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절박함에 성(性)을 파는 우리는 노동자다"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다른 대안을 허용하지 않는 이 세계에서, 성노동은 섹스일 수도 있고, 동시에 노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동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반란의 매춘부> 92쪽)
"사람들은 우리 단체가 볼리비아에 매춘을 확대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반대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세계는 여성들을 이 일로 끌어들이는 경제적 절박함에서 자유로운 세계다."(위의 책, 118~119쪽)
독일·오스트리아·네덜란드·영국 등 성매매가 합법인 나라에서도, 매춘(賣春)을 온전히 노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이는 많지 않다. "상업적 섹스가 '좋은 노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은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성취감을 느끼고, 착취적이지 않으며, 즐길 수 있는 무언가로 규정"되며 "이러한 규범에 맞지 않는 사례는 노동이 아닌 증거로 취급된다".(위의 책, 98쪽)
영국에서 성노동자로 일하며 성노동자 권리 운동을 하고 있는 몰리 스미스와 주노 맥은 책 <반란의 매춘부>(오월의봄 펴냄)를 통해 이 같은 견해에 반기를 든다. 부제 '성노동자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들은 성매매를 노동의 관점에서 살피며 성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한다.
저자들은 특히 매춘을 둘러싼 이분법에 반대한다. 매춘이 폭력인지 노동인지, 강제적으로 이뤄졌는지 자발적으로 이뤄졌는지와 같은 논쟁은 추상화된 언어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현직 성노동자들의 생생한 발언이 비매춘부들의 추상화된 언어에 묻히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란의 매춘부>를 번역한 이명훈 전 사회교사 역시 "노동과 섹스가 좋은지 나쁜지, 이에 근거해 매춘이 좋은지 나쁜지에 골몰하는 동안 노동과 섹스, 매춘과 매춘부에 대한 추상적 이해는 그 실제적 이해를 압도해왔다"고 첨언했다.(위의 책, 300쪽)
따라서 저자들은 지금 매춘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이들은 '행복한 창녀'도 '탈성매매 여성'도 아닌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매춘을 해야 하는 이들이라며, 매춘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획득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전제가 되는 기본적인 사실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성을 판다'는 것이다.
"어떤 직업이 나쁘다는 말은 그것이 '진짜 직업'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성노동은 노동'이라는 성노동자들의 주장은 권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노동이 좋은 것, 재미있는 것이라거나 심지어 해롭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노동이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노동을 노동권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노력이 노동 그 자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함의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려는 것도, 더 크고 수익성이 있는 성산업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볼리비아의 전국매춘여성해방조직ONAEM의 활동가 율리 페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우리 단체가 볼리비아에 매춘을 확대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반대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세계는 여성들을 이 일로 끌어들이는 경제적 절박함에서 자유로운 세계다."(위의 책, 118~119쪽)
'노르딕 모델', 성매매 근절의 대안일까?
저자들은 성매매 근절을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노르딕 모델'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성매매 여성 혹은 성노동자를 뜻하는) 공급의 완전 비범죄화, 그리고 수요의 범죄화"라는 노르딕 모델의 의도는 전반적으로 선하지만, "실제로 노르딕 모델을 시행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성노동자에 대한 처벌은 멈추지 않"고 있다고 고발한다.(위의 책, 283쪽)
무엇보다 "노르딕 모델하에서 경찰은 상업적인 섹스를 가로막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며, 성노동자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잔인해지는'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며 "스웨덴에서는 성노동자에게 부동산을 임차하는 집주인을 매춘 '촉진' 혐의로 처벌할 수 있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성노동자가 거처를 잃고 더욱 불안정해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위의 책, 290쪽)
퇴거는 곧 추방으로 이어진다. "캐나다의 성노동자 단체인 버터플라이Butterfly에 의하면, 이민 당국이 이주 여성을 무기한 억류하는 일은 빈번"하며 위법한 노동을 했다는 이유로 추방한다. 북유럽 국가들 또한 "성노동자의 피해 신고를 이용해 기계적으로 이들을 추방해왔다".(위의 책, 291쪽)
저자들은 "아파트를 공유하는 성노동자를 처벌하고, 벌금과 퇴거 조치를 내리고, 아주 공격적인 방식으로 추방하는 행태는 노르딕 모델이 성판매자를 '완전 비범죄화'한다는 주장과 완전히 모순된다"고 지적한다.(위의 책, 294쪽) 따라서 "노르딕 모델이 성매매를 '실존적으로 제약'한다는 옹호자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역설한다.(위의 책, 300쪽)
또 "성노동자 권리 운동에서는 성노동자가 정말 원하고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비범죄화라고 간단히 말하는 것을 경계한다"(위의 책, 340쪽)며 "이상적인 성노동 제도에 가장 근접한 사례"로 뉴질랜드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의 사례를 든다.
