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호의미술여행] 하얀 눈밭 위 소나무를 보면서

2022. 1. 2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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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내린 뒤 강한 한파가 몰아닥쳐 몸이 움츠러든다.

하얀 눈밭 위 당당하게 서 있는 초록색 소나무가 더욱 늠름해 보인다.

이런 색 원근법이 '큰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에서 나타난다.

그 안 풍경의 황갈색이 도드라지면서 앞으로 나오는 느낌을 주고, 청록색은 움츠러들며 뒤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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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큰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
함박눈이 내린 뒤 강한 한파가 몰아닥쳐 몸이 움츠러든다. 하얀 눈밭 위 당당하게 서 있는 초록색 소나무가 더욱 늠름해 보인다. 그래서 오늘은 폴 세잔의 ‘큰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을 유심히 보고 있다.

평생 빛과 색의 변화에 매달렸던 클로드 모네는 ‘잡을 수 없는 신비한 자연’이란 한탄을 남기고 죽었다. 이와 달리 폴 세잔은 일찍이 인상주의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인상주의가 나타낸 눈으로만 파악한 감각 세계가 혼란스럽다 생각했고, 정신적 구성과 지적인 질서를 덧붙이려 했다. 대상 표면의 색은 변해도 입체적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관점에서 세잔은 “모든 자연 속 대상은 원통, 원추, 구로 환원하여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잔은 또 색채와 형태가 상호 보완적이며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색의 명암이나 색조 간의 조화와 대조를 통해서 사물의 양감과 입체감을 표현하는 식이다. 색의 대비를 통해 원근 관계를 나타낸 색 원근법도 시도했다. 따뜻한 느낌의 황갈색 계통이 도드라지는 인상을 주고, 차가운 느낌의 청록색 계통이 움츠러드는 인상을 준다는 점을 이용한 방법이다.

이런 색 원근법이 ‘큰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에서 나타난다. 우리 시선이 왼쪽 아래 큰 소나무에서 출발해 멀리 산을 향해 뻗은 나뭇가지를 따라 그림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간다. 그 안 풍경의 황갈색이 도드라지면서 앞으로 나오는 느낌을 주고, 청록색은 움츠러들며 뒤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이렇듯 세잔은 황갈색과 청록색을 번갈아 교차시켜 원근 관계를 나타냈다. 색의 띠나 조각들을 반복하고 교차시켜 전체적으로 굴곡의 느낌도 만들어냈다. 화면 가운데 산의 모습은 원뿔 형태를 바탕으로 나타내서 색의 조화와 형태의 명확성을 동시에 표현했다. 그 결과 세잔은 눈에만 의존하던 인상주의 그림의 무형태성을 극복하고, 견고한 형식적 구조를 되살려 놓았다.

경제도 정치도 사회도 우리를 지치게 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하얀 눈밭 위 소나무처럼 늠름하고 의연하게 버텨야 할 텐데.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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