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키썸, 코로나19 겪은 래퍼의 진심
말괄량이, 개구쟁이 같은 모습만 있는 줄 알았더니 진지한 모습도 있다. 마음속 쓸쓸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내고, 그 음악으로 다른 이를 치유하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로 인해 공백기를 가진 래퍼 키썸이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서울경제신문 사옥에서 키썸과 컴백 인터뷰가 진행됐다. 지난 19일 공개된 키썸의 ‘더 세컨드 키 투 썸 아일랜드(THE 2nd KEY TO SUM ISLAND)’는 2020년 3월부터 시작된 ‘썸 아일랜드(SUM ISLAND)’ 프로젝트의 두 번째 시리즈다. 키썸은 오랜 공백기를 깨고 돌아온 만큼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녹여냈다. 타이틀곡 ‘사실 누군가 날 감싸 안아 주길 원해’는 어쿠스틱 힙합 사운드로, 서정적인 기타 리프가 인상적인 곡이다. 외로움을 느끼는 직설적인 가사와 키썸의 쓸쓸한 목소리가 곡의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앨범 재킷 이미지이기도 한 앙상하고 마른 나무라는 뜻의 ‘베어 트리스(Bare Trees)’는 이 곡의 중심이 된 소재이자 상징이다.
“이번 곡은 쓸쓸하고 차분한 음악이에요. 색깔로 표현하면 회색 빛깔의 노래인 것 같아요. 이 곡의 주제를 한 번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제목이 곧 주제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곡을 쓴 의미가 누군가 날 감싸 주길 원해서였거든요. 저도 이 곡으로 누군가를 위로해 주고 싶어요.”
공백기는 외로움의 촉발제였다. 코로나19로 인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그나마 있던 스케줄도 많이 취소가 됐다. 그러면서 한때 잠시 우울감이 찾아왔고, 그 찰나에 느낀 감정을 곡으로 옮겼다.
“지난해 이 곡을 내고 싶었는데 시기가 안 맞아서 이제 발표하게 됐어요. 이 곡을 쓴 지 좀 오래 지나서 그런지 지금은 마음이 괜찮아진 상태예요. 제 장점이자 단점이 금붕어 기억력이거든요. 안 좋은 건 빨리 잊는 스타일이라 잠깐 힘들었다가 괜찮아졌어요.”(웃음)
노래 스타일이 바뀌면서 키썸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평소에 입지 않던 청순한 스타일의 의상도 입고, 성숙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새로운 프로필 사진도 평소의 악동 같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차분함이 묻어난다. 스무 살에 데뷔해 20대의 끝자락에 온 현재,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키썸이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이전보다 성숙해졌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의도한 거예요. 그런데 실제 제 모습은 아직 아기죠. 어리고 발랄하고 장난꾸러기예요. 원래 저는 저대로 사는 게 편해요. 이전에도 인터뷰할 때마다 ‘키썸과 조혜령(본명)은 다른가?’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는데 전혀 다르지 않거든요. 사실 지금도 간질거려 죽겠어요. 이번 콘셉트가 끝나면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이번 앨범은 키썸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오리지널 앨범에 이어 20일에는 NFT(대체 불가능 토큰)을 활용한 체험형 버추얼 앨범도 발매됐다. 지금까지 NFT로 발매되는 콘텐츠로 여러 시도 있었으나 유저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구조는 키썸의 앨범이 처음이다. 가요계 최초 시도인 것. 비트와 멜로디가 쌓여가는 과정을 하나씩 체험할 수 있는 뮤직체험 숲길, 이번 앨범의 상징인 ‘베어 트리스’를 형상화한 하늘섬 등 게임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가상의 맵이 흥미롭다.
메타버스형 쇼룸에서는 키썸의 신곡 소개 영상을 관람하고 새로운 프로필 사진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음원 사이트에 공개된 음원과는 다른 새로운 버전의 버추얼 앨범도 들을 수 있다. 오직 3명만 소장할 수 있는 NFT 포토카드도 경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낙찰자는 실물 오프라인 카드까지 받을 수 있고 추후 팬사인회, 콘서트 등 참여 특전이나 사인 앨범 CD 등의 특전을 받을 수 있어 가상을 넘어 현실까지 이어진다고 느낄 수 있다.
“저도 처음에는 NFT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실체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럼 우리가 실체를 구현하자’고 했어요. 유령 같은 것에 투자하면 투자자로서 불안할 수 있으니까요. 실체를 만들고, 최대한 볼거리가 있고 가치 있게 만들고 싶었어요. 미팅도 많이 했고요.”
