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멈추지 않는 제조업 탈중국 행렬
미중 체제 경쟁 속 제조업 탈중국 가속화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중국 내 외자 기업들의 철수 러시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세계 1위 카메라 제조업체인 캐논이 1월12일 광둥성 주하이 카메라 공장 철수를 발표했죠.
캐논 주하이 공장은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 렌즈, 이미지센서 등을 생산하는 곳으로 캐논의 3대 해외 생산기지 중 하나입니다. 주하이 시내에 20만㎡의 부지를 가진 대규모 공장이에요. 한때 1만명이 넘는 직원이 연간 13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직원 수가 1000명도 안 된다고 합니다.
◇캐논, 신장 인권 문제 지적에 부담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카메라 시장이 좋지 않다는 점이겠죠. 이 공장은 스마트폰 보급으로 시장이 크게 위축된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주로 생산해 왔다고 합니다. 캐논 제품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 티베트 지역 소수민족 감시와 탄압에 이용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미국과 일본 정부의 철수 압박도 있었다고 해요.
이틀 뒤인 1월14일에는 독일 자동차 업체 폴크스바겐이 톈진 자동변속기 공장, 중국 이치(一汽) 자동차와 합작으로 세운 연산 30만대 규모의 자동차 생산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습니다. 톈진은 최근 오미크론 유입으로 도시 전체가 봉쇄된 상황이죠.
앞서 작년 연말에는 세계 1위 타이어 회사인 일본 브리지스톤이 광둥성 후이저우 공장을 폐쇄했죠.
사실 중국 내 외국기업의 철수 붐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계속되는 인건비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커졌고, 현지 진출 외국 기업의 기술을 베낀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 상승으로 경영 환경이 갈수록 나빠졌죠.
여기에 2018년 무역전쟁을 시작으로 미중 체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 내 외자기업은 미국발 관세 폭탄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2019년에는 우한에서 터진 코로나19사태로 중국 내 생산 시설 가동이 중단되면서 부품 조달 등에 차질을 빚게 됐죠.
생산기지를 중국에 몰아뒀던 주요 국가들이 생산 기반 일부를 인도, 동남아, 멕시코 등지로 옮기는 글로벌 공급망 조정이 시작됐습니다.
◇탈중국 원조는 홍콩 부호 리카싱
사실 탈중국의 원조는 홍콩 기업인들이었죠.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국 공산당이 기존의 개혁개방 노선에서 벗어나 좌경 노선으로 기울 것임을 가장 먼저 눈치 챈 겁니다.
홍콩 최고 부호인 리카칭 전 청쿵홀딩스 회장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 돈으로 17조원이 넘는 중국·홍콩 지역 자산을 모두 처분해 유럽에 투자했죠. 다른 홍콩 재벌들도 리카싱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이 불붙은 이후로는 한국과 미국, 일본, 대만계 기업들이 줄줄이 동남아 등지로 생산 기반을 옮겼죠.
삼성전자는 2019년과 2020년에 걸쳐 후이저우 스마트폰 공장, 쑤저우 LCD 공장과 컴퓨터 제조 공장 등을 폐쇄했고, 작년에는 삼성중공업이 중국 닝보 공장 문을 닫았습니다. 쏘니, 도시바 등도 중국 내 공장을 폐쇄하고 태국 등지로 생산 시설을 옮겼죠. 미국도 스포츠웨어 브랜드 언더아머, 전동공구 업체인 스탠리블랙앤데커 등이 미국 본토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로 생산 기지를 전환했습니다.
대만 기업들의 탈중국 행렬도 가속이 붙고 있어요. 작년 대만 기업들의 대중국 직접 투자 액수는 15% 가까이 줄었다고 합니다. 중국 내 공장을 철수하고 미국과 인도, 베트남 등지로 생산 기반을 옮겨가는 거죠.
◇외자기업 직접 고용만 4500만명
그중에서도 100만명이 넘는 인력을 고용하던 세계 최대 위탁생산업체 폭스콘의 이탈이 중국 입장에서는 뼈아플 것입니다. 폭스콘은 각각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인도, 베트남, 멕시코 등지에 생산기지를 건설했거나 건설할 예정이죠. 폭스콘은 2020년 기준 중국 수출액의 4.1%를 차지했던 기업으로, 고용뿐만 아니라 중국 수출에도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이고 광활한 내수 시장을 갖고 있죠. 외자 기업들이 단기간에 이 시장과 공급망을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탈중국 흐름은 앞으로 더 속도가 붙을 전망입니다. 마오쩌둥 시대로 되돌아가는 나라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게 불안한 거죠.
리커창 총리는 2020년 6월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2억명의 일자리가 걸린 외국무역 분야 업체들이 코로나 19로 인한 경영난에 빠지지 않도록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관영매체들은 여전히 외자 유치 실적이 좋다고 앵무새처럼 떠들고 있지만, 당내 개혁파들은 탈중국 문제로 인한 고심이 크다는 걸 보여준 사례이죠.
중국 내 외자기업들은 직접 고용 규모만 4500만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협력업체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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