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2 l 임신에 웃지 않는 새댁이란 ①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기자는 아직 미혼이지만 곧 기혼 대열에 합류한다. 결혼을 준비하며 겪은 마음고생보다 가끔 더한 걱정을 불러온 것이 있다. 새로운 가족이 될 시댁의 존재다. 평소 집에서도 살가운 딸이 아닌지라 문득 괜한 걱정이 들었다. 카카오TV '며느라기1'(2021)을 보며 더욱 그랬다. "둘만 잘 살면 됐지"라는 예비신랑의 다독임은 판타지에 가까운 말처럼도 들렸다.
'며느라기'의 민사린(박하선)이 보여준 '착한 며느리 증후군'은 기자의 미래가 아닐까 싶었다. 세상 독립적이고 까칠하던 친구가 결혼해서 마찬가지의 증상을 보여준 것도 한몫했다. 사린이 시어머니의 생일상을 차리는 것을 보며, 그 행위를 평범한 것으로 느끼기도 했다. 종종 예비 시어머니와 통화할 때, 기자 역시 세상 조신하고 고운 목소리를 내려 애썼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가부장제 끝자락에서 자란 밀레니얼 세대들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사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첫째 며느리 백은혜(정혜린)의 할말 다하는 태도를 보며 통쾌함을 갖는 것도, 실제에선 거의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막말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시어머니의 아무말과 극적인 상황들은 '며느라기'를 막장 드라마에 분류해 놓을 수 있을 만큼 자극적이지만, 이 장면들은 '막장 같은 현실'의 실제 사례를 철저하게 고증했다. '며느라기'가 하이퍼리얼리즘이라 평가 받는 이유다. 입소문을 좋게 타고, 화제성을 유인한 것도 전국 며느리들의 '격공'과 '지지'를 받아서였다. 가부장제의 은근한 지배를 받은 사린의 '착한 며느리 증후군'을 답답하다 평가할 지언정 '며느라기'에 대해선 호평 일색인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새 시즌을 시작한 '며느라기2…ing'(이하 '며느라기2')는 사린의 또 다른 고충을 담아낸다. 이제 '착한 며느리 증후군'에서 좀 벗어나는가 싶더니, 원치 않은 아이가 찾아왔다. 사린이 몸의 이상을 느끼고 임신테스트기를 하는 장면에서, 박하선의 표정은 뭇 여성들의 복잡한 심리를 고스란히 운반해낸다. 며느리에게 유통기한 지난 빵을 선물이라 쥐어주는 시어머니의 변치 않은 행동만큼이나, 사린이 겪어내는 결혼의 녹록잖음은 인상쓰며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기자도 양가에 '딩크족'을 선언했던지라, 사린의 달갑지 않음이 더욱 살에 와닿았다. 출산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다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훈계했던 친아버지의 말처럼 50대 이상의 어른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건 역시 이를 겪어내는 결혼한 여성들이다. 그간 TV 드라마 속에서도 신혼부부의 임신 장면은, 기쁨과 환희가 가득한 행복한 것으로 묘사되곤 했다. 허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목소리가 높아진 요즘, 이같은 장면들이 표준화되는 건 그리 반가운 모양새는 아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마주한 사린의 일그러진 표정은 그래서 더 반가웠다. 모든 여자가 임신을 반가워하는 건 아니라는, 자기결정권을 지키고자 하는 현대 여성들의 표상되는 얼굴을 보여주듯 말이다.
그리고 이를 연기한 게 박하선이라 더욱 와닿는다. 박하선은 실제 결혼을 한 기혼자이면서, 단아하고 맑은 이미지로 '최고의 참한 며느리상'으로 꼽히던 배우였다. 그런 얼굴로 여성의 리얼한 결혼 격공기를 그려낸다는 건, '며느라기'를 시청하는 전국 며느리들에게 커다란 위안을 준다. 그래서 착한 며느리 증후군에 걸린 사린이 답답하게 느껴지다가도, 이내 응원하며 이입하게 된다. 이는 사린의 처지를 잘 형상화해내는 박하선의 역량도 잘 따랐기 때문이다.
시즌2는 시즌1에서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확실히 더한 결집력을 부른다. 여전한 현실의 리얼리티로 더욱 공감있게, 그리고 반가운 캐릭터들로 친숙하게 말이다. 한대 쥐어박고 싶었던 남편 무구영(권율)의 탈가부장적인 변화도 조금 감격스럽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며느라기2'의 외침이 더욱 보편적이게 모두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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