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잡으면 무사하지 못할 거야"라는 그 말

한겨레 2022. 1. 2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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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논썰> ‘국정농단’ 연상시키는 김건희 ‘7시간 통화’. 논썰 화면 갈무리

[세상읽기]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복수는 나의 것, 머지않아 그들이 실족하리라. 그들에게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구약성서 ‘신명기’ 32장 35절에 나오는, 이민족들에게 고통받는 유대인들에게 내린 야훼의 말씀이다. 우리에겐 <복수는 나의 것>이란 영화 제목으로 더 익숙한 표현이다. ‘복수’는 일종의 ‘보복’의 행위다. 보복이란 ‘피해 당사자가 부당하게 당한 것에 대해 가해자에게 되돌려주는 행위’다. 부당한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점에서 보복, 복수는 일종의 도덕적 반응이다.

이런 보복은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더욱 중요한데, 이 행위가 자존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철학자 제프리 머피는 “도덕적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자신에게 덮친 가해에 대해서 되돌려주고 싶은 감정이 없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기본적인 자존감이 없기 때문”이라 본다. 오히려 이런 감정은 ‘나쁜 일을 했다면 거기에 동등하게 해당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정의’의 발상을 우리가 지지하게 되는 동력이다. 이런 보복이라는 도덕적 반응이 ‘정의’의 차원으로 옮겨질 때 우리는 ‘응보’라고 부른다. ‘한 짓만큼 되돌려준다’는 일종의 등가성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보복의 행위가 등가성의 원칙을 쉽게 벗어난다는 데 있다. 사적인 보복의 행위는 대개 증오의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존 로크의 <통치론>을 보면, 자연 상태에서도 이성의 목소리를 듣고 협력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바로 과다한 보복이다. 대개의 보복은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는 일이 되곤 한다. 로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사회가 필요하다며 보복을 철저하게 ‘법에 의한 것’으로만 제한한다. 이렇게 보면 근대 정치사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과다한 응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복수를 사적으로 못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세계야말로, 정치사회가 법으로 통제해야 할 과다한 보복이 일어나기 쉬운 곳이다. 이곳이 권력투쟁의 장이기 때문이다. 극단적 권력투쟁은 ‘저들이 나와 같은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적대감에 휩싸인 증오의 감정을 낳는다. 적대감에 기반한 이 증오, ‘저들이 이 세상에 없다면’이라는 감정은 권력투쟁에서 가해 집단에 대한 과도한 보복으로 이어지곤 한다. 과도한 보복을 받았다고 믿는 집단은 자신이 가해자였음에도 과도한 처벌로 인해 이제는 피해자가 되었다고 믿고, 다시 보복에 나서는 일이 반복된다. 이런 악순환이 지속될 때 이제 정치보복에는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응보의 정의는 사라지고 법과 공권력을 전횡하는 이기적인 자존감만 남는다.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긴 무사하지 못할 거야. 권력이라는 게 잡으면 우리가 안 시켜도 경찰들이 알아서 입건해요. 그게 무서운 거지.” 김건희씨의 녹취파일에 담긴, 법원이 사적 발언으로 보고 방송을 금지한 내용이다. 맥락을 보면 학력 위조와 관련된 이야기 끝에 나온 발언이다. 학력위조를 한 건 자신인데 그 일을 밝힌 언론을 두고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거기다 그 가만두지 않을 권력을 잡는 주체가 국민이 선출하는 대통령 후보도 아닌 ‘자신’이라고 당차게 말한다. 우리가 안 시켜도 공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알아서 굽신댈 것이라며 말이다.

법원의 판단과 달리 이 발언을 사적으로만 볼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원래 보복이란 ‘부당하게 당한 것’에 대해 가해자에게 돌려주는 행위다. 학력위조에 관해 김건희씨에게 가해진 부당한 일이 무엇인가? 오히려 학력위조를 통해 김건희씨가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점에서 그 자신이 가해자라 할 수 있다.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 없이 스스로를 피해자라고만 보는 것으로, 녹취에 담긴 내용은 정치보복의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법과 공권력의 전횡을 일삼는 이기적 자존감’만 남은 전형적인 발언이다. 정권교체 때마다 정치보복 논란이 이어지는 우리 정치를 돌아보면 사적으로만 보기엔 너무 위험한 말인 것이다.

“우리 역사의 최대 오점인 정치보복의 악폐를 내가 당한 것으로 끝마쳐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기고 실천한 말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이 고귀한 실천을 이어가지 못했다. “권력을 잡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복수는 나의 것’이란 그 말, 이제 공적 세계에서 반드시 몰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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