"뉴질랜드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는 거리 성노동과 성매매 업소 운영에 대한 처벌 조항을 없애고, 성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일하거나 업소에서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고용주는 노동법에 따라 성노동자에게 일정한 책무를 지닌다. 이러한 제도적 틀은 여성 단체 및 인권 단체, 그리고 국제앰네스티, 국제인권감시기구Human Rights Watch, 유엔에이즈계획UNAIDS,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국제기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위의 책, 341쪽)
한국 성매매 여성들 "우리는 노동자다. 단지 성적 서비스업에 종사할 뿐"
<반란의 매춘부>는 개인의 성매매에 한정된 경우이지만, 성매매가 합법적인 나라(영국)에서 성노동을 하고 있는 저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낸 경우다. 한국의 상황과는 거리가 있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이 담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성매매 여성들이 자신의 노동자성에 침묵으로만 일관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 군산 성매매 집결지 화재 사건 및 성매매특별법 시행을 계기로 성매매 여성들은 목소리를 내고 조직을 결성했다.
2000년 9월 19일 군산시 대명동의 속칭 '쉬파리골목' 화재로, 여성 5명이 질식사했다. 피해 여성들은 건물 출입구와 창문 등에 설치된 잠금장치 및 쇠창살 때문에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왔다. 여성들은 일을 하면 할수록 빚이 쌓이는 악순환 속에서 개인의 외출까지 제한받는 인권 유린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가장 큰 책임은 매매춘을 방치·방조하고 있는 국가"라며 국가를 상대로 공익소송에 나서는 한편, 성매매 여성의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뒤인 2002년 1월 29일 군산시 개복동의 한 유흥주점에서 또다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24분 만에 진화됐지만,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여성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쉬파리골목' 화재와 마찬가지로, 유흥주점의 출입문은 모두 봉쇄되어 있었다.
이를 계기로, 반성매매 운동 진영은 대대적인 법 제정 운동에 나섰다. 2004년 3월 2일 '성매매알선 등 행위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으며, 일명 '성매매특별법'이 같은 해 9월 23일 시행됐다. 전자는 성을 사고 판 자와 알선업자를 처벌하는 내용이고, 후자는 성매매 여성의 보호와 자립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자, 사법당국은 대규모의 경찰인력을 투입해 전국 성매매 집결지 일제 단속에 나섰다. '불 꺼진 홍등가'라는 1면 기사가 등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법 시행 한 달여 만에 성매매 여성들과 업주 3000여 명은 먹고살 길이 막막해졌다며 '성매매특별법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성매매 여성 스스로가 '돈을 벌기 위해 성을 판다'며 노동자의 권리를 외친 것이다. (당시 여성들의 시위 참여는 업주들의 강압에 따른 것이라는 비판도 존재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법을 제정했지만, 이미 구조화된 성산업의 이면을 간과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후 성매매 여성들은 성매매 집결지 업주 모임(한터전국연합회) 산하에서 벗어나 2005년 6월 '전국성노동자연대'(전성노련)라는 독자적인 조직을 출범시켰다. 전성노련은 같은 해 '7.3 세계여성행진'에 참가하면서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노동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노동력을 판매하여 얻은 임금을 가지고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현행법과 다소 충돌하기는 해도 노동자가 분명합니다. 단지 성적서비스업에 종사할 따름이지요. 우리가 성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노동자 신분일 때 비로소 자본가와 대등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노예라고 주장하는 분들을 위해서도 노동자가 꼭 되어야 합니다. … 우리 성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경제적 빈곤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성노동자 여성들에게 덧씌우는 오명과 낙인입니다. 성노동자들을 그곳에 가서 일해야만이 생존할 수 있는 사회구조에 좀 더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그해 8월 평택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은 '민주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를 결성하고 평택 업주들의 조직인 '민주성산업연대'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하루 10시간 근로, 월 4회 휴일, 생리휴가와 연차휴가 등 근로 조건이 명시된 협약이었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성노동자 단체 활동은 2009년 평택 집결지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와해했다. 이후 SNS를 중심으로 한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이 소규모 활동을 이어갔으나, 2017년 '미투 운동(#Metoo)' 이후 오히려 자취를 감췄다.
어디까지나 사견이지만, 미투가 정치적·사회적으로 젠더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성을 매개로 한 상업적 거래 방식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대두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관련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고자 한다.
"매춘의 정치는 여성 간 불화가 아니라 협력의 정치여야 한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성노동자들도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 바로 모든 사람이 각자 공평한 몫의 자원을 가질 수 있고, 생존자들이 치유와 정의에 접근할 수 있는 미래다. 우리는 안전하고, 수입을 보장받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리길 요구하는 매춘부들의 배짱 있는 태도에 페미니스트들의 반란과 저항이 더욱 고양될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 "매춘부들이 승리하면, 모든 여성이 승리한다.""(위의 책, 387쪽)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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