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린 게 벤츠·BMW·포르쉐"라더니..'1억' 넘어야 수입차 대접받겠네 [세상만車]
포르쉐, '1억원대' 리더로 자리잡아
밴드왜건·파노플리·스놉효과 한몫
'황새 따라가는 뱁새' 카푸어 양산
수입자동차 시장에서 '보복 소비'에 '억'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수입차 주류가 3000만원대에서 5000만원대로 넘어가더니 1억원대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어서다.
1억원이 넘는 프리미엄 차종은 물론 2억원 이상 줘야 하는 고성능·럭셔리 차종도 판매대수가 증가하고 있다.
매경닷컴이 21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집계한 2015~2021년 수입차 가격별 등록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수입차 판매 1위인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를 필두로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렉서스 ES가 포진했다.
1억~1억5000만원 수입차 시장에서는 포르쉐가 주도권을 잡으며 6년 만에 3배 이상 판매가 증가했다. 당당히 수입차 주류에 합류했다.
1억5000만원 이상 수입차 시장도 벤틀리와 람보르기니를 '투톱'으로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2015년에는 1만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지난해에는 두 배 이상 늘어나 2만대에 육박했다.
반면 국산차와 경쟁할 수 있는 가격으로 수입차 대중화를 이끌었던 3000만~5000만원 수입차는 점유율이 하락하면서 주류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가격대별 점유율 순위에서도 꼴찌다.
코치, 발렌시아가, 프라다와 구찌, 디올, 샤넬과 루이비통, 에르메스 순으로 신분이 높아진다는 '명품 계급도'가 나온 것처럼 암묵적인 '수입차 계급도'도 등장한 셈이다.
또 특정 상품 구매자가 많아지면 차별화를 위해 더 비싸고 희소가치가 높은 제품을 구매하는 스놉효과 때문에 2억원대 고가 수입차도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 목돈 없이 비싼 수입차를 탈 수 있지만 비싼 이자에 카푸어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듣는 리스 제도, 절세를 넘어 탈세를 유도하는 허술한 법인차량 제도 등도 억대 수입차 판매 증가를 이끌었다.
2000만원대 중형 세단 알티마를 내놓은 닛산이 2020년 말 국내에서 철수한 영향도 작용했다.
그 대신 폭스바겐 제타가 2000만원대 수입차 리더로 자리 잡았다. 제타 1.4 TSI(2949만원)는 지난해 4794대 판매됐다. 지난해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판매 7위를 기록했다.
3000만원대 수입차는 2015년 점유율이 25.31%에 달했다. 일본·미국·독일 브랜드가 국산차와 경쟁할 수 있는 중저가 수입차를 경쟁적으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혼다 CR-V, 도요타 캠리, 닛산 알티마, 폭스바겐 골프와 티구안, 포드 몬데오, 지프 레니게이드, 미니(MINI) 쿠퍼가 3000만원대 수입차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독일 대중차 브랜드인 폭스바겐과 영국 프리미엄 브랜드인 미니(MINI)가 그나마 선전하고 있다.
폭스바겐의 경우 티록 2.0 TDI(3244만원)가 지난해 2149대 팔렸다. 같은 기간 미니 쿠퍼 5도어(3990만원)는 2340대, 미니 쿠퍼(3930만원)는 1845대가 판매됐다.
점유율은 2015년 15.24%에서 매년 감소세를 기록하다가 2020년 16.43%로 증가했다. 당시 4000만원대 폭스바겐 티구안이 1만대 넘게 판매된 게 점유율 증가에 영향을 줬다. 지난해에는 14.2%로 다시 감소했다.
5000만원 미만 수입차 시장은 2010년대 말까지 일본 차가 주도했다. 일본 차는 2019년 터진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도발로 촉발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 영향으로 타격을 받았다. 그 이후 폭스바겐과 미니 양강 체제가 구축됐다.
지난해 판매대수는 폭스바겐 티구안 2.0 TDI(4005만원)가 1660대, 티구안 올스페이스 2.0 TDI(4901만원)가 2280대, 파사트 GT 2.0 TDI(4433만원)가 1012대다.
미니 쿠퍼 클럽맨(4200만원)은 1816대, 미니 쿠퍼 컨트리맨(4470만원)은 1788대가 등록됐다.
이 시장에서는 5000만원대 수입차보다 6000만원대 수입차가 인기다. 지난해 수입차 판매 1~3위가 모두 6000만원대다. 벤츠 E250(6700만원)은 1만1878대로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렉서스 ES300h(6190만원)는 6746대로 2위, BMW 520(6610만원)은 6548대로 3위를 기록했다.
