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의거 주인공 찾습니다"..62년 만에 진상규명

황재락 2022. 1. 2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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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창원] [앵커]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민주화 운동인 3·15 의거는 4·19 혁명의 도화선으로 평가받지만,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는데요.

지난해 국회에서 3·15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오늘 진실 화해 위원회의 현장 사무소가 설치되면서, 62년 만에 진상 규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보도에 황재락 기자입니다.

[리포트]

1960년 3월 15일, 자유당 부정선거에 항의해 경남 마산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3·15 의거.

3·15 의거는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유혈 민주화 운동이자, 4·19 혁명의 도화선으로 평가받습니다.

올해 81살인 이영조 씨의 형은 당시 학생으로 3·15 의거에 참여했다 경찰에 구금돼 고문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이후 조현병 등 후유증에 반세기 넘게 시달렸지만,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영조/창원시 월영동 : "(형이) 혼자 평생을 젊었을 때부터 병원에서 보냈으니까 너무 억울했어요, 제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제가 형님 한을 좀 풀어드려야겠다…. 수소문해도 방법이 없었어요."]

지난해 국회에서 3·15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진실 화해 위원회가 창원에 사무소를 열고,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진실 화해 위원회가 과거사 사건과 관련해 지역 사무소를 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3·15 의거 진실 화해 위원회 창원사무소는 올해 말까지 진상 규명 신청을 받고, 당시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거나 구금 피해자에 대한 조사에 나섭니다.

[정근식/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 "가장 중요한 것은 3·15 의거와 관련된 관련자들을 정확하게 진상규명을 하고, 그분들의 명예회복을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진상 규명 뒤 피해자 보상과 배상 등 후속 법률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62년 전, 가장 먼저 민주화의 불꽃이 시작된 3·15 의거, 당시 참여자 1만여 명 가운데 14명이 숨지고 700여 명이 구금당했지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길은 반세기가 지나 시작됐습니다.

KBS 뉴스 황재락입니다.

촬영기자:지승환

황재락 기자 (outfocu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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