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인문정원] 집은 봉오리다
기쁨과 웃음 가득한 꽃으로 피어나리
우리는 집이란 장소에 붙박이 거주자로 닻을 내린다. 공기, 빛, 공간, 시간을 아우르는 집에서 삶의 모든 찰나들이 피어난다. 집이 기쁨을 주지 않는다면, 그 삶은 불행할 것이다. 창문을 열어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고, 창밖에 선 산수유나무가 피운 노란 꽃을 기뻐하며, 낮에 하얀 빨래와 어린것의 운동화가 마르는 기적에 감탄한다. 우리는 사는 동안 찰나를 딛고 있으면서 영원을 느낀다. 우유를 먹던 아기는 성큼성큼 자라고, 눈보라 치는 혹한의 계절과 오래 내리는 비를 걱정하던 어른들은 더 원숙해진다.
아, 어머니! 모든 걸 품고 베푼다는 점에서 집과 어머니는 하나로 포개진다. 집은 우리를 품고 어머니는 우리를 돌보고 기르셨다. 어머니는 말썽꾸리기 아들의 단추가 떨어진 외투에 반짇고리에서 찾은 단추를 새로 달고, 해진 양말을 꼼꼼하게 꿰매셨다. 끼니 때는 따뜻한 밥을 짓고, 배춧국을 끓이셨다. 내게 오던 그 배부르고 따뜻한 저녁들이 다 저절로 온 것인 줄만 알았다. 고요와 평안이 넘치던 그 저녁이 아버지의 노동과 어머니의 수고의 결과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의 철없음에 후회를 한 건 한참 늦은 뒤였지만 다행이다.
집이 있으면 더 많은 시작을 실행에 옮길 수 있고, 제 삶을 꽃피울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가 있다. 나는 가난해서 오랫동안 집 없이 살았다. 젊은 날엔 툭하면 살림살이를 싸서 셋방에서 셋방으로 이사를 다녔다. 겨울엔 추운 집에도 살아보고, 장마 땐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집에도 살아봤다. 운 좋게도 오래된 집을 사서 묵은 때를 벗겨내고 도배를 새로 한 뒤 처음 입주했을 때 감격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시절 젖니가 막 돋던 막내까지 다 성장해서 집을 떠나 살아간다.
집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무가 있다. 그 의무는 숭고하다. 그것은 ‘나다움’을 찾아야 하고, 부지런히 일해서 식구를 부양하며, 좋은 취향을 기르고, 세상의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꾸는 것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제 안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먼 곳을 동경하며 살아야 한다. 자신의 나쁜 운을 타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늘 불평이 많은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기다움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삶의 무의미한 낭비일 뿐이다.
살고 보니, 우리가 산 집은 곧 우리의 운명이었음을 알겠다. “봉오리는 모든 만물에 있다”는 시구는 인상적이다. 시인 골웨이 키넬에 따르면, 사람도 봉오리고, 집도 봉오리다. 기쁨과 웃음으로 세운 집은 꽃으로 피어날 봉오리다. 이 봉오리 속에서 우리는 삶을 보듬고 키우며 살았다. 청미래같이 파릇하던 자식들이 성장해서 제 갈 길로 떠나보냈다. 마지막까지 남은 건 늙은 부부뿐이다. 사람이 늙듯이 집도 늙는다. 세상을 다녀가는 온갖 기후를 견디느라 지붕과 기둥이 낡고, 벽에 칠한 페인트는 벗겨지는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낡은 집과 이별할 때를 맞는다. 하지만 염려하지 말라. 한 집을 떠나보내면 새집이 먼 곳에 온다. 집이 없다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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