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레터 이브닝(1/21) : 역사 속 이성계의 말과 학대 논란

김민표 D콘텐츠 제작위원 2022. 1. 2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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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보는 뉴스 요약, 스브스레터 이브닝입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동물은 배우이기도 하죠. 드라마 스토리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요.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은 시대적 배경이 배경이니 만큼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드라마에 등장한 말이 촬영 뒤에 죽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동물학대 논란에 휩싸였네요. 비난 여론이 뜨거운데요, 드라마는 2주 동안 결방되고 제작진은 고발당하기도 했죠. 역사 속 이성계의 말 얘기부터 해 볼게요.
 

이성계에게 여덟 마리의 준마가 있었으니…

학창 시절에 한 번쯤 배웠을 '용비어천가'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탔던 말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요, 이성계에게는 팔준, 즉 여덟 마리의 준마가 있었다고 해요. '용비어천가'가 조선 개국의 정당성을 미화하기 위해 만든, 그래서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는 기록이니까 말도 칭송의 상징으로 동원된 면이 있다고 봐야죠.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성계와 말은 각별한 관계였을 것으로 보이네요. 전쟁이나 사냥할 때 말과 관련된 일화가 여러 차례 등장하거든요. 김재은 문화재청 학예연구사가 쓴 글을 잠시 인용해 볼게요.
 
용비어천가 30장에도 태조의 말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청년 태조가 장단(長湍)에서 사냥을 할 때 '오명적마(五明赤馬)'를 타고 높은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고개 아래는 낭떠러지였다. 이때 갑자기 노루 두 마리가 튀어나와 달아나자 태조는 말을 달려 노루를 쫓아갔다. 기어코 화살을 명중시켜 노루를 쓰러트리고는 급히 말머리를 돌려 멈췄는데, 절벽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거리였다. 사람들이 기예에 가까운 태조의 솜씨에 탄복하자, 태조가 웃으며 "내가 아니면 멈출 수 없다"고 자부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임금이 될 사람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재로 활용되었는데, 여기에 등장한 '오명적마'가 팔준의 하나인 '발전자'다.
출처: 한국일보 (글/김재은 문화재청 학예연구사)

이 글에서 팔준 중에 '발전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팔준에게는 이처럼 이름도 다 있었다고 하네요. '유린청, 추풍오, 현표...' 이런 식이었죠. 이 가운데 유린청은 이성계가 요동 정벌하러 출정할 때 탄 말이라고 하고요. 세종은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팔준을 그림으로 남기도록 했고, 숙종 때도 팔준의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는데요. 세종 때의 팔준 그림은 임진왜란 이후 사라지고 지금은 숙종 때 그림이 남아 있죠. 김재은 학예연구사는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국왕의 권위, 왕실의 위엄을 강조하고자 할 때 창업주 태조와 그의 팔준도가 효과적인 정치적 상징으로 지속적으로 소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요, 그만큼 이성계의 말은 후세에 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죠. 조금 전에 설명드린 '발전자'라는 말 그림을 잠시 보시지요.
사진 출처=한국일보

이성계가 말을 타고 낙마하는 장면을 표현한 드라마 장면이 있었는데요, 그 말이 결국 죽어서 학대 논란이 뜨거워요. 사진 속 말과는 너무 다른 상황이죠.
 

"말의 발 묶인 채 촬영…동물 학대"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이 주말에 편성돼 있는데요, 내일(22일) 모레(23일), 그리고 다음주까지 결방돼요. 드라마 촬영장에서 동물학대했다는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죠. 논란은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가 '태종 이방원' 촬영장에서 말이 강제로 바닥에 넘어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면서 확산됐는데요, 이 장면은 이달 1일 방영된 드라마 7회의 이성계 낙마 장면이었죠. 말의 발목에 와이어를 묶어 앞으로 넘어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촬영이 진행됐다고 단체 측은 주장했죠.
사진 출처 = 동물자유연대
동물보호단체들은 이런 방식의 촬영이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한 동물보호법에 위반되는 학대 행위라고 비판하며 말의 생존 여부 확인을 요구했고요. ▷ [관련영상 보기] 달리는 말 넘어뜨려 '잔인한 학대 연출' K드라마에 분노 폭발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612437 ]
동물권 보호단체 '카라' 홈페이지에는 드라마 제작진에게 보내는 공개 질의도 있군요.
 
