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촬영장의 말(馬)
[경향신문]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장면 촬영에 동원된 말이 7일 만에 죽어 동물학대 논란이 빚어졌다. 현장 영상을 보면 전력질주하던 말은 제작진이 발목에 묶어놓은 와이어 때문에 머리부터 땅으로 고꾸라졌다. 심한 충격에 목이 꺾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진감 넘치는 장면 하나 찍으려 말을 계획적으로 희생시킨 셈이다.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동물권 인식 수준이 개탄스럽다.
말의 지능지수(IQ)는 70~80으로 개와 비슷하다. 사람으로는 세 살 아이 수준이다. 이탈리아 피사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거울테스트 결과 말도 사람처럼 자기인식 능력을 보였다. 감정지능은 사람보다 더 높아서 겉말이 아닌 속마음을 읽는다고 한다. 김유신의 애마는 발길을 끊겠다고 선언한 천관녀 집에 만취한 그를 데려다놨다가 억울하게 목이 베였다. 말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동물 매개 치료도 있다. 서커스 ‘카발리아’는 사람과 교감하는 수십 마리의 말이 주인공이다. 올림픽 승마경기에서는 말도 어엿한 선수다. 사람이 메달을 받을 때 말은 리본을 받는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달은 말에겐 수난이었다. 1925년 할리우드 무성영화 <벤허>에서는 위험천만한 마차 경주 장면을 포함해 최소한 100마리가 희생됐다고 한다. 1939년작 <제시 제임스>는 말을 속여 21m 높이 절벽에서 뛰어내리게 만든 장면으로 공분을 샀다. 이후 할리우드 촬영장의 동물 처우는 미국인도주의협회(AHA)에서 모니터링한다. 말이 넘어지는 장면을 부득이하게 찍을 때는 전문 스턴트 훈련을 받은 말이 투입된다. 가슴부터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도록 한다. 컴퓨터그래픽(CG) 발달에 따라 말 마네킹 위의 배우를 촬영한 뒤 후반작업에서 말 그래픽을 입히는 방법도 보편화했다.
KBS 제작진은 그럼에도 굳이 살아있는 말과 사람을 투입했다. 스턴트맨도 충격에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한 기획사 대표 말대로 동물에게 폭력적인 현장은 스태프에게도, 배우에게도 안전할 수 없다. 동물권단체에서는 가치가 떨어진 퇴역 경주마가 동원됐다는 혐의를 제기하고 있다. CG 작업에 시간과 돈을 쓰는 것보다 말 한 필의 생명이 ‘싸다’는 판단은 아니었길 바란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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