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대선 승부처는 TV 토론이 되어야 한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22. 1. 22.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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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로 스캔들 덮는 이번 대선 방치할 수 없어
네 후보 모두 참여하고 횟수 10회 이상으로 늘려
정제된 TV 토론 벌이면 쇼로는 버틸 수 없을 것
(왼쪽부터)이재명,윤석열,안철수, 심상정 후보

예리한 독자라면 이 글 제목이 야릇함을 간파했을 것이다. 대선 승부처는 ‘TV 토론이다’가 아니라 ‘TV 토론이 되어야 한다’라니. 에두를 것 없이 필자의 주장을 직설적으로 피력하려 한다. “TV 토론을 통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대선을 바로잡아야 한다.”

일각에선 이번 대선을 우리 정치가 재편되는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로 평가한다. 하지만 필자에게 이번 대선은 더러운 선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후보자 본인, 후보자 가족, 선거 캠프, 그리고 선거운동 자체에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거가 있었나 싶다. 미국의 선거 분석가 래리 새버토(Larry Sabato)는 20세기 말엽 미국의 선거 양상을 ‘광란의 먹이 주기’(feeding frenzy)’로 표현했다. 먹잇감이 던져지면 수조가 끓어 넘치듯 떼로 달려들어 순식간에 뼈만 남기는 피라냐처럼, 정치적 추문과 그에 달려드는 미디어들의 광기가 선거를 집어삼킨다는 것이다.

스캔들이 스캔들을 덮는 이번 대선이 꼭 그 양상이다. 피와 살이 튀는 처절한 난투 끝에 만신창이로 살아남은 자가 승자가 되는 로마 제국 검투 경기의 재연이라고나 할까. 그 세세한 장면들을 미디어들은 날것 그대로 생중계한다. 시시각각 엎치락뒤치락하는 후보들의 유불리를 소수점 아래까지 집계하는 여론조사들은 또 어떤가. 이번 대선을 거치며 민주주의의 실현은커녕, 고대의 제국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던 야만적 광기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는 아찔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선거제도 자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이 같은 병리적 상황은 더 이상 방치될 수 없다. 선거를 정상화하기 위한 비상한 수단이 속히 강구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 수단이 TV 토론이라고 본다.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래의 선거운동이 후보자가 소통 대상을 선택해 자신들 구미에 맞는 얘기를 하는 후보자 주도 방법론이라면, TV 토론은 후보자들이 불특정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자질과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유권자 주도 방법론이다. 어떤 선거운동보다 엄격한 원칙과 룰이 적용되는 정제된 선거운동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TV 토론에도 한계가 있다. 그 첫째는 TV가 이성보다 감성에 지배되는 이미지 매체라는 점이다. 후보자의 자질과 무관하게 말투, 표정, 제스처, 순간의 흥분 때문에 승패가 갈릴 수 있다. 또한 토론 내용 차원에서 후보자들은 자신들이 이슈 장악권(issue ownership)을 지닌 주제들로 토론을 이끌려 하게 된다. 보수는 경제와 안보, 진보는 복지와 인권이 그것이다. 그 결과 TV 토론은 상호 토론이 아니라 각 후보의 일방적 연설에 머무르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당연한 얘기지만, TV 토론은 주도면밀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선 특히 다음 사항들이 지켜져야 한다.

첫째, TV 토론에 대한 이미지 전략적 접근을 최대한 봉쇄해야 한다. 이미지 전략은 좋은 말로 전략이지 결국 국민에게 사기 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후보들을 최대한 많이 노출시키는 것이다. 두세 번의 토론은 이미지 정치 쇼일 수 있지만 그 횟수를 10회 이상 늘리면 더 이상 쇼로는 버틸 수 없다. 둘째, 참가자를 여당 및 제1야당 후보로 제한하는 건 다원적 민주주의 원칙에 명백히 위배된다. 지지율 5% 이상이라는 기준이 있는 선관위 토론회 외에는 합리적인 참여 조건(원내 정당 후보로서 지지율 2% 이상 같은) 합의를 통해 토론 참가자 범위를 넓히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 무분별한 사생활 및 가족 파헤치기를 배제해 TV 토론마저 ‘광란의 먹이 주기’에 매몰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TV 토론 사후 평가(post-debate coverage)에 대한 엄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TV 토론이 아무리 잘 이루어져도 진영화된 사후 평가가 이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은 기간 가능한 많이, 예를 들어 일주일에 2~3회씩, 네 후보(이재명·윤석열·안철수·심상정)가 참여하는 TV 토론을 개최할 것을 필자는 제안한다. 선거의 파행은 이미 도를 넘었다. 이제 그 제도적 붕괴를 막는 차원에서 후보자 주도의 선거 난전은 유권자 주도의 정제된 토론으로 전환되는 게 옳다. 방송사들도 추문에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행태를 멈추고 TV 토론에 협력해야 한다. 선관위와 방심위 역시 선거제도 수호 차원에서 힘을 보태야 한다. 그것이 이 넌덜머리 나는 진영 정치 싸움에서 공동체를 지켜낼 길이다. 후보자들의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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