다. 시장에 전화할 수 있다는 것만도 권력이 돼서, 가끔씩 제가 전화오면 일부러 안 받습니다. 주변 사람 모아놓고 저한테 전화한 게 뻔하거든요. 시장한테 직통으로 전화 된다는 것만해도 권력이고, 그것만 해도 엄청나게 나쁜 짓 해서 이익 볼 수 있는게 권력입니다.

그런데 제 형님께서 시정에 개입을 하셔서 공무원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이거 해줘라, 저거 해줘라 이렇게 할 때 제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냥 좋은게 좋은거라고 형님 뜻대로 하시라고 해도 되겠지요. 결말이 두려웠습니다. 그 결말은 결국, 친인척 비리, 망신,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겠죠. 완전히 다 막고 공무원들 전화도 못 받게 상대하지 말라고 했더니 어머니를 통해 저를 통화하겠다고 어머니 집을 찾아갔습니다.

어머니가 전화연결 안 해줬습니다. 왜 그러는지 아니까. 그 어머니를 찔러 죽인다고 불 지른다고 협박하니 저한테 전화 하셨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들어가지를 못하셨어요. 분당 딸 집, 저희 집으로 옮겨다녔습니다. 집에를 못 들어가니 제 아내가 찾아갔습니다. 병원가서 검사하자, 약 먹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머니의 어디를 어떻게 한다, 이런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참혹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하늘입니다.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믿어주시고 어떤 결정을 다 지지해주신 분입니다. 그 어머니의 어디를 어떻게 하다니요, 화가 나서 전화를 했습니다. 왜 그런 말을 했냐, 자식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

제가 욕 한 것 잘못했습니다. 공직자로서 욕하지 말고 끝까지 참았어야죠.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결국 어머니 폭행해 병원까지 갔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도 형님도 떠났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제 이런 문제로 우리 가족들 아픈 상처 그만좀 헤집으십시오.

가족이 공적인 공무에 관여하면 그게 친인척 비리이고 친인척의 시정 개입이고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걸 막느라고 벌어진 일입니다. 형님이 그랬습니다. 어머니 때리기 전에 내가 이거 다 녹음해놨는데 나한테 와서 빌고 하라는대로 하면 녹음 공개 안 하고 말 안 들으면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고민했습니다. 녹음 당하고 2~3주 지나니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더군요. 녹음 공개하면 평생 망신이라고 생각해 형님 요구 들어드릴까도 생각했으나, 망신을 당하고 평생 이 녹음으로 고통받더라도 결론은 공무에 형님이 개입하는 일을 허용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십수년 돌아다니며 지금도 저를 압박합니다. 국민 여러분, 제가 잘못했습니다.

시정과 친인척 비리는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아 정말 어렵습니다. 성남에 계시는 시민여러분 아시겠지만 제 야구르트 배달하던 여동생 기억하십니까. 제가 시장 당선되니 장사가 안 돼 그만두고 싶었지만 혹시 다른 직장 구하면 오빠가 도와줘서 그런다는 소리 들을까봐 야구르트 배달 계속했고 그러다 제가 재선된 후에 청소부로 직업 바꿨다가 과로로 새벽에 화장실에서 죽었습니다.

제가 도와준 게 없어서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저희 누님, 여전히 요양보호사 하시고 힘들게 사십니다. 저희 큰형님 건설현장에서 일하시다가 떨어져서 왼쪽 다리 절단하시고 최근에는 당뇨병까지 와서 오른쪽 다리도 절단했습니다. 그 참혹한 장면을 찍어서 언론에 내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제 조카가 작은 아빠 처참한 장면, 영상 좀 지워달라고 힘 좀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언론사가 제가 부탁한다고 들어줄리가 없지 않습니까. 일부러 보라고 그랬을텐데. 다른 형제들 저한테 도움 하나 받은 것 없이 청소부로, 청소회사의 직원으로 성실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단 한 명의 예외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것을 저는 막으려다 이렇게 됐습니다. 여러분이 제가 폭언한 것을 비난하더라도 최소한, 우리 형제들이 시정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공정하게 시정을 수행하려고 노력한 점을 조금만, 조금만 살펴주십시오 여러분.

그리고 이 곳에 아버지 어머니 여전히 숨결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가족 형제들, 나와 같이 공장에서 일했던 수많은 사람들 어려운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일하는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보다 몇 배 수십배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러분.

공정한 세상이 돼야 합니다.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삶에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나도 열심히 노력하면 나에게도 길이 있다고 생각이 돼야, 최소한 내 다음 세대는 나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거라고 믿어지는 세상이라야 아이도 낳고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 것 아닙니까, 여러분.

여러분을 믿겠습니다. 이 골목에서 아버지의 그 더러운 리어카를 뒤에서 밀면서 새벽마다 이 통로를 통해 학교를 가는 여학생들을 피해서 제가 저 구석으로 숨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저의 이 참혹한 삶이 제가 어떤 곤경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입니다. 제가 그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조금만 고통을 견뎌내면 조금씩이라도 희망을 주고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고 나은 삶을 살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이재명이 하는 정치에는 저의 삶이 다 투영돼 있습니다. 제가 이 과일가게에서 본 과일들은 냉장고도 없고 놔두면 썩으니 밤에 아버지가 줄 서서 가져오면 한꺼번에 우리 가족이 먹어치웠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썩어서 못 먹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정치를 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냉장고에 넣어 놓고 필요할 때 싱싱하게 꺼내먹을 수 있는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과일을 주는 사업을 한 이유도 냉장고에 과일 넣어놓고 먹고 싶을 때 꺼내먹는게 제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복을 입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최소한 교복 한 벌은 해주자. 부모가 돈이 없어서 교복 살 돈이 없어 선배들이 입던 교복 물려입는 아픈 심정을 덜어주고 싶어 무상교복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의 삶, 서민들의 삶과 이재명의 참혹한 삶이 투영돼 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을 위해,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영상편집 : 이혜원 [신동규 기자 easternk@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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