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만의 가출

부산/김상윤 기자 2022. 1.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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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로야구를 빛낼 별] 롯데서 NC로 팀 옮긴 손아섭
“NC가 가장 내 가치를 인정… 능력 잘 펼칠 수 있는 구단
태어나 처음으로 부산 떠나 잘할수 있을까 밤마다 고민
올 NC파크서 가을야구 하고싶어… 롯데 팬들에겐 약속 못지켜 죄송”

이번 프로야구 스토브리그에서 가장 충격적인 이적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손아섭(34)의 NC행을 말할 것이다. 손아섭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를 졸업하고 2007년 롯데에 입단해 15시즌을 뛴 ‘부산 사나이’다. 만 33년 동안 부산을 떠난 적이 없던 그는 작년 말 NC와 4년 총액 64억원에 생애 두 번째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맺고 창원으로 향하게 됐다.

“인연, 운명이란 게 참 신기한 거 같아요.”

최근 부산 전포동의 한 피트니스 클럽에서 만난 손아섭은 ‘작년 이맘때 NC에 갈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팀을 옮긴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계약서에 사인했다는 손아섭은 훈련 집중도를 높이려 제주로 떠나 기술 훈련에 매진했고, 얼마 전 부산으로 돌아와 체력 훈련 등을 하며 다음 달 2일 시작하는 구단 스프링캠프를 준비하고 있다.

NC 외야수 손아섭이 지난 18일 부산 전포동의 한 피트니스 클럽에서 팀 운동복을 입고 근력 운동을 하고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 롯데 유니폼을 15년간 입었던 손아섭은 지난달 24일 NC로 FA(자유계약선수) 이적했고, 다음 달 초부터 창원NC파크와 마산야구장 등에서 열리는 구단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예정이다. 그는 “(NC와 계약한 뒤) 시간이 지나서 적응이 많이 된 것 같다. 지금 입고 있는 NC 옷이 이제는 별로 어색하지 않다”며 웃었다. /김동환 기자

롯데와 NC를 포함해 여러 팀이 손아섭에게 영입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아섭은 그중 NC를 택한 이유에 대해 “NC는 저를 가장 필요로 하고, 제 가치와 능력을 가장 인정해 준 구단”이라며 “또 제 능력을 가장 잘 펼칠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프로에서 선수 가치란 곧 돈으로 통한다. NC와 계약한 금액에 비해 친정팀 롯데가 내놓은 액수(4년 총액 42억원)는 훨씬 적었다. 그럼에도 손아섭은 고민을 거듭했다.

“학창 시절부터 부산을 떠난 적이 없거든요. 부산에 정이 많이 들어서 바로 선택할 수 없었어요. 솔직히 요즘도 밤마다 잠들기 전에 ‘(NC에서) 잘할 수 있을까. 잘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해요.”

손아섭은 또 “NC가 강팀이라는 것이 내게 매력적이었다”며 “롯데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NC는 매년 포스트시즌에 올라갈 수 있고 우승권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라고 했다.

손아섭은 당분간 롯데 팬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그는 “‘우승을 선물하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못 지켜서 죄송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부산 지역지에 “보내주신 사랑을 평생 잊지 않겠다”는 광고를 실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는 어르신 팬들께 어떻게 인사를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신문에 광고를 내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며 “제 진심이 조금이나마 전달된 것 같아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고 했다.

손아섭은 “롯데를 떠나며 후배들에게 감동했다”고 했다. 그와 1군에서 잠깐이라도 함께 뛴 적이 있는 선수들이 앞다퉈 그에게 전화했다고 한다. 손아섭은 “제가 (무뚝뚝한) 부산 사람이라 전화로는 표현을 잘 못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등번호(31번)를 물려받은 내야수 나승엽에 대해선 “능력이 워낙 출중하고, 신체 조건이나 야구 스타일이 나와는 다르다. 제2의 손아섭이 아니라 제1의 나승엽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NC 외야수 손아섭이 지난 18일 부산 전포동의 한 피트니스 클럽에서 팀 운동복을 입고 근력 운동을 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근성 있는 플레이로 유명한 손아섭은 “NC 팬도 같은 경상도 분들이니 제 플레이 성향을 좋아해 주실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타순이나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많이 출루하고, 한 베이스를 더 가는 주루로 양의지, 박건우, 외국인 타자(닉 마티니), 노진혁 등 중심 타선의 타점 기회를 많이 만들겠다”고 했다.

손아섭은 리그 최고 교타자이지만, 30대 중반에 접어들며 장타력이 많이 떨어졌다. 지난 시즌 초반 부진에 시달리기도 했다. 손아섭은 “장타력을 신경 쓰니 스윙이 커지고, 그러다 보니 밸런스가 무너졌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OPS(출루율+장타율)를 중시하는 게 현대 야구 추세인데, 출루율만으로 OPS를 높이는 건 한계가 있더라고요. OPS 9할을 넘기고 싶어서 장타력에 욕심을 냈던 게 사실이에요. 그게 좋게 흘러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은퇴하는 날까지 장타력이란 숙제는 계속 풀어나가야 할 것 같아요.”

NC 외야수 손아섭이 지난 18일 부산 전포동의 한 피트니스 클럽에서 팀 운동복을 입고 근력 운동을 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손아섭은 “구창모, 송명기, 임정호 등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NC 투수들과 같은 팀이 돼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승부가 기대되는 롯데 투수로는 “젊은 투수들, 그중에서도 최고의 패스트볼(직구)을 던지는 최준용을 상대하고 싶다. 저도 워낙 빠른 공을 좋아해서 더 기대된다”고 했다.

손아섭은 ‘기왕 팀을 옮겼으니 꼭 우승하라’는 메시지를 받고 우승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해졌다고 한다. 그는 “올 시즌은 꼭 ‘엔팍’(창원NC파크)에서 가을 야구를 하고 싶다. 재밌는 경기를 보여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저를 격하게 환영해주신 NC 팬들을 야구장에서 하루빨리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최종 결정권자이신 김택진 구단주님께도 좋은 대우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산=김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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