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섭 칼럼] 국민연금 수탁위, 기업 발목 잡지말라

최경섭 2022. 1. 2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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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섭 ICT과학부장

"국민연금공단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발동해 대표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요청할 것이다."

'주식 먹튀' 논란으로 투자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카카오 사태는 결국 회사에서 내정한 류영준 대표가 퇴출되고, 신임 대표가 기용되면서 일단락됐다. 카카오페이 고위 임원진이 스톡옵션 주식을 대량 매도하면서 빚어진 이번 사태는 재계 전반에 '모럴 해저드' 논란을 촉발시키며 큰 파장을 몰고왔다.

다행히 사측의 빠른 판단으로 사태가 조기 수습됐지만, 자칫 3월 정기주총에서 카카오와 주요주주인 국민연금이 대표이사 인선을 놓고 대결하는 상황이 연출될 뻔 했다. 카카오 노조는 먹튀 논란이 증폭되자,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요청해 신임대표 내정 철회를 요청했다. 카카오 지분 7.42%를 확보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대표이사 의결권에 반대표를 행사하도록 우회적으로 압박에 나선 것이다.

카카오 사태를 계기로 국민연금이 기업을 상대로 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 제도가 새해 벽부부터 산업계 전반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시민단체와 노동계가 추천하는 수탁위를 만들어 여기에 맡길 경우 각사 노조의 추천을 받은 대표단이 사측을 겨냥해 인사권은 물론 경영 전반을 문제삼아 반론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관할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제시한 '국민연금 수탁자활동지침'이 본격 시행될 경우, 국민연금이 지분 0.01% 이상을 보유한 주요 기업 및 손자회사까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 LG, SK 등 주요 대기업은 물론 국내 중견기업까지 포함해 1000여곳 이상이 소송전에 휘둘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지난해 정부로부터 대규모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기업과 경영자나 임원진의 횡령, 비리, 배임 등의 혐의로 논란이 된 기업들이 주 타깃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매년 노사대결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돼 온 대기업이나 그 계열사, 대형 사건사고를 일으킨 기업들도 국민연금의 주 표적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떤 기업들을 대상으로 할지, 또 제재 수위는 어느 수준으로 할지 가늠하기도 어려워 기업들의 우려만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3월 주총 시즌을 앞두고 기업들은 막막하기만 하다. 기업들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연기금이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제도적으로 소송을 일상화하고 있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 전무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당장, 정부로부터 큰 과징금 처분을 받은 기업들, 또 대형 사건사고로 사회적 논란이 된 기업들이 3월 주총을 계기로 국민연금 발(發) 2차, 3차 소송에 휘둘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국민연금 운영권을 앞세워 자신들의 정책에 호응하지 않거나, 믿보인 기업을 손보려 하고, 줄 세우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민 모두가 노후자금으로 사용해야 하는 국민 모두의 재원이다.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은 국민들이 노후 재원을 목적으로 맡긴 자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위탁기관일 뿐이다. 국민연금의 주인은 국민인 것이다. 주인의 의사를 물어보지고 않고 정부가 거대 자금의 주인행세를 하면서 국민들과 기업들이 납득할 수 없는 월권행위를 일삼아서는 곤란하다.

국민연금의 최우선 임무는 돈을 불려 국민들이 안정적으로 노후자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제 실질적으로 임기 2개월여도 안 남은 현 정부가 충분한 의견수렴도 없이 이념 편향적인 노동계, 시민사회단체만의 주장을 좇아 수탁위 제도를 밀어붙이는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수탁위 제도에 앞서 오는 27일부터는 일선 산업현장에서 안전 사고를 줄이기 위한 명분으로 경영진까치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도 본격 시행된다. 모호한 법 내용과 과도한 처벌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크지만, 정부나 정치권 모두 기업들의 고통에 눈과 입을 가리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 적폐'를 달고 다녔던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고단함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최경섭 ICT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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