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아내들의 삶 순종적이기만 했을까 [책과 삶]

김유진 기자 2022. 1. 2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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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조선, 아내 열전
백승종 지음
시대의창 | 296쪽 | 1만6800원

조선시대와 아내. 두 단어의 만남은 대번에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조선 역사 500년 동안 아내의 변화된 삶을 조명하는 작업은 이전에 없었던 참신한 시도다. “나를 살리고 기른 것은 여성”이라 고백하는 역사학자 백승종은 “역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아내의 목소리를 찾아내서 기록하자”는 오래된 꿈을 열다섯 편의 이야기를 통해 펼쳐보인다.

조선의 아내들은 단지 성별 차이 때문에 남편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과 관계의 무게추가 내내 기울어져 있었다거나 가정에서의 위치·역할이 중요하지 않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조선 중기 여류시인 송덕봉은 남편인 미암 유희춘과 시를 주고받는 ‘지기(知己)’였고, 남편의 유배 기간에는 집안 대소사를 도맡았다. 남편이 조정에 복귀한 지 석 달 만에 첩을 들이려 하자 ‘군자의 도’에 빗대 꾸짖어 결국 미암이 항복하게 만들기도 했다. 저자는 송덕봉을 당대의 성리학을 내면화한 ‘여성 선비’의 삶을 살면서도 아내로서 자신의 권리를 지켜낸 사례로 꼽는다.

이름 석자보다 ‘○씨 부인’으로 기억되는 아내들도 시대 흐름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양반과 평민, 노비를 가리지 않고 모든 아내에게 절개의 굴레가 씌워졌다. 남편을 따라 죽어야만 칭송받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놓여서도 어떤 이들은 나름의 대의명분과 삶의 의미를 추구했다.

역사저술가로 친근한 저자는 조선을 살아간 아내들의 다양한 얼굴을 솜씨있게 복원해낸다. 다만 저자 스스로도 말하듯이 아내가 직접 남긴 기록이 부족한 탓에 지식인 남편의 글로써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아쉽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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