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마음의 상처 먼저 꺼내놓으니 '상담의 힘' 생겼어요"

강성만 2022. 1. 2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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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그림책 심리성장연구소 김영아 소장

김영아 소장이 지난 1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영아 그림책 심리성장연구소장은 2007년부터 ‘한겨레교육’에서 독서치료 교육을 해왔다. 내담자와 책을 함께 읽으며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이 수업 내용은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2009년·삼인)라는 책으로도 나와 주목을 받았다. 그는 5년 전부터 마음 치유 매체를 그림책으로도 돌려 내담자와 만나고 있다. 이 강의를 바탕으로 낸 <내 마음을 읽어주는 그림책>(2018년·사우)은 벌써 6쇄를 찍었단다.

그는 새달 16일부터 6주 동안 한겨레교육에서 마음치료 프로그램 ‘그림책으로 나를 만나는 여행’ 강의를 한다. 지난 17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김 소장을 만났다.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를 보면 저자가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같은 책을 매개로 내담자들이 꽁꽁 감춘 상처를 마주하도록 이끌어 궁극적으로는 치유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고부갈등으로 힘겨워하던 며느리는 암탉의 진정한 모성을 그린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시모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한 내담자는 가난한 달동네를 배경으로 가정폭력 등 온갖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이 나오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매개로 어린 시절 자신의 상처를 바로 볼 수 있었단다.

지난 15년 동안 수천 명을 독서치료로 만났다는 김 소장은 이 수업의 효능을 이렇게 풀었다. “책을 읽고 소감을 말하는 중간중간 제가 ‘치료적 발문’으로 사람들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예컨대 <괭이부리말 아이들>에서는 ‘자, 혹시 이 책을 읽으며 나한테도 주인공들에게서 보이는 이런 비슷한 감정은 없는지, 또 때로 울컥울컥 분노가 치솟는 일은 없는지 한번 말해보세요’라고 물어요. 여기에 이끌려 누군가 용기 내어 먼저 자기 이야기를 풀면 이에 힘입어 다른 분들도 이야기하죠. 끝내 입을 다물었던 사람도 수업 중 마음이 흔들렸다면 치유 효과를 본 거죠.”

독서를 통한 마음치유의 장점은 뭘까? “치유를 위해선 반드시 자기 상처를 직면하는 단계가 필요해요. 그런데 이 과정이 쉽지 않아요. 고도의 숙련된 상담가가 아니면 오히려 상처를 키우고 저항도 생깁니다. 하지만 책을 매개로 하면 이 과정이 좀 더 쉬워요. 사람들이 책의 등장인물이나 상황과 동일시해서죠. 이야기가 풍부한 것도 장점이죠. 같은 문제로 자기 아닌 다른 사람들도 아파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어떤 상황에 대한 다양한 관점도 접하면서 상처 치유에 도움을 받죠.”

김 소장이 2009년 펴낸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표지. 출판사 삼인 제공

이화여대 국문과 86학번인 그는 대학 4학년 때 직접 보습학원을 차려 논술을 가르쳤단다. “대학 다니며 야학 활동을 했어요. 그때부터 공교육 바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열정을 키운 것 같아요.” 결혼하고도 학원을 하며 논술 강사로 바삐 살던 그는 만 36살 되던 2004년 이화여대 대학원에 들어가 상담심리학을 전공했다. 7년 뒤에는 서울기독교대에서 상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뒤늦게 상담심리학을 공부한 데는 사연이 있다. “7살 큰 아이에게 어느날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는 원형탈모증이 생겼어요. 제가 얼마나 아이를 무심하고 이기적으로 대했는지 그제야 깨달았죠. 제 마음의 열등감과 자기 비하의 그림자가 그 아이에게 드리워졌던 거죠. 뒤늦게 대학원 공부를 한 가장 큰 계기였죠.”

어린 시절 가난과 외모 열등감은 오랜 기간 그를 짓누른 상처의 뿌리였단다. “제가 안면기형으로 태어나 지금껏 코 수술을 세 번 했어요. 40대 초에 한 마지막 수술이 잘되어 지금은 나은 편이지만 처음 두 번은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그 때문에 외모 열등감이 무척 컸죠.”

1986년 대학때부터 논술·야학 강의
“7살 큰아이 원형탈모증 생겨 충격”
2004년부터 뒤늦게 상담심리학 전공
어릴적 안면기형 ‘외모 열등감’ 자각

2007년부터 ‘한겨레교육’ 독서치료
‘그림책으로 나를 만나는 여행’ 강의

그는 초등 6학년 때 고향인 경기 문산에서 서울로 기차통학을 하다,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져 죽음의 고비를 겪기도 했다. “서울에 따로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새벽 6시에 일어나 통학을 해야 했어요. 제 사고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몇 년간 기차통학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죠.”

그는 지금은 자신의 상처를 내어놓을 수 있는 힘이 생겼고, 이는 자신이 하는 독서치료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단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제 마음을 먼저 내어놓아야 해요. 제 강의를 듣고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평가를 많이 하는데, 아마 저한테 과거의 아픔을 고백할 수 있는 힘이 붙어서겠죠.”

요즘은 그림책을 더 비중있게 치료 매체로 활용한다는 김 소장은 그 이유를 두고 “현대인의 바쁜 삶 등 시대 변화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그림책 치료 효과는) ‘그림책은 아이들이나 보는 거야’라는 생각만 내려놓는다면 100%이죠.” 그간 가장 기억에 남는 독서치료도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 떠나는 내용을 담은 그림책인 <치유그림책>을 내담자와 함께 읽었을 때였단다. “남편에게 종속적인 삶을 살면서 자살 시도까지 했던 분인데 <치유그림책>을 같이 보고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일상도 회복했어요.”

김영아 소장. 백소아 기자

그가 쓴 독서치료 체험기를 살피면 내담자들의 상처 대부분은 부모와 같이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온다. 세상의 부모와 자식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 하나를 구하자 그는 “부모도 자식도 독단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묶여있는 체계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계도를 그려보면 부모에서 자식으로 즉,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잖아요. 사랑이나 화해, 용서도 먼저 부모가 해야 한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론이나 제 경험상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요즘 독서치료로 만난 2030세대는 20년 전과 견줘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많이 다르지는 않아요. 그래도 하나 꼽자면 20년 전이 지금보다 더 주체적이고 용감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자기 상처를 바라보고 문제를 파악하면 과감하게 방향을 틀었는데 지금은 방향 전환에서 주저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자주성이 부족한 거죠. 취업이 쉽지 않아 부모 경제력에 의존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진 탓도 있겠죠.”

그가 보기에 치열한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한국의 아이들은 “다리 하나가 부러진 채 부목도 대지 않고 절뚝거리며 달리기 대열에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사회가 이들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아이들이 살면서 무엇을 해야 스스로 행복할지에 대해 사회가 좀 더 시야를 열었으면 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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