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 올인', '단타 공약', '비호감 경쟁'..이런 대선 또 있을까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47일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선이 여러모로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선후보의 '욕설 파일', 후보 부인의 '7시간 통화' 녹음 파일이 연일 공개되는 등 '폭로 난타전' 양상이다. 과거 대선 때마다 으레 등장했던 '시대정신'이라는 말도 찾아보기 어렵다. 단편화된 '한 줄 공약'이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불쑥불쑥 제기되고 있다. 널뛰기 여론조사가 쏟아져 민심 흐름을 엿보기도 쉽지 않다. 유력 대선후보들이 경쟁하듯 SNS를 비롯한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단타 공약'을 쏟아내며 비호감 대선을 이끌어가고 있다.
청년='이대남'?
이번 대선에선 2030 세대 표심이 중요한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세대 포위론'을 내세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대남'에 초점을 둔 발언들로 안티 페미니즘을 주도해왔다. 지난 재보궐 선거 승리 요인을 '이대남' 지지효과로 보는 국민의힘은 아예 이대남 맞춤 공약을 내세웠다. 윤석열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으로 손발을 맞췄다. 윤 후보는 국민의힘이 영입한 신지예 전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의 사퇴에 대해 "2030의 마음을 세심히 읽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이재명 후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후보는 유튜브 채널 <시리얼>과 <닷페이스> 출연 일정을 돌연 취소했다. 온라인상 남초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즘 유튜브' 출연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자 일정을 바꾼 것이다. 이 후보는 추후 <닷페이스>에 출연해 "'이대남'뿐만 아니라 '이대녀'에게도 쩔쩔 맨다"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오늘도 나가지 말고 방송 취소하자고 난리였다"며 '이대남' 지지층의 반발이 적지 않았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2030 표심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선거는 전례가 드물다. 두 후보가 앞다퉈 발표한 공약을 비교하면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구조의 단층에 놓인 젊은층에 관한 고심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병사 월급 확대,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 크게 다르지 않은 약속들을 앞세워 발표하고 있다.
청년 맞춤=단문 공약?
진영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은 청년층이 선거 캐스팅보트로 떠오르자 후보들의 선거운동 행태도 달라졌다. 거대 슬로건을 내세우고 설득력을 갖추는 데에 주력했던 과거 선거와 달리, 각 당 후보들과 선대위는 SNS를 비롯한 디지털 플랫폼에 알쏭달쏭한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청년층의 미디어 소비 트렌드에 맞춰 '짧은' 선거방법을 택했다. 유튜브 쇼츠(Shorts, 1분가량의 짧은 동영상)를 이용해 공약을 공개했다. 전기차 충전요금 동결, 만 나이로 통일 등 생활밀착형 공약들을 빠른 화면 전환과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각종 '밈'들로 채워 넣었다.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도에선 이재명 후보도 뒤지지 않는다. 탈모 치료약 건강보험 적용 공약이 인기를 끌자 곧바로 짧은 영상을 올리며 호응을 이끌어냈다. 요즘 유행하는 '라이브'를 켜고 대중교통을 타며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선보였다.
이 후보의 '소확행 공약', 윤 후보의 '심쿵약속'은 모두 일상생활에 밀접한 주제를 다루는 공약들이다. 군 장병 통신료 반값, 타투 합법화, 보건증 무료 발급, 대형마트 종이박스 포장 복원 등 주로 생활 속의 불편한 점들을 해소해 준다는 취지이지만, 선거가 끝나면 기억도 못할 단편적 약속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청년기후단체네트워크 '플랜제로'는 "이번 대선은 코로나 위기, 경제 위기, 기후 위기를 막을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선거이지만 "어떻게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비전은 소멸하는 중"이라 비판했다.
상대 후보 '비호감도'를 높여라
이재명 후보는 '추진력'을, 윤석열 후보는 '공정성'을 인물 브랜드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각각 '대장동 의혹', '김건희 리스크'에 휘말려 후보들의 비교우위가 희석되면서 '인물 비호감 경쟁' 대선으로 접어들었다.
한국갤럽이 지난 4~6일 전국 성인 1002명에게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호감 가지 않는다'는 응답이 68%, 이재명 후보는 58%였다. '호감이 간다'는 응답은 윤 후보 25%, 이 후보 36%에 그쳤다.
비호감도가 높은 후보가 있는 대선은 후보 지지 이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갤럽이 21일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후보 지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6%가 '다른 후보가 싫어서'를 골랐다. 마음에 드는 후보를 뽑는 선거가 아닌, 싫은 후보를 떨어트리기 위한 선거가 된 것이다.·
양측은 서로를 향한 비호감도를 높이려 '녹취록' 난타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윤 후보에게는 '김건희 녹취록'이, 이 후보에게는 '욕설 녹취록'이 아킬레스건이 됐다. 녹취록 의혹의 당사자이자 해명의 주체인 두 후보는 짐짓 "네거티브는 없다"며 모른척 하지만, 경쟁의 알맹이가 사라져 네거티브 진흙탕에 빠진 대선 국면 전환은 요원해 보인다.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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