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칼럼] '언론 운동장'은 누구에게 기울었나?

한겨레 2022. 1. 24. 05: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준만 칼럼]윤석열은 공개석상에서 사랑방 잡담회에서나 쓸 법한 화법으로 말을 해대는 바람에 즉각 수많은 실언 논란에 휩싸였다. 취지를 무시하고 말꼬투리나 잡는 언론이 원망스러운가? 그 전에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잡담회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게 우선이다.
그래픽_박민지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기울어진 언론 운동장’이란 말이 있다. 진보와 보수, 또는 여야 정당 중 어느 한쪽이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 시장에서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쓰는 말이다. 나도 한때 이 말을 많이 썼다. 진보정권이 들어섰다 해도 시장은 보수언론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에 진보정권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썼다. 종이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하지만 디지털 미디어가 신문을 압도하고 소멸의 위기로 내몰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이 말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말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 “언론 보도에서 우리 편이 부당하게 당하고 있다”는 걸 강조함으로써 그 어떤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정략적 용법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은 “언론 환경이 매우 나빠서 우린 잘못한 게 없어도 잘못한 게 있을 수 있다는 소문으로 도배가 된다”고 주장했고,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 쪽은 “언론 환경이 (윤 후보에게) 너무 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할까? 둘 다 믿을 필요 없다. 인터넷·소셜미디어·유튜브 등 뉴미디어가 기성 언론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 형성 권력은 언론에서 소비자들에게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언론 운동장’의 기울기는 어느 쪽 지지자들이 미디어 소비와 참여를 더 활발하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재명이 지지자들에게 “우리가 언론사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것도 바로 그 점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저들의 잘못을 카톡으로, 텔레그램으로, 댓글로,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쓰자)”고 했다.

그렇긴 하지만 의제 설정에서 기성 언론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므로 언론의 속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윤석열 쪽은 왜 언론이 그들이 보기에 더 중요한 대장동 의혹 사건은 놔두고 김건희 문제만 집중 보도하느냐고 했는데, 이런 항변은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다. 적어도 언론의 시장논리로만 보면 그렇다.

언론사마다 특정 후보를 선호하는 정파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건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서만 드러날 뿐이며, 영향력도 매우 약해졌다. 뉴스에도 정파성이 스며들긴 하지만, 뉴스 의제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세상이 아닌가. 뉴스는 소비자들의 흥미성이나 호기심 충족을 기준으로 선택된다. 사회적 중요성도 그 기준에 부합할 때에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다.

김건희 관련 이야기는 ‘흥미성·호기심’에서 단연 최고의 ‘예능 뉴스’였다. 게다가 취재 비용도 낮고 어려움도 없는 ‘저비용 고효율’ 기사였다. 반면 대장동은 이미 3개월 묵은 사건인데다 문재인 정권의 수사기관들이 사실상 ‘태업’을 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언론이 독자적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엔 역부족이었다. ‘고비용 저효율’ 기사이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언론사도 드물었다.

‘김건희 뉴스’의 폭증은 윤석열의 자업자득이었다. 김건희는 왜 자꾸 기자들과 통화를 해서 자신에게 부정적인 기사를 양산해냈을까? 자신이 언론 상대를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한 걸까? 왜 윤석열은 그런 김건희를 말리지 못했을까? 왜 김건희의 허위 경력 의혹 제기에 대한 윤석열의 초기 대응은 그 자체로 주요 뉴스가 될 만큼 어리석고 오만했을까?

끊임없는 ‘무속 논란’도 윤석열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지 언론이 만든 게 아니잖은가. 윤석열의 실언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치인이 아무리 모순된 발언을 자주 한다 해도 수개월 또는 수십일의 시차를 두고 하면, 이런 ‘모순 실언’은 언론의 보도 그물망에 잘 걸리지 않는다. 언론은 수십일만 지나면 과거를 까맣게 잊고 ‘오직 현재’의 발언에만 집착해 문제를 삼는 체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공개석상에서 사랑방 잡담회에서나 쓸 법한 화법으로 말을 해대는 바람에 즉각 수많은 실언 논란에 휩싸였다. 취지를 무시하고 말꼬투리나 잡는 언론이 원망스러운가? 그 전에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잡담회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게 우선이다.

이재명과 윤석열 가운데 언론은 각자 내심 누구를 더 편들긴 하겠지만 뉴스 생산에선 그걸 드러내기 어렵다. 뉴스 가치는 세월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소비자의 클릭 하나로 승부를 보는 오늘날엔 흥미성과 호기심 충족이 절대적인 제1의 뉴스 가치로 등극했다. ‘녹음파일 공방전’이 벌어지면서 ‘이재명 욕설’이 다시 주목받는 걸 보라. 어느 신문은 “사생활 폭로 대선에 국민은 짜증 난다”고 개탄했지만, 이는 디지털 혁명이 증폭시킨 풍경이기도 하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