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권 '순풍', 文정권 '혼밥'.. 후보들 알아야 할 韓中외교사 역설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16회>
중국인들의 농담 “한국 대통령,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
2019년 7월 말,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북부 옌랑(閻良)구에서 일어났던 작은 에피소드. 항공기계 전문가인 나의 오랜 중국인 친구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큰길가 야시장에서 가볍게 한 잔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옆 자리에서 왁자지껄 떠들던 한 무리 술꾼들이 술잔을 건네며 얘기를 걸어왔다. 알고 보니 모두 인근 비행기 공장 직원들로 내 친구와는 한 다리 건너 다 얽힌 사이였다. 즉시 테이블을 붙이고 열 명 넘는 사람들이 뱅 둘러 앉아 술잔을 부딪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펼쳐졌는데······.
잠시 후 내가 캐나다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모두들 큰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 중 차돌 같은 몸에 스포츠형 짧은 머리를 한 중키의 슝(熊)선생이 내게 던진 질문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짐짓 비장한 어조로 물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이 뭐죠?”
소방관, 어부, 트럭운전사, 스턴트맨 등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얘기했지만, 짠 듯이 그 술자리의 모두가 고개를 젓고 있었다. 결국 답을 모르겠다고 포기하자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한국 대통령!”이라고 외치며 폭소를 터뜨렸다. 그 당시 중국 인터넷에 널리 유포돼 있던 이야기라 했다.
하야, 망명, 감금, 피살, 무기징역, 친인척 비리 연루, 자살, 탄핵, 투옥으로 이어지는 한국헌정사 모든 대통령의 말로를 보면, 과연 그 어떤 직업도 더 위험할 순 없을 듯했다. 내가 흔쾌히 동의하자 슝선생은 진지한 표정으로 정색을 하고 내게 물었다.
“그렇게 위험한데 대체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죠?
글쎄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송(宋, 960-1279) 나라의 유명한 여성 시인 이청조(李淸照,1084-1155)의 시구를 읊조렸다.
“살아서는 마땅히 인걸이 되고(生當作人傑),
죽어서도 귀신들의 영웅이 되리라(死亦爲鬼雄)!”
투항하지 않고 자결을 택한 초(楚)나라 패왕(霸王) 항우(項羽, 기원전 232-202)의 비장한 최후를 기린 이 시구에서는 숱한 인간군상 속에 묻혀서 흔적 없이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영웅호걸”의 무모한 권력의지가 읽힌다. 권력이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날 밤 우리는 밤늦도록 대화를 나누면서 권력의 무대에 기어올라 사투(死鬪)를 벌이는 한·중 양국 모든 야심가들의 서글픈 운명을 기억하며 혀를 끌끌 찼다. 헤어질 무렵 서로 어깨를 걸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인간 세상에 이미 떨어졌거늘 (在人間已是顚)
무엇하러 힘들게 푸른 하늘로 오를까(何苦要上靑天)
함께 나눈 따뜻한 하룻밤만 못하리(不如温柔同眠)!”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항저우로 향할 때에야 슝선생이 읊조리던 그 시구와 노랫말의 숨은 뜻을 알 수 있었다. 어디서든 정치는 야심가들의 권력투쟁일 뿐이니 보통 사람들은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처세술을 익혀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그 밑바탕엔 한국식 민주주의도 중국식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권력을 독점한 소수 엘리트의 통치 수단일 뿐이라는 강한 비판이 깔려 있는 듯하다. 정치 허무주의나 현실 도피주의라 비판할 수 있겠지만, 섣부른 언행으로 권력자가 휘두르는 철퇴를 맞아온 민초로서는 가장 현명한 생존 비결일 수도 있다.
한중관계, 박근혜 정권 ‘순풍’...문재인 정권 ‘혼밥’ 이유는?
박근혜 정권 출범 초기부터 한·중 관계는 놀랍도록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2014년 11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불과 2년 동안 다섯 번째 정상회담을 이어갔다. 그 사이 북한과 중국 사이엔 단 한 번의 정상회담도 이뤄지지 못했다. 드넓은 한·중 외교의 바다에서 한국호가 순풍에 큰 돛을 달고 순항하는 모양새였다.
