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리뷰]"H2O가 산소인 건 문과 출신인 나도 안다"..그래서요?

이기범 기자 2022. 1. 2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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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작 '고요의 바다'..공개 후 과학적 고증 문제 제기 이어져
문과 출신 기자 눈엔 과학적 오류보다 지루한 전개가 단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고요의 바다' (넷플릭스 제공)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드라마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H2O가 산소인 건 문과 출신인 나도 안다."

H2O는 물이다. 산소는 O2다. 그러나 오래된 인터넷 '밈'(Meme)의 세계에서 H2O는 산소다. 문과 출신의 부족한 과학 지식을 꼬집을 때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격언이다. 화학식이 외우기 싫어 문과를 택한 기자는 마냥 웃을 수 없는 문장이기도 하다.

물은 인간에게 산소처럼 없어선 안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고요의 바다'는 물이 고갈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SF 장르 드라마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SF 장르를 장편 드라마로 제작했다는 점, 배두나·공유라는 걸출한 배우를 투 톱으로 내세운 점, 넷플릭스의 2021년 마지막 한국 오리지널 라인업이라는 점 등에서 연말연시 기대작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공개 직후 '고요의 바다'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특히 과학적 고증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단 분리 없는 날개 단 우주 왕복선의 비행은 '누리호' 발사를 생중계로 지켜본 한국인들의 눈에 어색했고, 사고가 발생했던 우주 기지에서 방호 조치 없이 활보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KF94 마스크로 무장한 코로나19 시대에 경각심을 자아냈다. 제작비 절감을 위한 마법의 중력 장치, 강과 바다가 말라버린 것치곤 멀쩡한 지구 환경도 디테일에서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과 출신인 기자에게도 'H2O는 산소'라고 외치는 듯한 몇몇 장면은 몰입감을 방해했다. 그러나 엄격한 과학적 잣대를 내려놓으면 SF 불모지에서 '고요의 바다'가 일궈낸 성취도 또렷하게 보인다.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 속 우주선 '누리11호'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화면 갈무리)

가장 큰 장점은 과학 고증의 오류에도 흥미로운 설정이 서사를 끝까지 지탱한다는 점이다. 물이 고갈된 사회에서 인류를 구원해 줄 자원인 '월수'는 설정 그 자체로 과학적 오류 덩어리다. 자가 증식하는 물은 질량 보존의 법칙을 무시한다. 하지만 월수가 갖는 상징성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희망인 줄 알았던 물이 다시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아이러니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류사를 닮아 있다.

우주적 배경에서 물이 주는 공포를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드라마 속 무대를 달 연구 기지로 한정한 점은 영리한 선택일 수 있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 간의 심리극에 집중하고, 부족한 SF적 연출을 스릴러의 긴장감으로 극복할 수도 있는 장치였다. 문제는 '고요의 바다'가 8부작 드라마라는 점이다.

사실 시청자의 공통된 불만은 빈약한 고증보다 드라마가 지나치게 늘어지고 지루하다는 데 있다. 한정된 공간을 밀도 있게 보여 주지 못하고 비슷한 시퀀스가 반복되는 탓이다. 영화였으면 어땠을까. 드라마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인물들의 감정선이 과하지 않은 점은 장점이지만, 누구 하나 도드라지지 않는 개성 없는 캐릭터는 극에 답답함을 더한다.

'고요의 바다' 스틸 컷

SF는 과학 그 자체에 방점이 찍혀 있기보단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우의)로 기능한다. 과학에 기반한 상상을 토대로 현실 사회의 문제를 확장적으로 보여주곤 한다. 이 같은 측면에서 '고요의 바다'는 일정한 성취를 이루고 있다. 자원이 고갈된 사회에서 분화된 계급과 사회적 갈등도 현실을 내비쳐준다. 재난이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다는 점은 코로나19 직후의 한국 사회만 놓고 봐도 알 수 있다.

H2O는 물이다. 산소는 O2다. 문과 출신도 안다. 그러나 문법의 변용을 허락하는 '시적 허용'은 자유로운 사고를 열어주곤 한다. SF가 과학 그 자체는 아니다. 상징성에 기반한 상상력이 서사의 빈틈을 메우는 창작물이다. 복제 인간 '루나'가 맨몸으로 달 표면을 걷는 장면까지 비판하는 '고요의 바다'를 향한 일부 혹평은 다소 가혹한 면이 있다.

주연 배우 공유는 언론사들과의 인터뷰에서 '고요의 바다'에 대해 "공상과학물 장르이지만 인문학적 작품이라 더 좋았다"고 평했다. 공유도 문과 출신인가 보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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