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한밤의 산책

2022. 1. 2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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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아이를 재우다 말고 문득 오늘 부쳤어야 할 급한 우편물을 깜빡 잊고 서랍에 넣어두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아이가 태어난 이후 한밤에 혼자 밖에 나온 것이 처음이었다.

밤이란 으레 아이를 재우고 아이 곁을 지켜야 하는 시간이었는데, 그 절대의 규율을 어쩌다보니 처음으로 깬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게 한밤의 동네 풍경이 그토록 낯설어 보였던 것은 그날따라 세상이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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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아이를 재우다 말고 문득 오늘 부쳤어야 할 급한 우편물을 깜빡 잊고 서랍에 넣어두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시계를 보니 이미 자정이 가까운 때였다. 평소 같으면 날 밝기를 기다려 우체국에 가겠지만 하필 이튿날은 아침부터 일이 있어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방법은 편의점 택배 서비스뿐이었다. 결국 잠든 아이를 놔두고 집을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머릿속에는 우편물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거리로 나서는 순간 나는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눈앞의 세상이 온통 휑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인도에도 사람이 없고 차도에도 차가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움직이는 것들이 사라진 동네 풍경은 늘 보던 것인데도 낯설기 그지없었다. 아무도 없는 도로를 밝히고 있는 가로등과 저 홀로 점멸하는 신호등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나는 지구 멸망 후 최후의 생존자가 된 기분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러다가 불현듯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생각해보니 아이가 태어난 이후 한밤에 혼자 밖에 나온 것이 처음이었다. 밤이란 으레 아이를 재우고 아이 곁을 지켜야 하는 시간이었는데, 그 절대의 규율을 어쩌다보니 처음으로 깬 것이었다.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그렇게 규율에 매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 엄마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리라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은 그러니까 마치 지구 멸망 후 최후의 생존자가 된 것처럼 막막하고 황당하며 씁쓸한 깨달음이었다.

도로를 건너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다행히 편의점에는 사람이 있었다. 조명이 있고 음악이 있으며 첨단의 택배 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편물을 발송하고 따뜻한 음료까지 한 병 사서 그곳을 나왔다. 다시 횡단보도에 섰다. 아까와 달리 건너편 도로에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이 보였다. 차들이 연달아 지나갔다. 당연하게도 지구 멸망은 아니었다. 아마 늦은 시간이었고 코로나 여파 때문이기도 할 테고 아니, 어쩌면 자정 무렵의 주택가란 원래 그렇게 사람도 차도 없는 것이 당연할 터이다.

그러니까 내게 한밤의 동네 풍경이 그토록 낯설어 보였던 것은 그날따라 세상이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늦은 시간 바깥에 나가보았다는 사실이 낯설었던 것이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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