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에 발목 잡힌 미국..유엔 안보리 대북 추가 제재 무산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2022. 1. 2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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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 독자 제재한 북한 인사 5명
유엔 제재 명단에도 등재 제안
중·러, 회의 마감 직전 보류 요청
‘미 vs 중·러’ 대북 입장차 확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명단에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 관련자들을 추가하려던 미국의 시도가 20일(현지시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북한이 전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유예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대북정책 입장차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AFP통신은 중국과 러시아가 이날 북한의 미사일 개발 관련자들을 안보리 제재 대상에 추가하려는 미국 측 제안에 대해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채택 보류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안보리 비공개회의는 가장 낮은 단계의 공동대응인 언론성명조차 내지 못하고 끝났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12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관련된 북한 국적자 6명과 러시아 국적자 1명, 러시아 기업 1곳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북한이 지난해 9월 이후 유엔 안보리 결의를 거스르는 탄도미사일을 잇따라 발사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는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북한 핵·미사일 개발 관련, 첫 독자 제재였다. 미국은 독자 제재 대상 중 북한 국방과학원 소속 5명을 유엔 제재 명단에 추가로 올릴 것을 제안했다.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의 추가 제재안은 이날 오후 3시까지 안보리 상임·비상임 15개 이사국의 반대가 없으면 자동 확정되지만, 중국은 마감 시간 직전에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보류를 요청했고, 이어 러시아도 보류를 요청해 미국의 시도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유엔 결의는 15개 이사국 중 1개국이라도 반대하면 결정되지 않는 만장일치(컨센서스) 방식이다. 보류 요청이 들어오면 제재 명단 추가 안건은 6개월간 보류된다. 이후 다른 이사국이 추가로 보류를 요청하면 3개월 연장된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안보리 비공개회의 직전 발표한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8개국 유엔대사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규탄하는 데 모든 이사국이 단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는 선제적으로 안보리 대북 제재의 이행을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여기에는 지난주 미국이 제안한 불법 무기 개발 관여자 등에 대한 제재 지정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번 안보리의 대북 추가 제재 불발은 제재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근본적인 입장차를 보여준다. 미국은 북한과의 외교적 해법 모색을 강조하면서도 대화에 나서지 않는 북한, 특히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북한에 대해 채찍인 제재를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중국은 대화 재개를 위해 미국이 제재 일부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류샤오밍(劉曉明)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이날 노규덕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통화하면서 “미국은 ‘제재 만능론’을 포기하고 실질적 조치를 내놓음으로써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우려를 해결하고 대북 안보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 대사는 그러면서 미국은 대화 재개를 위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프로세스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러의 보류 의견으로 안보리 대북 제재가 사실상 무산된 데 대해 “안보리 구성원들이 대국적 견지에서 장기적으로 내다보며 현재 정세를 신중하게 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측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정세 안정화를 위해 상호 신뢰를 쌓고 대화 재개에 적극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부연했다. 중국 측 제안은 ‘쌍궤병진(雙軌竝進·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상의 병행 추진)’ 등 원칙에 입각한 대북 대화 추진, 북한의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중단에 상응한 대북 제재 완화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이 같은 대응은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전략적 고려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북·중 협력, 북·중·러 공조로 맞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연초 북한이 2차례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하자, 지난 10일 유엔 안보리 비공개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하려 했지만 중·러의 반대로 언론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은 화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이날 성명을 내고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를 비롯해 WMD와 탄도미사일, 관련 프로그램·시설에 대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해체(CVID)를 강력하게 다짐한다”고 밝혔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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