당시 두 지도자의 친밀한 관계에 구미의 분석가들을 감탄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극진한 대우와 배려가 매우 “공손하다(deferential)”고 말하는 분석가도 있었고, 심지어는 “그가 그녀에 반한 것 같다(he seems to have a crush on her)”는 뼈있는 농담도 미국 외교가에 나돌 정도였다.
그 시절 중국 인민 사이에서도 “인간 박근혜”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박근혜 자서전이 전국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중국 작가가 쓴 <<박근혜의 품격 역량>>이라는 책도 덩달아 팔리고 있었다. 베이징 중관춘의 대형서점 정문에는 커다란 박근혜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2015년 9월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승리 70주년”에 참가했으며, 중국이 최첨단 무기를 과시하는 열병식에도 참석했다. 당시에도 국제적으로 큰 논란거리였지만, 베이징을 끌어당겨 평양을 따돌리는 서울의 외교전술에 대해서는 대체로 후한 평가가 내려졌다.
놀랍게도 탄핵 정국을 거쳐 “촛불혁명”의 계승자를 자처한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13-17일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한·중 관계가 사뭇 다른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 공항에 도착할 때 중국의 최고지도부는 단체로 난징으로 떠난 후였다. 공항영접은 외교부 차관보에 맡겨졌다. 국빈예우의 전례(典禮)가 2년 전보다 두 단계가 격하된 상태였다. 한국의 대통령이 중국에서 여덟 끼니 중 여섯 끼니를 중국 측의 의도된 방치로 “혼밥’을 먹여야 하는 어색한 상황이 연출됐다. 급기야 12월 14일 중국 공안의 용역들이 사소한 시비를 꼬투리 삼아 한국 기자단에 직접 폭력을 가하는 한·중 외교사 초유의 놀라운 만행까지 자행되었다.
2016년까지도 시·박 관계는 예외적 친밀함을 과시했는데, 왜 갑자기 시·문 관계는 시작부터 격하게 덜컹거려야 했을까? 흔히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민감한 군사안보적 이유 때문에 중국이 문재인 정권에 압박했다고 풀이하지만, 피상적 분석이다. 한·미 양국은 이미 2016년 7월 8일 사드배치를 결정했으며, 2016년 9월 4-5일 박 전 대통령은 G-20회담을 위해 중국을 다시 방문했을 때는 홀대 논란 따위는 일지 않았다.
2017년 12월 문 대통령 방중 당시 일었던 “홀대” 논란을 온전히 사드 탓으로 돌릴 순 없다. 어느 나라나 군사 외교적 난제의 해결을 위해선 강온 양면의 기만책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박 정권에는 한없이 부드럽게 접근했던 시 정권이 문 정권엔 갑자기 사나운 발톱을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한·중 관계에 상존하는 더 본질적인 이유에서 찾아야만 한다.
덩샤오핑, 박정희 경제발전 모델에 큰 관심
중국 개혁개방의 창시자 덩샤오핑은 싱가포르의 리콴유(1923-2015)와 한국 박정희(1917-1979)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으며, 한국식 발전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실제로 국내외의 저명한 사회과학자들은 덩샤오핑 정권과 박정희 정권 사이의 유사점과 공통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일례로 하버드 대학 동북아 국제정치학의 대가 에즈라 보겔(Ezra Fogel, 1930-2020) 교수는 현대 터키 공화국의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1931), 싱가포르의 리콴유, 대한민국의 박정희, 중화인민공화국의 덩샤오핑을 20세기 비서구권에서 가장 성공적인 근대화 지도자로 꼽는다. 이 네 사람은 모두 “극도로 혼란스러운 나라를 물려받아 새로운 체제를 세움으로써 국가를 근대화시켰으며, 급속한 성장을 추진해서 이후에도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변화를 일으킨” 지도자들이었다.
