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위해서 이까짓 범죄쯤이야.." 중년 아저씨가 세상을 망친다 [씨네프레소]

박창영 2022. 1. 2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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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19]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좋은 부모가 꼭 좋은 사람인 건 아니다. 집에서 다정하고 자상한 인간도 밖에선 악인일 수 있다. 가정에선 선량한 아버지인데 사회에선 악독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가 이중인격이어서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어쩌면 그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자원을 외부에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사회에 피해를 입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악질 상사, 민폐 이웃, 거래처의 갑질 직원은 좋은 부모가 숨겨둔 어두운 이면 같은 게 아닐 수 있다. 그의 입장에선 그 모든 것이 '완벽한 부모 역할'이란 말로 설명 가능한 것이다.

`우아한 세계` 강인구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조폭이다.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데, 자녀의 건강, 인간관계, 학업까지 챙겨주려다 보면 한 번씩 부조리에 가담하게 되기도 한다. 한국에선 조폭 영화들이 이런 문제를 그려왔는데, 이를테면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강인구가 이에 해당한다. 감독은 그를 통해 부모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조폭처럼 살아야 하는 가장들의 얼굴을 그렸다. 이번에 소개할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은 '딸바보' 아빠가 사실 세상을 망치는 빌런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빌런으로 나오는 벌쳐.<사진 제공=소니픽쳐스>
스파이더맨, 불법 무기상과 대결하다

영화는 스파이더맨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발견해 나가는 고등학생 피터 파커(톰 홀랜드) 이야기다.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새로운 스파이더맨 슈트를 선물 받고, 처음엔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사고를 치던 그는, 차츰 사회에 필요한 영웅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추락하는 엘리베이터를 잡아 학생들을 구하고, 선박이 반으로 쪼개지는 상황에서 거미줄을 활용해 위기 상황을 극복한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피터 파커는 히어로로서 자신의 역할을 발견해나간다.<사진 제공=소니픽쳐스>
스파이더맨의 대척점에는 벌처(마이클 키턴)가 있다. 그는 히어로 전투 현장을 수습하는 전문 조직 '대미지컨트롤'에서 특별 관리하는 위험 물질을 훔쳐 무기를 만들어 판매한다. 그가 만든 무기는 사용자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어 통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벌처는 무기 판매를 그만둘 의지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큰 날개를 단 의상을 만들어 입고 다니며 곳곳에서 스파이더맨과 충돌하게 된다.
벌처가 판매하는 무기는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다.<사진 제공=소니픽쳐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으면 이 단락은 건너뛰세요) 딸 바보 울아빠, 세상 망치는 빌런이었다

사연 없는 악당은 없다고 했던가. 영화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던 아드리안 툼즈가 빌런인 벌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꽤나 균형 있게 다룬다. 용역 업체를 운영하던 그는 '외계 물질'을 수습하는 현장에 투입됐지만, 수습·재건 전문 조직 대미지컨트롤에 의해 쫓겨난다. 이 일을 위해 트럭을 샀고 인부들을 잔뜩 뽑았다는 그의 설명은 "미안하지만 방법이 없다"는 한마디에 묵살당한다. 그가 불법적인 방법으로라도 위험 물질을 훔쳐야겠다고 독기를 품게 되는 계기다. 가족들에겐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고 알린 채 밖에선 필요에 따라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상식밖의 일로 생계를 위협받지 않았다면 그도 악당이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사연이 있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악행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사진 제공=소니픽쳐스>
그는 '딸바보'다. 딸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 평상시엔 본인이 스파이더맨임을 감추고 사는 파커가 자신의 딸을 '홈커밍 파티'에 데려가려고 찾아오자 직접 문을 열어주며 반긴다. 딸바보 아버지라면 딸의 남자친구에게 으레 던질 법한 질문들을 이어가던 도중 그는 파커가 자신과 싸워온 스파이더맨이란 사실을 알아챈다. 그는 파커에게 자신의 실체에 대한 비밀을 지켜줄 것, 자기 일을 방해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한마디를 남긴다. "피터, 가족보다 소중한 건 없어."
벌처의 딸은 피터 파커와 서로 호감을 갖고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사진 제공=소니픽쳐스>
입시 비리도 "딸을 위해서라면 괜찮아"

이 영화는 딸바보, 아들바보가 때론 공동체에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게 딸바보의 본질이라고 할 때, 그 '무엇이든'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하느냐에 따라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도 있는 것이다. '스파이더맨: 홈 커밍'에서처럼 아내와 딸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저지를 수 있는 딸바보는 두말할 것 없는 악이다. 가족을 지킨다는 명분이 모든 법과 도덕, 가치보다 우선하게 됐을 때, 딸바보는 더 이상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딸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빠는 때론 딸에게도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사진 제공=소니픽쳐스>
한국인들이 보기에도 공감할 부분이 적지 않은 작품이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슈퍼맨이 돌아왔다'류의 예능을 통해 귀여운 딸바보 아빠들을 봐왔지만, 반대로 뉴스를 통해 사회의 규칙을 깨는 딸바보 부모들의 소식도 접해왔다. 그들은 자녀 입시를 위해 인턴 확인서와 표창장을 위조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자식 사랑을 실천했다. 사람들은 어떤 딸바보 부모에겐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는데, 바로 그가 평소엔 공정을 외치다가 자식을 위해선 위조까지 일삼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 그는 좀 억울할 것 같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포스터.<사진 제공=소니픽처스>
그에겐 정의를 외쳤던 순간이나 서류를 조작한 시간이 모두 '딸 사랑'이라는 명분 아래 일관성을 갖고 있을 테니 말이다.

장르: 액션·어드벤처·판타지
감독: 존 와츠
출연: 톰 홀랜드, 마이클 키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젠데이아 콜먼
평점: 왓챠피디아(4.1/5.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92%), 팝콘지수(87%)
※2022년 1월 21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넷플릭스,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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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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