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통신자료 논쟁 '근본적 권리구제'에 관심 있나"

박서연 기자 2022. 1. 22. 09: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통신자료 '왜' 제공했는지라도 공개해야… 개인정보위 '산업' 치중하고 국정원 감시 못 해"

[미디어오늘 박서연 기자]

“처음에는 대리점까지 가서 받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문제 제기했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공간에 이용자가 통신3사(SKT·KT·LG)에 요청하면 받을 수 있는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가 연일 올라오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가 논란이 되면서 시민들이 자료를 제공한 통신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온라인으로 확인서를 발급받은 것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시민사회단체의 노력이 없었다면 확인서를 받기 위해 이동통신 대리점까지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로 인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래전부터 통신자료 제공 등 정보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정보인권단체 진보넷의 오병일 대표는 정치권을 가리켜 “본인들 통신자료가 조회됐을 때만 정치적인 목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상황”이라며 “'근본적인 권리구제'에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오병일 대표는 현행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에는 '왜' 수집했는지 정보가 없는 점이 문제라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병일 진보넷 대표. 사진=진보넷 제공.

문재인 정부 들어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일반 정부 부처와 동격인 행정기구로 승격됐다. 그러나 오병일 대표는 “개인정보보호라는 본연의 역할이 아닌 산업적 '활용'에 방점을 찍는 게 문제”라고 평가했다. 개인정보위는 2022년 업무계획으로 '가명정보·마이데이터를 양대 축으로 하는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강조했다. 개인정보위가 국정원의 4대강 반대 인사 사찰 사실을 제공받고도 추가 조사를 벌이지 않은 데 대해 오병일 대표는 “국가정보원 등 권력에 굴복하는 게 아닌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공수처의 통신자료조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할까.

“공수처, 경찰, 검찰 등이 저를 수사한다면 제 핸드폰 통화 내역에 상대 번호가 뜨는데 그 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통신사를 통해 번호의 주인을 조회하는 건데, 이렇게 되면 수사 대상이 아니라도 정보가 입수될 수 있다. 물론 수사상 필요해서 조회해도 결과적으로 수사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다수 조회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근본적인 문제는 (현재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언제든 쉽게 광범위하게 자료 수집을 허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기자들이 조회를 당하면서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사회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지난달 9일자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통신자료조회 자료에는 통화 내역이 담겨 있지는 않다.

“통화내용과 같은 콘텐츠 데이터는 아니지만 통신자료를 통해 누군가와 몇 번 통화했는지 횟수를 알게 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 기자가 특정 기관에 대한 내부 고발 기사를 썼다면 통화횟수 등으로 누가 제보자인지 추정할 수 있다. 산부인과에 자주 전화하면 그 사람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메타 데이터를 종합하면 개인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메타 데이터인 통신자료 역시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엄격한 절차에 따라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언론인, 시민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통신자료조회 정보 제공 내역서는 시민단체들이 요구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처음 요청했을 때는 이동통신 대리점에 직접 가서 확인하라고 했다. 이후 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어가 온라인으로 제공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시민사회는 내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이 '왜' 수집했는지를 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016년 관련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법원은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정보 주체자는 내 정보가 조회됐는지 열람할 권리는 있지만, 어떤 이유로 내 정보가 조회됐는지는 열람할 권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관련 정보통신망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황인데 아직 계류 중이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고 보나.

“통신자료조회는 전기통신사업법에서 규정하고 있고 법원의 허가 없이 수사에 필요하기만 하면 통신사에 요청할 수 있다. 법안을 개정해 통신자료조회시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또, 정보 주체(당사자)가 자신의 통신자료가 조회된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고지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 올라온 개정안은 주로 당사자에게 통지하라는 내용에 그치는데, 우리는 법원 허가를 받는 내용까지 포함돼야 한다고 본다.”

-국회에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여러 번 논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정치적 맥락이 있다. 지금은 공수처 문제를 국민의힘이 제기한다. 이전 정부 땐 민주당에서 사찰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국민의힘이 그러고 있다. 기자와 정치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통신자료조회 대상자로 연 300만~500만건 가량의 조회가 이뤄지고 있다. 진정 사찰이라고 생각한다면 통신자료 제도를 진작 개선했어야 한다. 하지만 본인들 통신자료 조회됐을 때만 정치적인 목적으로 문제제기하는 상황이다. '근본적인 권리 구제'에 관심이 없는 거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내로남불'이라고 이야기만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개선하려고 해야 한다.”

▲지난해 10월29일 개인정보 분쟁조정위원회 회의 모습.

-문재인 정부가 개인정보위를 행정기구로 격상시키면서 여러 활동을 해왔다. 어떻게 평가하나.

“문제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개인정보 주체의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에 초점을 둬야 하는 기구인데 오히려 산업적 '활용'을 강조한 사업에 비중을 두고 있다. 정부가 개인정보를 가명 처리하면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도 애초 수집 목적 외로 활용할 수 있게 했는데 개인정보위가 이를 활성화하는 사업을 한다. 마이데이터 사업도 개인정보위가 강조한다. 지금 개인정보 침해 신고를 하면 몇 개월이 지나도 결론이 안 난다. 사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한다. 기본적인 업무도 감당 못 하면서 산업적인 프로젝트에 열중하고 있는 거다.”

- 지난해 시민단체들이 4대강 사업 반대 인사들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 사실을 폭로하고 개인정보위에 조사를 요청했으나 개인정보위는 추가 조사 없이 '권고' 결정에 그쳤다.

“우리가 제출한 문서뿐 아니라 국정원이 과거에 어떤 불법사찰을 했는지 조사하길 원했다. 하지만 개인정보위는 우리가 제출한 자료에 대한 판단만 하고 그쳤다. 개인정보위가 독립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정원 권력에 굴복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국가정보원. ⓒ 연합뉴스

-개인정보위의 기능과 역할은 어떻게 개선돼야 하나.

“우선 개인정보 주체의 권리를 구제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 기관에 대해서도 독립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정보기관이든 청와대든 개인정보보호 원칙에 어긋나 잘못했으면 문제를 제기하고,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현재 신용정보에 대한 감독 권한은 금융위원회가 갖고 있는데 개인정보위로 이관해 통합적으로 감독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 변화 따른 대응도 필요하다.

“개인정보를 둘러싼 기술 환경이 계속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 등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하는데, 기술 발전에 따라 선도적으로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규범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개인정보 영향 평가' 제도가 있다. 어떤 새로운 기술이나 시스템을 도입할 때 개인정보를 침해할 우려가 없는지 사전에 평가하는 제도인데 한국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만 할 수 있다. 이를 민간으로 확대해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정보인권 측면의 과제는 어떤 게 있나.

“정보 주체의 권리 보호, 인공지능(AI)에 대한 규율, 통신비밀의 보호, 망중립성 보장, 빅테크/플랫폼에 대한 규율, 주민등록제도 개선, 노동자 감시에 대한 규율, 인터넷 표현의 자유, 사이버보안 거버넌스 이슈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정보주체의 권리 보호'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정부는 가명정보의 경우 정보 주체 동의 없이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는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제도를 바꿨다. 하지만 여기에 기업이 하는 연구도 포함해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고 기업들 간의 정보 결합도 허용했다. 통신사가 가진 정보를 포털에 제공할 수 있고, 이들 정보를 합치고 사고 팔 수 있게 된 상황이다.”

[관련 기사 : 공수처 기자 통신조회로 불거진 '언론사찰' 논란]
[관련 기사 : MB정부 국정원 4대강 반대 '사찰' 자료 확인하면 끝?]

[미디어오늘 바로가기][미디어오늘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