덩샤오핑 정권과 박정희 정권을 비교해 보면, 최소한 여덟 가지의 공통점이 보인다. 1) 중앙집권적 개발독재, 2) 수출지향의 경제구조, 3) 개방적 외자유치, 4) 글로벌 통상질서에의 적극적 편입, 5) 애국적 국가 발전의 의지, 6) 민족주의적 국가통합, 7) 관민합작의 성장전략, 8) 권위주의적 민주화 운동의 탄압 등을 꼽을 수 있다.
개혁개방을 추진할 당시 덩샤오핑은 아시아의 “네 마리 작은 용” 중에서도 특히 박정희 모델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박정희 모델”은 덩샤오핑에게 서구식 민주주의 없이도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이 가능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한 확신 위에서 1979년 3월 덩샤오핑은 “4항의 기본원칙”을 천명했는데, 그 모토는 한 마디로 “중국공산당 일당독재 하의 지속적 경제성장”이었다. 이 원칙은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테제로 정립되었다. 현재 시진핑 정권는 덩샤오핑의 “신권위주의적(Neo-Authoritarian) 개발독재”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반공을 국시로 삼은 박정희였지만, 이념과 상관없이 덩샤오핑은 그를 실용주의적 근대화의 영웅이라 여겼다.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극진하게 우대한 이유는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애(令愛)라는 사실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박정희의 근대화 모델이 오늘날 중국공산당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조화롭게 공명하기 때문이다. “반공주의” 박정희 정권과 “공산주의” 덩샤오핑 정권이 중간쯤에서 “잘 살아보세!”의 실용주의 이념으로 수렴된 결과이다.
중국공산당 “촛불시위” 경계...문, 중국서는 촛불 얘기 못해
반면 중국공산당은 한국의 “민주화 세력”에 대해서는 경계의 눈초리를 감출 수가 없다. 1970-8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은 이후 권위주의 정권을 타도하는 민주화의 초석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형 발전 모델이 중국에 적용된다면, 중국의 경제성장이 중국의 민주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으로선 한국의 민주화세력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 밑바탕엔 1989년 톈안먼 대도살(大屠殺)의 어두운 기억뿐만 아니라 더 멀리로 국가주석 류샤오치(劉少奇, 1898-1969)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문화혁명의 원죄의식이 깔려 있다.
중국공산당은 대규모 시위의 자유를 용인하지 않는다. 한국의 촛불집회처럼 수도 중심을 수개월간 점령하는 대규모 민중봉기라면 더더욱 허용될 여지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2017년 12월 중국 측은 한국 외교부에 방중 시 “촛불시위”의 영상을 틀거나 “촛불혁명”을 언급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한국의 “촛불시위”가 중국으로 퍼지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독일,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언필칭 “촛불혁명”을 외쳤지만, 중국에서는 “촛불”의 “ㅊ”도 꺼낼 수가 없었다. 문 대통령은 오히려 중국을 높은 산맥의 나라라 칭송하면서 “작은 나라 한국”이 “중국몽(中國夢)에 동참하겠다”는 과공(過恭)의 비례(非禮)를 연출했다. 나아가 한국인 중에도 중국의 공산혁명에 적극 참가한 인물들이 있다며 중국인의 환심을 사려 노력했다. 중국 측은 그러나 미리 짜인 각본에 따라 냉대, 박대, 홀대의 삼박자 무례를 범했다.
2003년 7월 9일 중국 칭화(淸華) 대학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마오쩌둥을 존경한다”는 문제의 발언을 했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 인물들은 1980년대 NL계 반미·자주·친중의 “민족해방” 전사들이었다. 핏속에 “친중”의 DNA가 있었기에 그들은 중국에 가면 융숭하게 대접 받으리라 기대했겠지만, 정반대로 외교사에 기록될 심한 모욕을 당해야만 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의 시각에서 보면, 권위주의 군부독재를 종식한 한국 민주화의 정신적 뿌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도, 마오쩌둥 사상도 아니라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다음 한국 대권을 누가 잡든 깊이 명심해야 할 한·중 외교사의 기막힌 역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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