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코로나 서사를 버무린 SF [책과 삶]
[경향신문]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이경희 지음
다산책방 | 376쪽 | 1만5000원
장편 <테세우스의 배>로 2020 SF어워드 장편 부문 대상을 받은 SF작가 이경희의 신작 소설집이다.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됐다. 어떤 작품은 현실에 대한 풍자 요소가 다분한 블랙코미디이고 어떤 작품은 SF장르의 본질에 조금 더 집중한다.
‘우리가 멈추면’은 작가 스스로 2014년 KTX 민영화 저지 투쟁과 2018년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의 투쟁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밝혔다. 소행성 세레스에서 물류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을 그렸다. 회사는 정거장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을 갖가지 수단으로 탄압한다. 나중엔 행성 연립정부까지 나서서 노동자들을 비난한다. 힘겨운 투쟁과 최초의 감격스러운 파업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은 ‘전태일 서사’가 SF장르에도 유효함을 보여준다.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과 ‘신체강탈자의 침과 입’은 유머러스하다. 전자는 ‘양자 얽힘’에 의해 조상들이 좀비가 돼 살아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제사 없애기 운동본부’ 회원이던 주인공은 난데없이 나타난 죽은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혼비백산한다. 조상들은 ‘젊은 처자의 옷꼬라지’를 지적하고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후배’를 타박한다. 해외에서는 죽었던 스티브 잡스가 나타나 현재의 아이폰 디자이너들을 닦달한다. 지난해 4월 웹진 거울에 처음 발표됐던 ‘신체강탈자의 침과 입’은 팬데믹 시대 위생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했다. 외계인이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장악했는데, 이 외계인은 물을 무서워해서 좀처럼 손을 씻지 않는다는 설정을 내세웠다. 이지용 문학평론가는 “지금 여기 우리들의 이야기들로부터 SF가 100년가량의 역사 동안 거쳐왔던 흔적들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고 평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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