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학대 논란 '태종 이방원' 제작진 고발당해..처벌 가능성은 [법잇슈]
"'도구 등 사용해 상해 입히는 행위 금지' 등 위반
말 다칠 수 있다는 것 누구나 예측 가능" 주장
학대 고의성 존재 여부가 향후 쟁점 될 듯
KBS, 사과.. "유사 사고 발생하지 않게 할 것"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에서 제작진이 낙마 장면 촬영을 위해 말을 강제로 넘어뜨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물 학대 논란이 커지고 있다. 동물권 보호단체들은 제작진이 해당 촬영으로 말이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데다 말이 촬영 후 죽은 만큼 동물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제작진을 경찰에 고발했다.
◆카라·한국동물보호연합 등 고발 잇따라…“촬영 시 안전조치 마련해야” 국민청원도
21일 경찰 등에 따르면 동물권 보호단체 ‘카라’는 전날 서울 마포경찰서에 ‘태종 이방원’ 촬영장 책임자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카라는 ‘태종 이방원’ 측이 동물 학대 행위를 금지한 동물보호법 제8조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해당 법조는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구 등 물리적·화학적 방법을 사용해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동물보호법 제8조 제2항 제1호).
문제가 된 장면은 지난 1일 7회 방영분에서 연출된 이성계의 낙마 장면으로, 말의 발목에 와이어를 묶어 앞으로 넘어지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동물자유연대 등이 해당 촬영 당시 말이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일었고, 말이 촬영 후 1주일쯤 뒤 죽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전날에는 KBS에 영상 촬영 시 동물에 대한 안전조치 등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국민청원은 이날 오후 3시 기준 7만2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최민경 카라 정책실 부팀장은 “(촬영 중 있었던) 행위 자체가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고의로 죽음에 이르는 행위를 자행한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동물보호법 제8조 위반으로 고발했다”면서 “이 행위가 (말의)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의 중대상해를 입히거나 혹은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걸 누구나 예측 가능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동물보호법 제46조(벌칙)는 같은 법 제8조 제2항을 위반해 동물 학대를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등도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동물 학대 규탄 기자회견을 연 뒤 영등포경찰서에 ‘태종 이성계’ 제작진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은 동물보호법 제8조 제2항 제3호에서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만큼, 제작진의 행위가 동물 학대에동물학대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이외에도 ‘동물의 사육·훈련 등을 위해 필요한 방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구를 사용하는 등 잔인한 방식으로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같은 법 제8조 제2항 제4호가 ‘태종 이방원’ 측에 적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동물 학대 처벌 ‘고의범’일 때 가능…상해·사망 가능성 사전 인지했는지 수사할 듯
동물보호법상 동물 학대의 경우 ‘고의범’(죄를 저지를 의사를 갖고 저지른 범죄)일 때 해당하기 때문에 이번 사례에선 ‘태종 이방원’ 측 행위에 학대의 고의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김슬기 변호사는 “동물 학대라는 것 자체가 고의 범죄다. 사람이 과실로 학대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면서 “동물 학대가 문제가 됐을 때 ‘고의성이 없었다’라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 실제 정황을 보고 고의성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이번 사안에 대해선 “(태종 이방원 측이) ‘일부러 학대를 하려는 목적은 없었다. 촬영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겠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영상이나 동물학대에 대한 해석·처벌이 예전보다 좀 더 적극적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그 행위 자체가 고의성이 없다고 보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고 관측했다.
향후 수사 과정에선 제작진이 이 촬영으로 인해 말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했는지와 실제 말의 죽음에 촬영이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논란이 확산하자 KBS는 전날 입장문을 내고 향후 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른 방식의 촬영과 표현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KBS 측은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나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뒤 말을 돌려보냈고, 최근 말의 상태를 걱정하는 시청자들의 우려가 커져 말의 건강 상태를 다시 확인했는데 안타깝게도 촬영 후 1주일쯤 뒤에 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사과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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