['태종 이방원' 제작진에게 답변을 요구합니다.]
1. 동물촬영에 앞서 동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었습니까?
2. 발생할 지 모를 현장 사고 대처를 위해 수의사가 배치되었습니까?
3. 해당 프로그램의 7회 낙마 장면 속 모든 말의 안위를 공개해 주십시오
출처: '카라'

말은 결국 죽어…동물보호단체, 제작진 고발

KBS는 입장문을 통해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나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후 돌려보냈고, 최근 말의 상태를 걱정하는 시청자들의 우려가 커져 건강 상태를 다시 확인한 결과 촬영 후 1주일쯤 뒤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사과했죠. 하지만 여기서 논란이 마무리되지 않았죠.

동물보호단체들은 드라마 제작진을 경찰에 고발했죠. 동물권 보호단체 '카라'는 "KBS는 이번 일을 '안타까운 일' 혹은 '불행한 일'로 공식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 참혹한 상황은 단순 사고나 실수가 아닌, 매우 세밀하게 계획된 연출로 이는 고의에 의한 명백한 동물 학대 행위"라면서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는 이번 상황을 단순히 '안타까운 일' 수준에서의 사과로 매듭지어선 안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네요.

사진 출처 = 카라
한국동물보호연합도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드라마 제작진이 낙마 장면을 촬영하며 말을 일부러 넘어뜨려 죽게 하는 학대를 했다. '태종 이방원'에서 예전에도 야생 동물을 그냥 죽이고 새 다리를 부러뜨리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내부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어요. '카라'와 별도로 제작진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요.
 

청와대 게시판·KBS 게시판에 비난 쇄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방송 촬영을 위해 안전과 생존을 위협당하는 동물의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방송 촬영을 위해 동물을 소품 취급하는 K** 드라마 연재를 중지하고 처벌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와 동의 수가 올라가고 있죠.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도 동물 학대를 비난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고 있네요.
배우들도 SNS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요, 고소영 씨는 "너무해요. 불쌍해"라는 글과 말이 넘어지는 사진을 올렸어요. 김효진 씨는 "정말 끔찍하다. 배우도 다쳤고, 말은 결국 죽었다고 한다. 스턴트 배우도 하루빨리 완쾌하길. 촬영장에서의 동물들은 소품이 아닌 생명"이라고 적었고요.
 

제작 현장의 동물보호, 가이드라인 만들어지나?

모처럼 정통 대하 사극이 부활됐지만, 동물학대 논란으로 의미가 퇴색하고 있는데요, 시청자들의 의견을 보면 드라마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동물학대에 대한 공분 지수가 커 보이네요. 동물보호의 가치가 높아지는 시대적 흐름을 드라마 제작진이 읽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으로 들리고요. 동물자유연대 성명서를 보면 가이드라인이 없다고 해요.
 
동물자유연대가 KBS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의 윤리강령을 살펴본 결과 동물에 대한 언급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해당 가이드라인 19번항목 2-3에서 동물 촬영에 대한 규정을 기재하고 있기는 하나 이는 자연이나 야생동물 등을 대상으로 촬영할 때 지켜야 할 규정일 뿐 '동물 배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게다가 몇 가지 규정한 사항조차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의 내용만을 담고 있어 방송 제작 과정에서 동물이나 생태에 대한 고차원적인 이해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처럼 약자를 도구화하는 촬영 관행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며, 그 출발점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출처: 동물자유연대

동물을 소품화하거나 도구화하는 촬영 관행에 대한 경고인데요, '태종 이방원' 동물학대 논란이 동물이 등장하는 드라마 촬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겁니다.
 

오늘의 한 컷


조계사에서 열린 대규모 승려대회 사진이에요. 대회 이름은 '종교편향, 불교왜곡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고요, 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문화재관람료 비하 발언, 정부의 천주교 캐럴 캠페인 지원 등을 비판하기 위해 전국의 스님들이 모였죠. 정부를 비난하는 발언이 쏟아졌다고 하네요.


[ http://news.sbs.co.kr/news/sbsletter.do ]

김민표 D콘텐츠 제작위원minpy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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