BMW 320(5390만원)은 4977대 팔리면서 5위를 달성했다. 수입차 판매 10위 안에 들어간 유일한 5000만원대 차종이다.
7000만~1억원 수입차는 2015년 15.78%에서 지난해 20.66%로 증가했다. 이 가격대에서도 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가 주도권을 잡았다.
벤츠 E350 4매틱(8480만원)은 판매대수 6372대로 4위, BMW 530e(8090만원)는 4466대로 8위를 기록했다.
포르쉐 주력 모델이 이 가격대에 해당한다. 포르쉐는 2000년에 전년보다 85% 증가한 7779대가 판매됐다.
반도체 대란으로 출고적체가 심각해진 지난해에도 전년보다 8.4% 늘어난 8431대를 팔았다. 수입차 평균 증가율 0.5%를 크게 상회했다.
포르쉐 판매 1위 차종은 카이엔 쿠페(1억1630만원)다. 지난해 1494대 팔렸다. 카이엔(1억660만원)은 1213대, 전기차인 타이칸 4S(1억4560만원)는 1014대로 그 뒤를 이었다.
벤츠와 BMW도 이 가격대에서 선전했다. 지난해 벤츠 CLS 450 4매틱(1억1410만원)은 3154대, 벤츠 GLE 400d 4매틱 쿠페(1억2660만원)는 2214대, GLE 450 4매틱(1억2360만원)은 2137대 판매됐다.
BMW의 경우 X7 4.0(1억3180만원)이 2872대, X6 4.0(1억1940만원)은 2291대, X5 4.0(1억1540만원)은 2063대 팔렸다.
이 시장은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아우디 A8 등 플래그십 세단이 주도했다. 현재도 '도로의 제왕'이라는 벤츠 S클래스가 가장 인기다.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고성능·럭셔리 브랜드도 2억원대 차량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판매 1위는 수입차 플래그십 세단 대표주자인 벤츠 S580 4매틱(2억2932만원)이다. 지난해 3883대가 팔렸다. 1억원 이상 차종 중 유일하게 수입차 트림별 판매 10위에 포함됐다.
수입차 모델별 순위에서도 벤츠 S클래스(1만1131대)는 벤츠 E클래스(2만6109대), BMW 5시리즈(1만7447대), 아우디 A6(1만2274대)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럭셔리 명차 브랜드인 벤틀리는 지난해 506대를 판매했다. 전년(296대)보다 70.9% 증가했다. 벤틀리가 국내 판매하는 3개 차종은 모두 2억원대다. 벤틀리 차종 중 판매 1위는 플라잉스퍼 V8(2억5503만원)이다. 지난해 270대 팔렸다.
슈퍼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는 지난해에 전년보다 16.5% 증가한 353대를 판매했다. 10대 중 8대 이상이 우루스(2억5768만원) 몫으로 287대 팔렸다.
4억원 이상 줘야 하는 롤스로이스도 지난해 225대 판매됐다. 전년 동기보다 31.6% 증가했다. 4억원대인 고스트(4억7100만원)와 컬리넌(4억7460만원)이 성장세를 주도했다. 지난해 판매대수는 각각 66대와 58대다.
베블런 효과는 사회적 지위나 부를 과시하기 위해 가격이 더 비싼 물건을 흔쾌히 구입하는 현상을 말한다.
밴드왜건 효과는 일부 부유층이나 유명인들의 과시적 소비를 주위 사람들이 따라 하면서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편승 효과'를 의미한다.
파노플리 효과는 특정 계층이 소비하는 상품을 구입해 해당 계층에 자신도 속한다고 여기는 현상을 뜻한다. 상품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다.
스놉 효과는 특정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상품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고 값이 오르면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뜻한다.
서울 강남에서 쏘나타처럼 흔히 보인다는 뜻에서 붙은 '강남 쏘나타' 차종이 렉서스 ES에서 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로 넘어간 이유도 이들 효과 때문이다.
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도 이제는 흔해져 더 비싸고 폼 나는 차종을 찾는다. 다음 '강남 쏘나타'로 포르쉐 차종이 유력해졌다.
'업무용'이라며 법인 명의로 고성능 스포츠카나 슈퍼카를 구입한 뒤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 '회사 찬스'가 확산된 것도 억대 수입차 판매 증가에 영향을 줬다.
차량 판매보다는 이자가 비싼 금융상품을 통해 고수익을 거두고 있는 수입차 브랜드들이 카푸어를 양산한다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극 판매하는 리스 상품도 '황새 쫓아가는 뱁새'를 유혹하고 있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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