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디지털 위안화', 달러 패권 체제에 균열 낼 수 있을까

박현 2022. 1. 2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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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위안화가) 글로벌 기축통화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거래 규모뿐만 아니라 국제적 신뢰성과 안정성, 금융 및 자본시장의 대외 개방 정도, 경제·금융 관련 법·제도의 구축, 지정학적 요인 등 다양한 측면이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에 디지털 위안화 발행만으로 위안화의 국제화가 단기간 내에 급속히 진전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 인민은행이 베이징겨울올림픽을 한달 앞둔 1월4일 법정 디지털화폐인 ‘디지털 위안화’(e-CNY)의 전자지갑 앱을 정식으로 앱스토어에 내놓았다. 사진은 상하이의 상점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해 결제하는 모습이다. 상하이/연합뉴스

중국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 디지털화폐인 ‘디지털 위안화’(e-CNY)를 주요 10개 도시에서 시범 운영한 데 이어, 다음달 베이징겨울올림픽 기간에 전세계에 선보인다. 베이징을 방문하는 외국인 방문객에게도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방문객은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과 슈퍼마켓, 유명 관광지 등에서 이 디지털화폐를 사용할 수 있다. 중국은 2020년 선전을 시작으로 상하이 등 10개 도시에서 시범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이 디지털화폐 발행 경쟁에서 앞서고 있다는 점을 선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들은 현재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과 관련해 대부분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지폐·주화 같은 실물 화폐를 대체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화폐를 말한다. 디지털 위안화는 스마트폰의 전자지갑에 저장되는데, 실물로 발행되는 위안화 현금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실질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가상자산은 가격 변동성이 극심한 반면에 디지털 위안화는 현금처럼 안정적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4일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 앱을 앱스토어에 내놓았다. 이 앱에서는 중국어 대신 영어를 선택해 쓸 수도 있다. 국제적인 통용을 염두에 둔 조처로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 디지털 위안화의 이용자와 사용 가능 장소는 각각 2억6100만명, 800만곳에 이르고, 총 거래액은 876억위안(약 16조4300억원)이다. 물론 일반인들의 사용은 극히 초기 단계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19일치에서 “베이징 동부지역의 한 슈퍼마켓 직원은 디지털 위안화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고객이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며 “정부가 사용을 독려하기 위해 발행한 바우처 등을 사용하는 데 국한돼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디지털화폐를 도입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는 알리바바·텐센트 같은 민간 기업이 장악한 모바일 결제 시장을 정부가 통제하려는 것이다. 두 회사의 모바일 결제 수단인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현재 모바일 결제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둘째는 국제 지급결제에서 기축통화인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위안화의 국제화를 촉진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2010년부터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했으나 여전히 국제 결제 시장에서 이용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의 관점에서는 두번째 목적이 중요하다. 디지털 위안화가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하면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70여년간 지속되고 있는 달러 기축통화 체제에 균열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각국 중앙은행들은 디지털화폐가 기존 환거래뱅킹 방식의 복잡하고 긴 중개 절차를 단순화해 소요 시간을 단축하고 수수료를 낮추는 등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보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조사를 보면, 전세계 중앙은행의 86%가 관련 연구·개발 또는 실험을 추진 중이다. 몇몇 국가들은 디지털화폐의 국경 간 거래를 위한 규제·감독과 감시체계를 공동 연구하고, 기술적 표준을 만들기 위한 협력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실험은 앞으로 국제표준 설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반면에 미국의 움직임은 매우 느린 편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애초 지난해 여름께 관련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해를 넘겨 올해 1월20일에서야 ‘디지털 달러화’의 장단점을 설명하는 토론문 형식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가계와 기업들이 안전한 전자 지급결제 수단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점을 거론하면서도, 금융시장 안정성에 대한 위해, 사생활 보호 문제, 사기와 불법 행위에 대한 대처 등의 해결 과제도 언급했다. 연준은 “이 토론문이 어떤 정책 제안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 달러화. <한겨레> 자료사진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달 20일치에서 “연준 관리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찬성파들은 자금 거래의 신속성과 낮은 거래비용, 은행 계좌를 갖지 못한 금융 소외계층 포용, 팬데믹 같은 상황에서 정부 보조금 직접 지급 등의 이점을 든다. 또한 기축통화 보유국으로서 국제표준 개발에 처음부터 참여해야 할 필요성도 거론한다. 반면에 반대파들은 지금도 달러 거래가 매우 디지털화돼 있고, 금융포용은 다른 수단으로도 가능하며, 중앙은행이 개개인들의 거래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점 등을 거론한다. 필라델피아 연준에서는 금융위기 발생 시 개인들이 은행 예금이나 펀드에서 돈을 인출해 초안전자산인 디지털 달러로 바꿀 유인이 생기는 등 금융 시스템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보고서도 내놨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해 여러 차례 공개석상에서 국제 지급결제 시장에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언급하면서 “빨리 도입하는 것보다 제대로 도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신중한 태도로 볼 때 디지털 달러 발행과 관련한 미국의 결정이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중국보다 디지털화폐 발행이 늦더라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배경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금융 전문가들은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더라도 국경 간 자금 거래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간소화되긴 하겠지만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경 간 지급결제는 자국 은행과 상대국 은행, 은행 간 자금 거래 요청·확인 통신망인 국제결제시스템(SWIFT), 실제 지급결제를 실행하는 주요국 환거래은행 등을 거쳐야 한다. 각 나라는 통화주권 보호 필요성과 자금세탁, 불법자금 유입 가능성 등 때문에 다른 나라 디지털통화가 자국 내에서 자유롭게 통용되게 할 수는 없다.

