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기사조합 '쿱'은 파산했지만.. 박계동 "협동조합은 계속된다"

박지영 2022. 1. 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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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갈등 해결 규칙 없어 쿱택시 파산"
상반기에 새 택시 협동조합 출범 준비 중 
"인건비 상승·수요 감소 해답은 협동조합뿐"
박계동 전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이 11일 서울 영등포구의 본인 사무실에서 협동조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국내 최초의 택시 협동조합인 한국택시협동조합(쿱택시)이 지난달 30일 파산했다. 2015년 7월 출범 후 월급이 일반 법인택시보다 100만 원가량 많고, 가동률도 94%에 달해 주목받았지만, 조합원들 사이의 내홍과 고소·고발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하지만 쿱택시를 출범시킨 박계동 전 이사장은 택시업계의 대안은 여전히 협동조합뿐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택시 협동조합 출범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최근 만났다.


갈등 해결할 규약 없어 쿱택시 실패

박 전 이사장은 쿱택시의 실패 요인으로 세세한 규약이 없었던 점을 꼽았다. 그는 "평등한 관계를 갖는 조직일수록, 갈등 해결을 위해선 더욱 세세한 약속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은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는 일반기업과 달리 수평적 조직이다. 일반기업은 보유 주식 수에 따라 의결권이 정해지지만, 협동조합에선 개개인의 출자금과 상관없이 모두 공평하게 한 표씩을 갖는다. 박 전 이사장은 협동조합에 대해 "민주적 조직이지만, 갈등이 생기면 일반기업보다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모든 조합원이 평등하기에, 역설적으로 갈등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쿱택시에서도 초과금 분배 방식을 두고 조합원들 간 이견을 조정하고 해결할 절차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 갈등이 시작됐다. 박 전 이사장은 "협동조합기본법과 정관만으론 조합 운영이 충분치 않았다"며 "회의나 토론 진행 규칙, 회계 문서 열람 절차 등 세세한 규정이 없다 보니 감정싸움으로 번졌다"고 털어놨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2018년 4월 박 전 이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리를 물려받은 이일열 전 이사장 측은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그를 14차례 고소·고발했는데, 이 가운데 12건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출자금 반환 절차를 지키지 않아 협동조합기본법 위반 혐의로 고소된 2건에 대해선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조합원 편의를 봐주려다 생긴 일"이라며 약식기소 됐다. 반면 이일열 전 이사장은 지난해 7월 근로기준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갈등은 가시지 않았다. 김윤정 쿱택시 조합원은 "파산의 근본 원인은 박 전 이사장의 방만 경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사채 이용과 손해배상 비용 등으로 재정이 바닥났다"고 반박했다. "조합의 내홍 역시 박 전 이사장이 갈등을 조장하고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박계동 전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이 11일 서울 영등포구의 본인 사무실에서 협동조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여전히 대안은 협동조합… 올해 상반기 새 조합 출범 예정

박 전 이사장은 조합원들 고소로 200회 넘게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면서 곤욕을 치렀지만, 새로운 협동조합 택시의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출범을 목표로 택시회사와 인수 협상이 마무리 단계다.

박 전 이사장이 협동조합에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현재 택시업계 구조상 협동조합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기존 택시회사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계속될 것으로 봤다. 박 전 이사장은 "올해 최저임금 기준으론 기사 월급이 최소 191만 원이 보장돼야 하는데, 대부분의 법인택시는 매출액 대비 인건비 상한을 35%로 두고 있어 해당 금액을 지불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협동조합은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니기에 매출액 대비 인건비가 최소 55%라는 게 박 전 이사장 설명이다. 그는 "인건비는 오르는데 매출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업 형태는 협동조합뿐"이라고 말했다.

박 전 이사장은 더 나아가 법인택시 사업주 대부분이 조만간 협동조합에 회사를 매각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버틸수록 적자가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사업주들 입장에선 제대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에 회사를 팔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2년 전만 해도 6,500만 원 수준이던 택시 면허가 지금은 3,000만 원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협동조합 택시가 성공하면 그의 다음 구상은 ‘착한 택시 앱’ 개발이다. 박 전 이사장은 "기사들에게 부담이 적은 협동조합 앱을 내놓아 수요와 공급을 잘 매칭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이사장은 협동조합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그는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도 한때 성과급 문제로 쿱택시와 비슷한 일을 겪어 존폐 기로에 놓인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조합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며 "조합 설립 시도를 계속한다면 국내에서도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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