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의 묵언]양자토론은 양당독재의 폭력이다

김택근 시인·작가 2022. 1. 21. 17:5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국민의당 중앙선대위 이신범, 신용현 공동선대위원장과 권은희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원들이 2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기득권 야합 불공정 TV토론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거대 양당이 자기네 대통령 후보끼리만 1 대 1 TV토론을 하겠다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결정하고 방송3사가 이를 받아 공공의 전파를 두 후보에게만 제공하기로 했다. 명백한 선거폭력이다. 이재명과 윤석열 중에 한 사람만을 선택하라는 강요이다. 반도덕, 반민주, 반헌법적인 폭거이다. 헌정사에 이런 반칙은 없었다. 반발이 거세지자 나중에 4자토론 개최를 검토해보겠다고 한다. 숨 가쁜 선거판에 나중이란 없다. 도대체 양당의 이런 오만과 불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심상정, 안철수는 어디서 주워온, 나중에 슬쩍 끼워주는 가련한 후보가 아니다. 토론장에 앉을 자격을 갖추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마련한 요건에 부족함이 없다.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온갖 저주를 서로에게 퍼붓고는 정작 안철수, 심상정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알권리는 양당이 담합하여 짓밟고 있다.

김택근 시인·작가

물론 그 이유를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심상정, 안철수란 거울에 비친 양당 후보의 일그러진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비춰질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수직으로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이건만 아예 입장 자체를 막으려는 것이다. 앞으로는 공정과 상식을 외치면서 뒤로는 자기들끼리 눈을 깜빡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례가 없는 불공정한 토론에 선관위는 뒷짐을 지고 있다. 이를 저지할 명령은 내릴 수 없다 해도 공정한 게임을 촉구하는 의견은 피력해야 하지 않는가.

지금은 양당독재 시대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의석을 독식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대통령은 일찌감치 지지자들이 쳐놓은 병풍 뒤로 숨어버리고 양당은 그들만의 리그를 벌여왔다. 양당은 거침없이 폭주했다. 그리고 양당은 싸우다 닮아버렸다. 나만의 착시는 아닐 것이다. 똑같이 보수 색깔의 옷을 맞춰 입고 차별금지법 같은 약자를 위한 법안은 이리저리 밀치며 딴전을 피웠다. 선거판의 공약도 그만그만하다. ‘너만 퍼주냐, 나도 퍼준다.’

예상했지만 공영방송이 수상하다. 양당독재의 살기(殺氣) 앞에 주눅이 들었는지 아님 자발적인 협력인지, 국민의 전파를 함부로 사용(私用)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철에 보아온 낯익은 풍경이 다시 펼쳐지고 있다. 양자토론을 고민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한술 더 뜬 모양새다. 방송생태계는 달라진 것이 없다. 이런 사태가 올 줄 알았다.

“공영방송이 바로 섰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편파방송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 정권 말기에는 살벌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그럼에도 지배구조 개선 등 개혁에는 손을 놓고 있다. 풍찬노숙을 하면서도 정론을 외치던 그때를 잊었는지.”(경향신문 2021년 10월30일)

방송뿐이 아니다. 그동안 언론들은 제3후보들의 정책이 ‘안 보인다’(특히 정의당을 겨냥)고 아무 때나 나무랐지만 사실은 정책을 ‘보지 않는다’가 맞는 말이다. 아무리 무겁고 심각한 정책(주4일 근무제나 기후위기 대책 등)을 내놓아도 언론이 외면하니 폭발하지 않고 휘발해버렸다.

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얘기를 해보겠다. 지금 날마다 쏟아내는 양당의 정책에는 거대 담론이 보이지 않는다. 약점이 많으면,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작은 것에 집착한다. 스스로 예를 갖추지 않으면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없기 때문이다. 거대 담론을 생산할 동력은 후보의 철학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양당 선거진영에 알게 모르게 몸담고 있는, 소위 ‘양식 있는’ 인사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이런 선거판을 어떻게 소화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과거를 소환함이 가혹할지 모르지만, 그들도 한때 정의를 외치며 현실 속에 뛰어들어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 아닌가. 선거가 얼음보다 차갑다지만 그들의 가슴은 여전히 뜨거울 것이라 믿는다. 선거판 광기(狂氣)가 가신 밤늦은 시간에는, 그들의 마지막 술잔에 눈물 몇 방울이 섞여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잘사는 게 무엇인가. 우리 사는 나라가 이렇게 작았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피 흘리며 갈고닦아온 이성과 공동선이 겨우 이 정도인가. 우리에게는 독재만은 꼭 무너뜨렸던 빛나는 과거가 있다. 우리 사회 집단지성이 양당독재의 음모를 깨뜨릴 것이다. 양당독재의 폭력, 양자토론은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 법원도 공정과 상식 그리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김택근 시인·작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