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처럼 착한 딸로 살기는 싫어요 [책과 삶]
[경향신문]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산체스 지음·허진 옮김
오렌지디 | 384쪽 | 1만7500원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부모님과 함께 산다. 대학에 가지 않고 일하며, 가족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때가 되면 결혼을 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란 이런 것이다.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고 집안에 보탬이 될 것을 요구받는다는 점에선 옛날식 ‘K장녀’와 닮았다. 미국 시카고에서 살고 있는 멕시코 이민자의 자녀 ‘훌리아’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다. 그것은 훌리아의 언니, ‘올가’의 역할이었다.
소설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올가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훌리아는 친하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언니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는다. 언니의 죽음이 자신 탓인 것 같아 고통스러워하던 훌리아는 죽은 언니의 흔적을 좇기 시작한다. 조신하지만 지루하고, 착하고 똑똑하지만 야망은 없는 ‘전형적인 멕시코 딸’로 여겼던 올가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 그저 답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언니를 이제라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언니의 지난 삶을 샅샅이 뒤져가며 훌리아는 비로소 자신의 내면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자기다움을 찾고, 동시에 자유를 얻기 위해 사투하는 16세 훌리아의 성장담이 담긴 청소년소설이다.
시카고의 멕시코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작가는 이질적 문화 속에서 자기다움을 찾기 위해 세상과 싸워야 하고, 그보다 먼저 가족과 싸워야 하는 이민자 자녀가 자신을 부정하는 일을 겪지 않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작가는 책의 말미에 “목숨을 걸고 이 나라에 온 모든 이민자와 그 자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썼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역대 최고의 청소년 문학 100’에 꼽혔고,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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