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재정준칙 공약과 대통령 선거

여론독자부 2022. 1.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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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
확대 재정 일변도 혼란 극복하고
건전성·효율성으로 차별화하는
시대정신 담은 공약이 지지 얻을 것
[서울경제]

코로나19 추경 드라이브의 거침없는 질주가 연초부터 재개됐다. 607조 원 슈퍼 예산에 이은 70년 만의 1월 추경으로 적극 재정 기조는 올해도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적자 보전 국채 발행과 재정 여력 소진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런 반응이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지출 확대에 있지 않다. 재정 건전성의 일시적 훼손도 핵심은 아닐 것이다. 진정으로 우려해야 할 것은 근본적으로 변화된 재정 환경 속에서 정책 운영의 새로운 룰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혼란 속에서 갈팡질팡한 채 새로운 재정 운용 규칙을 만들지 못하는 무기력이 문제의 본질이다.

정책 당국의 과거 보수적인 재정 기조는 변화된 시대에 더 이상 부합하지 못한다. 기재부의 소극적인 저항에도 정부 지출이 계속해서 급증하는 것이 단적인 근거다. 재정에만 의존하는 정치권의 무계획한 지출 확대도 답은 아니다. 보편적인 현금 지급을 거부는 않지만 재정의 미래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민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정책 당국의 대규모 세수 오차에 돌출적인 추경으로 대응하는 이번 정치적 결정은 파행적이고 임시적인 재정 운용의 단면에 불과하다. 현재 상태라면 재정의 미래는 혼란의 연속과 증폭되는 위험 이외에 기대할 것이 없다. 행정부 위임의 과거 체제나 국회 주도의 현재 방식이 답이 아니라면 결국 시스템에 의한 재정 운용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재정 위험과 파탄을 방지하기 위해 주요 재정 지표의 한도를 법으로 명시하고 관리하는 것이 재정 준칙 제도이다. 정부 실패 예방 목적의 재정 헌법 제정을 처음 주장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뷰캐넌 교수에서 비롯된 제도이다. 아시아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현재 재정 준칙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스템에 의한 재정 통제는 글로벌 표준이다. 현 정부 내 재정의 정치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와중에 준칙 도입에 부정적이었던 기재부가 종전의 입장을 뒤집고 국회에 준칙 법안을 발의한 배경은 그만큼 우리 재정 여건이 위급한 상황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기재부가 고심해 내놓은 준칙은 아쉽게도 정치권의 냉대와 여론의 역풍으로 국회에서 1년 넘게 계류된 채 논의가 실종된 상태다. 확대 재정 기조를 고집하는 국회 다수당의 반대 입장이 가장 큰 이유다. 불투명한 복합 산식과 시행령상 지위 설정으로 재정에 대한 그립을 아직 놓고 싶지 않은 기재부의 의도가 여론의 비판을 부른 탓도 크다.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지금, 재정 준칙 논의가 물속에 가라앉은 것으로 보이나 곧 폭발력 있는 의제로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현재 대선 공약들이 선심성으로 흐르며 후보들 간 정책이 동조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이는 캠페인 초기 단계의 현상일 뿐이다. 선거가 본격적 국면에 들고 진검 승부를 피할 수 없게 되면 후보 간 정책 차별화가 국민의 선택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정책 대결을 통해 대선을 승리하고 싶다면 국민은 항상 시대정신에 맞는 지도자를 선택해왔다는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단언컨대 코로나19 위기로부터의 따뜻한 치유와 공정한 회복이다. 국민 모두가 건실하고 고르게 회복되는 데 필요한 재정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가 결국 국민의 신뢰를 얻어 국정 책임자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확대 재정 일변도의 혼란을 극복하는 ‘질서 있는 적극 재정’이 포스트 코로나 재정 운용의 신체제로 요구된다는 점에서 투명하고 현실적인 재정 준칙을 공약하는 후보가 이념에서 자유롭고 실용을 추구하는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됨은 자명하다. 재정의 역할을 적극화하되 건전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게 돕는 현실적인 재정 준칙으로는 국가 채무의 단순한 상한보다는 각 정부 내 채무 증가의 상한을 법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 정부 첫 번째 국정 성과로 각 정부 임기 5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 상승 폭을 일정 수준(예를 들어 7%포인트) 이하로 제한하는 ‘채무 증가 상한제’의 입법화를 기대한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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