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칼럼] 노동개악 대선공약 멈추라

2022. 1. 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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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대선 정국에는 수많은 공약(公約)들이 춤을 춘다. 필요한 정책도 많지만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정책의제가 표를 얻기 위한 얄팍한 계산속에 날림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정책이다.

얼마 전 국회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켜 공공부문에 노동이사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노동이사제란 노사 간의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근로자 대표의 추천이나 동의를 받은 비상임이사 1명을 이사회에 선임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하반기부터 131개 공공기관에 도입되어 향후 공공기관 운영에 노동이사의 참여가 활성화될 예정이다. 노동계는 오랫동안 노동이사제 도입을 주장해 왔으나 우리의 노동현실과 노사문화에 적합하지 않아 도입되지 않았다. 그러던 노동이사제가 대선정국에서 이재명 후보에 이어 윤석열 후보까지 동의하면서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해 입법화되었다.

노동이사제 도입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는 노동의 경영참여를 통해 노사간 힘의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노동이사제는 조합주의(corportism)가 정착된 독일에서 비롯된 제도로 노사간 장기적 협력관계의 정착이 핵심 조건이다. 우리처럼 노사간의 대립이 일상화되어 있고 협력 자체가 쉽지 않은 환경에는 적합한 제도가 아니다.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는 조합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통해 기업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노동문화는 매우 투쟁적이고 산별노조의 투쟁성이 강한 상황에서 긍정적 기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공공기관 노사관계의 형평성은 노조가입률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우리나라 민간부문의 노조가입률은 11.3%에 불과하지만 공공부문은 69.3%에 달하고 공무원의 노조가입률은 88.5%에 이른다.

한마디로 노사간 힘의 균형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오히려 특정분야 공공부문 근로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은 경영자의 방어권을 뛰어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기관에 노동이사를 도입할 이유가 무엇인가.

노동이사제의 도입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더욱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위험이 크다. 공공기관은 공익을 추구하는 기관이지만 본질적으로 국민이 주인이다. 공공기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사실상 주인 없는 조직에 방만 경영을 막아 공익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조직에서 노사관계의 갈등은 기관평가 및 기관장의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실상 공공기관 노사는 서로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기 쉽다. 이미 노사간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거나 노조가 더 힘이 센 공공기관에 새로운 노동이사제의 도입은 오히려 과도한 노동의 이익 보호를 통해 방만 운영이 더욱 심각해질 우려를 키운다.

노동이사제는 정부의 공공기관 운영에 필요한 의사결정을 막거나 상당 기간 유예시킴으로써 사실상 국민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크다. 공공기관의 임금이나 노동환경은 이미 민간에 비해 훨씬 노동친화적이다. 노동이사제는 노동계의 이익을 더욱 높게 반영시키려 노력할 것이므로 공공기관의 경영효율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고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은 국민과 국가의 이익이 될 것이다.

노동이사제는 국민적 동의 없이 여야 가릴 것 없이 대선공약으로 손쉽게 도입되었다. 노조가입률이 11%에 불과하지만 조직된 노조의 힘은 표를 결집하는 힘을 가졌고, 표를 얻어야 하는 각당은 노조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무원과 교원 노조의 타임오프제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노조활동에 임하는 노조원의 임금은 노조가 부담하는 것은 국제노동기구(ILO)나 대다수 국가에서 보편적 원칙이다.

노동과 관련한 정책의제들을 대선국면에서 표를 얻기 위해 손쉽게 떨이로 입법화하는 현재의 노동개악은 중단되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노동개혁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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