세계적인 화폐 전문가인 미국 버클리대의 배리 아이컨그린 교수는 지난해 8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이 콜롬비아에서 커피를 수입해 수입대금을 ‘디지털 원화’로 지급한다고 하자. 그런데 콜롬비아 수출업자가 디지털 원화를 사용하려면 좀 더 유용한 통화로 바꿔야 한다. 결국 뉴욕에 있는 은행을 통해서 달러로 환전해야 할 것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200개 국가가 디지털화폐를 발행했을 때 이들 간에 상호 운용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수천개의 협약이 필요할 것인데 이건 가능하지 않다”며 “결국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국제 지급결제 시스템을 바꾸지 못할 것이고 달러의 지위도 흔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부분적인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은 존재한다. 우선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가들과 송금이나 무역 결제에 디지털화폐를 통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포괄하는 거대 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인민은행의 디지털화폐 추진 과정을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중국은 일대일로를 잇는 국가들에 인프라 건설뿐만 아니라 금융 지원도 해주고 있다. 국경 간 전자상거래와 대금 결제에 중국 디지털화폐를 사용하도록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이 달러를 무기로 휘두르는 제재의 칼날을 피하고자 하는 국가들도 이를 사용할 수 있다. 이란은 2018년 미국의 제재로 인해 원유를 수출하고도 한국을 비롯한 외국으로부터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북한 등도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국제무역과 금융거래에 큰 제약을 받고 있다. 이들 국가가 중국과 거래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할 경우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 수단인 금융제재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위안화가 이런 부분적 사용을 넘어 앞으로 10년 내에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미 코넬대 교수는 저서 <화폐의 미래>에서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했지만 자본 통제와 환율 개입 문제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디지털 위안화도 마찬가지”라며 “자본시장을 자유화하고 환율 결정을 시장에 맡기더라도 법·제도 안전성·신뢰성 측면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달러처럼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디지털 위안화가) 글로벌 기축통화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거래 규모뿐만 아니라 국제적 신뢰성과 안정성, 금융 및 자본시장의 대외개방 정도, 경제·금융 관련 법·제도의 구축, 지정학적 요인 등 다양한 측면이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에 디지털 위안화 발행만으로 위안화의 국제화가 단기간 내에 급속히 진전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현 | 논설위원. 1994년부터 경제·국제·사회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워싱턴특파원·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파원 시절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산복합체 등을 취재했으며,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를 폭로한 보도로 관훈언론상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발전상을 현장 취재했다. G2의 패권 경쟁이 한국 경제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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