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웠어요".. 사돈에 12년간 착취당한 지적장애인의 한마디

김준호 기자 2022. 1. 2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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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로고. /조선DB

10여년 간 한 부부로부터 노동력 착취는 물론 각종 정부 수당까지 빼앗긴 채 살아온 A(50)씨. 피해자로 법정에 선 A씨는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못했다. 중증도의 지적장애를 가져 재판장의 질문을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었다. 본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서툴렀다. 그러던 A씨가 대뜸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10여년 간 지냈던 자신의 허름한 주거 공간을 촬영한 사진을 보여줬을 때였다. “추웠어요.” 이 한마디와 함께 A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A씨를 직권으로 증인으로 채택해 신문했던 재판장은 “피고인들이 피해자를 때려 상해를 입게 하는 등 적극적 가해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더라도 이 같은 사정을 종합해보면 정신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장기간 강요하거나 방치해 학대한 것과 마찬가지다”고 지적했다.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형사1단독 맹준영 부장판사는 횡령 및 장애인복지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65)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고 23일 밝혔다. B씨 아내 C(61)씨에게는 징역 2년6월에 4년간 형 집행을 유예했다.

B씨 등은 경남 창녕군에서 농사를 짓는 부부로, 지난 2009년부터 지난 2020년 12월 중순까지 지적장애가 있는 A(50)씨에게 보수를 주지 않고 일을 시키고, 또 A씨에게 나오는 장애인연금과 수당 등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B씨 부부는 A씨 여동생의 시부모였다. A씨와 엄연히 사돈 관계다. 하지만 A씨는 두 사람을 “주인집 아저씨” “주인집 아주머니”라 불렀다. A씨는 B씨 부부의 과수원 일을 도우며 그곳에서 거주했다.

B씨 부부는 A씨가 지적장애가 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홀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했다. 10년이 넘는 기간 일을 시키고도 사실상 무상으로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러면서 A씨 앞으로 나오는 장애인연금과 기초생활 수당, 기초생계급여, 기초주거급여 등을 가로챘다. 수사기관 조사 결과 두 부부는 2009년 2월부터 지난 2020년 12월까지 182차례에 걸쳐 총 8089만1770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노예같은 삶을 살았다. B씨 부부가 생활하는 곳에서 분리된 방 한 켠에서 생활했다. B씨 부부가 A씨에게 제공한 식사는 형편없었다. 재판장이 “한눈에도 그 상태가 좋지 못하고 부실하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특히 A씨가 지냈던 공간은 전기패널 보일러 시설이 갖춰져 있었는데, B씨 부부는 “전기요금이 많이 나온다”며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A씨는 전기장판으로 추운 겨울을 지내야 했다.

재판 과정에서 B씨 부부는 A씨 서명이 들어간 합의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의 현재 상태를 볼 때 향후 수사와 재판 절차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작용할지 충분히 이해해 합의서를 작성했다고 보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B씨 부부가 제시한 3500만원이라는 합의금에 대해서는 “A씨 피해 회복에 불충분해 그 진정성과 유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B씨 부부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그동안 A씨에게 주지 않았던 노동의 대가로 채무금액 3500만원을 공탁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10년 간 착복해 임의사용한 피해자의 장애인연금 등 8000여만원에 크게 미치지 못한 금액일 뿐더러 10년이라는 장기간 무상으로 노동을 제공했다는 사정을 볼 때 그간 제공한 노동력에 최소한의 대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B씨 부부의 이같은 행동들이 범행을 참회하고 피해자 피해 회복과 용서를 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맹 판사는 “피고인들의 범죄로 A씨는 10년이 넘는 기간 사회로부터 사실상 단절된 채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과 가치가 중대하게 훼손되고 인격이 유린당했고, 국가로부터 응당 받아야 할 경제적 도움을 받을 권리마저 장기간 박탈당했다”며 “죄책에 상응하는 무거운 형을 선고함이 타당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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