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6년 만에 신작.. 뉴욕 배경으로 펼쳐낸 냉소와 온기

이기문 기자 2022. 1. 22.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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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56쪽 | 1만5000원

표제작 속 수진은 이혼한 뒤 미국 뉴욕에서 어학연수를 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뿐 아니라 자신에게서도 도망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이국. 짧은 영어로 원하는 만큼만 스스로를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는다.

수진은 수업에서 세네갈 대학생 ‘마마두’를 만난다. 피부색과 성별, 나이와 국적이 다른 그와 짝을 이루게 되고, 간단하고 직관적인 영어로만 소통하며 가까워진다. 둘은 처음으로 점심을 하기로 하고 학교 밖을 나선다. 수진은 거구인 흑인과 꼬마애 같은 자신을 우스꽝스러운 조합이라 여기고, 수업 시간에 향수 냄새를 풍기던 마마두가 땀을 흘리자 어리숙하다고 느낀다. 흑인과 결혼한 한국 여자의 비극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점심때에 분명 별다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소원해진다. 마마두는 은연중에 자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은희경이 6년 만에 펴낸 소설집에 수록된 4개 단편의 배경은 모두 뉴욕이다. 낯선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 다르기에 필연적으로 오해를 쌓아나간다. 짧은 시간 서로를 잘 알게 됐다고 여기던 두 친구는 꼼짝없이 함께 지내게 되면서 상대를 견딜 수 없어 하고(’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3년 전 미국 여행에서 살갑게 지냈던 현지 유학생 친구는 이방인에게 냉소적인 인물로 변해 있다.(‘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인간을 바라보는 날카롭고 냉정한 시선은 여전하지만, 온기를 지필 작은 불씨 하나씩을 남겨 놓는다. 뉴욕 어학당 마지막 수업 주제는 ‘미래에 대한 글짓기’. 마마두는 자신의 글에 수진을 등장시키며 미래의 어느 한 자리를 그에게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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