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동물 학대 논란 이번주 결방.."공영방송, 사과론 안 돼"

박정선 기자 2022. 1. 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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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카라
동물 학대 논란에 휩싸인 KBS 1TV 대하 사극 '태종 이방원'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문제가 된 방송분 다시 보기를 삭제했고, 이번주 방송 결방을 결정했다.

KBS는 '태종 이방원'이 말 학대 의혹 장면으로 논란이 거세지자 문제가 되는 7회 방송분 다시 보기 서비스를 중단했다. 오는 22일과 23일 방송 예정이었던 13회와 14회도 결방한다. 설 연휴로 인해 스페셜 방송을 내보내려던 29일과 30일에도 방송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 방송이 논란이 불거진 뒤 미온적 대처를 취하자 비난 목소리는 거세다.

문제가 된 장면은 지난 1일 방송된 '태종 이방원' 7회다. 극 중 이성계가 말을 타고 달리다 낙마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지난 19일 동물자유연대가 공개한 해당 장면의 촬영 비하인드 영상에는 이성계를 연기한 배우를 태운 말이 전속력으로 달려오다 머리가 바닥에 곤두박질쳐질 정도로 고꾸라지는 모습이 담겼다. 그러나 스태프는 배우의 상태만 확인할 뿐, 크게 넘어진 말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해당 장면에 등장한 스턴트 배우는 안전장치 없이 일반적인 보호 장구만 착용한 후 촬영에 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에서 떨어진 후 잠시 정신을 잃었고, 이 때문에 당시 촬영이 잠시 중단됐다.

이에 동물권 행동 단체 카라는 "장면을 면밀히 살펴보면 말의 다리를 와이어로 묶어서 잡아당겼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고, 동물자유연대는 "강제로 넘어뜨리는 과정에서 말은 몸에 큰 무리가 갈 정도로 심하게 고꾸라지며, 배우 역시 부상이 의심될 만큼 위험한 방식으로 촬영됐다"면서 "말의 현재 상태 공개와 더불어 해당 장면이 담긴 원본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태종 이방원'

논란이 커지자 KBS는 동물권 단체들의 이의 제기 다음 날인 20일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뒤 말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최근 말의 상태를 걱정하는 시청자들의 우려가 커져 말의 건강상태를 다시 확인했는데, 안타깝게도 촬영 후 1주일쯤 뒤에 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각종 촬영 현장에서 동물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방법을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의 조언과 협조를 통해 찾도록 하겠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전했다.

"제작진은 며칠 전부터 혹시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준비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면서도, 결국 말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소식에 대중은 더욱 분노했다. 해명이 아닌 변명에 가까운 입장문 등 KBS의 미온적 태도에 논란에 더욱 불이 붙었다.

이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번 사태와 관련된 청원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방송 촬영을 위해 동물을 소품 취급하는 '태종 이방원' 방송을 중지하고 처벌해달라'는 청원글은 3만 6000명(21일 오전 9시 기준) 이상의 시청자가 동의했다. '태종 이방원' 홈페이지 시청자 소감 게시판에도 '둥물 학대 드라마 폐지하라', '폐지해야 한다. 악마 드라마', '제작진이 사람인가'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사태의 불똥은 주연 배우 주상욱 등 출연진에게도 튀었다. 특히 주상욱은 해당 장면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분노한 대중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주상욱의 SNS에는 '동물 학대 드라마 하차하라'는 댓글부터 '드라마의 폐지를 원한다', '동물 학대를 멈춰달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연예계 관계자들도 분노했다. 배우 고소영은 자신의 SNS에 학대 정황이 담긴 영상을 게재하며 '너무해요. 불쌍해'라고 했다. 방송인 겸 영화감독 박성광은 '이건 절대 아니라고 본다. 이런 구시대적인 촬영 기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뮤지컬배우 정선아는 '이게 말 못하는 짐승에게 할 짓인가. 정말 치가 떨린다'고 분노했고, 배우 김효진은 '정말 끔찍하다. 배우도 다쳤고, 말은 결국 죽었다고 한다'고 했다.

동물권 단체들은 '태종 이방원' 측을 상대로 고발장을 내며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20일 카라는 "KBS는 이번 일을 '안타까운 일' 혹은 '불행한 일'로 공식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KBS 촬영 현장에서 발생한 이 참혹한 상황은 단순 사고나 실수가 아닌, 매우 세밀하게 계획된 연출로 이는 고의에 의한 명백한 동물 학대 행위에 해당한다"라며 "시청자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는 이번 상황을 단순히 '안타까운 일' 수준에서의 사과로 매듭지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카라

한국동물보호연합은 21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전 세계 최고급 영상 콘텐트를 내놓는 한국에서 동물보호 인식이 할리우드보다 80년 가까이 뒤떨어지는 건 납득가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태종 이방원' 제작사를 상대로 동물보호법 위반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박정선 엔터뉴스팀 기자 park.jungsun@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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