“시국 때문에 직접 방문하는 게 어려운데 이런 메타버스형 쇼룸은 쉽게 즐길 수 있잖아요. 신선한 시도라고 생각해서 잘 되면 좋을 것 같아요.”
당초 ‘썸 아일랜드’ 프로젝트는 계절별로 다른 분위기의 곡을 발매하는 콘셉트라, 첫 번째 시리즈의 타이틀곡 ‘1위’는 봄에 맞는 곡을 발표한 것이었다. 이후 순서대로 발매하려 했으나 이번 곡은 겨울에 어울리는 곡이다. 키썸은 “처음부터 계절 콘셉트라고는 얘기하지 않아서 괜찮다”고 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코로나19 때문에 고비가 있었어요. 이 시기에 앨범을 내면 회사에 부담이 갈 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죠. 이제 슬쩍 괜찮아진 것 같아서 앨범을 내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사실 회사에서는 ‘언제든지 앨범을 내고 싶으면 낼 수 있다’고 해주는데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마음이 그렇지 않거든요.”(웃음)
긴 공백기 동안 키썸은 개인 방송 플랫폼 트위치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거나 유튜브에서 일상을 공개했다. 앨범을 내지 못하는 대신 각종 OST나 컬래버레이션 곡을 간간이 발표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의외인 것은 가수 이홍기, 디오, 시우민, 윤지성 등이 군 복무 시절 참여한 6·25전쟁 70주년 육군 창작뮤지컬 ‘귀환’에 장교 역할로 출연한 것이다.
“제가 거절을 잘 못해요. ‘내가 무슨 뮤지컬이냐’라면서 몇 번 거절했었는데 설득과 미팅 끝에 하게 됐어요. 뮤지컬을 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았는데 직접 해보니 더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제가 그 입장이 되니까 ‘진짜 어떻게 하지? 이걸 어떻게 하지?’ 싶었는데 하니까 또 되더라고요. 제가 연기에 관심은 많지만 잘하지 못하니까 또 기회가 있다면 배워서 해보고 싶어요.”
지난해 9월 진행한 오프라인 단독 콘서트는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된 계기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공연에만 참여하다가 오랜만에 직접 팬들과 대면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시 좀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독 콘서트도 데뷔 후 처음이라 두 번 다시 잊지 못할 공연이 됐다. 재작년에도 콘서트 준비를 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무산되면서 반신반의했는데, 극적으로 팬들의 얼굴을 보게 돼 감사한 마음이 100%였다. 콘서트장에 와준 것만으로도, 그동안 키썸이라는 존재를 잊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 노래를 부르며 울컥했다.
“이전에는 가수들이 공연이 끝나면 백스테이지에서 공허함이 몰려온다는 것에 공감하지 못했었거든요. 저는 공연을 하고 나면 아드레날린이 치솟아서 집에 와서 파티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저만의 공연을 끝내고 나니까 그런 공허한 마음이 어떤 것인 줄 알겠더라고요.”
많은 감정을 겪고 발표하는 앨범이라 별다른 평가보다 거두절미하고 “좋다”는 말을 듣고 싶다. 새로운 스타일이 대중에게도 잘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제나 음원 차트 1위가 소망이었지만 최근 음원 차트 벽이 높아지면서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기대는 줄어들었다. 다만 기다려주는 팬들과 앨범 작업을 도와주는 스태프들을 위해, 또 계속 음악을 하고 싶은 스스로를 위해 차트인을 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간 ‘경기도의 딸’ ‘언프리티 랩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어온 그에게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Mnet ‘언프리티 랩스타’(2015) 같은 프로그램이 또 있다면 출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 막 이름을 알리던 당시, 대중에게 이미지가 각인될 수 있었기에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한번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
“제게 많은 기회를 주셨으면 해요. 예능도 많이 나가보고 싶거든요. TV 보는 걸 좋아해서 웬만한 예능은 다 봐요. ‘놀면 뭐하니?’나 ‘유 퀴즈 온 더 블록’,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를 좋아해요. 특히 ‘꼬꼬무’는 제가 리액션이 커서 섭외해 주시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인간 조혜령으로서는 무탈하게 살고 싶어요. 아무 구설수 없이, 병도 안 걸리고. 예전에는 짧고 굵게 살고 싶었는데 이제는 얇고 길게 살고 싶어요. 래퍼 키썸으로서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구설수를 최대한 피하고 아프지 않고 기회를 잘 잡아야겠죠? 열심히 단련하고 있다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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