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산안법 위반은 고의범" 판례에도..하급심은 "과실범"

신다은 2022. 1. 2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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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2018년∼2020년 산안법 위반 판결문 1427개 분석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 붕괴 사고 사흘째를 맞은 13일 오후 구조견과 수색대가 실종자 구조작업을 하는 모습을 현대산업개발 공사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광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산업재해 예방 의무를 게을리 한 사업주는 ‘고의범’이라는 대법원 판례에도 상당수 하급심 법원이 여전히 이들을 ‘과실범’으로 취급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20일 <한겨레>가 입수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연구용역보고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에 대한 법 적용상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보면, 이진국 아주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등이 2018∼2020년까지 3년 동안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1·2심 판결문 1427개를 분석한 결과 다수의 하급심 재판에서 산안법 상의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 행위를 과실범으로 보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안법은 사업주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어떤 안전조처를 취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정한 법이다. 사업주가 높은 곳에 올라가 작업하는 일을 지시하면서 추락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산안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4년 산안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 행위에 대해 “(사업주가) 산안법 시행규칙이 정하는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지시하거나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하는 것”이라고 해석해, 일찌감치 사업주의 법 위반을 과실이 아닌 고의임을 명확히 했다.

연구팀은 그럼에도 하급심 재판부가 상당수 사건에서 산안법 위반을 과실범으로 오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0년 4월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노동자에게 석고보드 설치 작업을 지시하면서 추락 방지용 안전난간을 설치하지 않은 사업주에 대해 “주의 의무를 게을리했다”고 판단했다. 주의 의무란 정상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일을 게을리해 죄의 발생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형법에서는 고의가 아닌 과실로 취급된다. 같은해 12월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역시 굴삭기 부품에 노동자가 맞아 숨진 사고와 관련해 하청 사업주가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은 데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업무상 과실”이라고 적었다.

이런 개념 혼동은 법원이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안법 위반을 한꺼번에 다루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는 산안법 위반 여부를,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상 여부를 수사하는데 재판에서 두 개의 죄목을 한꺼번에 다루다보니 산안법 위반 행위가 업무상 과실 치사 행위와 섞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원이 고의범이라 판단하더라도 판결문을 쓸 때 두 개의 죄목을 함께 쓰다보니 개념이 혼동되는 문제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법원의 개념 혼동이 형량에까지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연구팀은 그럴 개연성이 있다고 봤다. 연구팀은 “별도의 과실범 처벌규정 없이 하나의 법 규정으로 고의범·과실범을 모두 처벌하면서 동일한 법정형을 따르게 됐고 그 결과 오직 법원의 양형재량에 맡기는 결과가 됐다”고 지적했다. 형법도 고의와 과실에 차이를 두고 처벌규정을 구분하는데 산안법은 이를 구분하지 않아 재판부에 따라 형량이 들쑥날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는 27일 안전조치 의무를 소홀히 한 경영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더라도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산안법 위반 수사는 별도로 계속되기에 정확한 법 해석은 여전히 중요하다. 지난 11일 발생한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 시공사 에이치디시(HDC)현대산업개발과 지난해 11월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배전 노동자의 원청 한국전력공사 등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에 산재가 발생했기 때문에 산안법 위반으로만 수사를 받는다. 연구책임자인 이진국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법원 뿐만 아니라 근로감독관도 고의인지, 과실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며 “이 법의 위반 행위가 고의범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3년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징역형 비중은 늘고 무죄는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에 대한 징역형은 2018년엔 전체 사건의 33.6%였지만, 2019년 36.8%, 2020년 40.7%로 증가하는 추세다. 반대로 무죄는 5.8%→3.6%→0.9%로 줄어들었다. 법인(기업)의 벌금형 역시 2018년 92.3%에서 2019년 94.5%, 2020년 98.1%로 증가한 반면 무죄는 6.0%, 4.0%, 0.4%로 감소했다. 연구팀은 “최근 산안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준수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그것이 판결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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