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뽑자 재하도급]③ 감리·감독 강화 시급.. "근본적으론 시간·돈 더 들여 지어야"
광주광역시 화정아이파크 붕괴와 같은 후진적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불법과 편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재하도급 문제를 근절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재하도급 과정에서 안전과 비용을 맞바꾸고, 부실시공의 단초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무력한 감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했다. 유명무실한 처벌·제재 규정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결국 본질은 충분한 기간 필요한 만큼 돈을 들여 건물을 짓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부실 감리는 이제 그만… 실질적 관리·감독 필요성
지난 18일 언론을 통해 공개된 화정아이파크에 대한 지난해 4분기 감리보고서에는, 사고가 난 201동 28~38층의 ‘바닥 철근배근 및 거푸집 설치’ ‘벽체 철근 배근’ 등 검측 항목에 대한 결과가 모두 ‘적합’으로 판정됐다. 재하도급 정황 속에서 콘크리트 타설 관련 부실 공사가 이번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감리보고서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수사기관은 부실 감리 가능성을 두고 관련자 3명을 입건해 조사 중이다.
감리는 공사 현장에서 품질과 공정, 안전을 확인·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시공이 설계에 따라 적합하게 이루어지는지를 점검하고, 공사에 위법사항이 있는지도 감시한다. 계약을 위반해 이뤄지는 공사에 대해서도 감리가 시정하도록 요구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감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예를 들어 종합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후 현장에 감리 담당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런 사람들의 경우 인맥이 다양하다 보니 불법적인 재하도급이 생겨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한 건설 현장 관계자는 불성실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감리인이 확인을 늦춰 공정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면서 “예를 들면 철근 배근 준비를 다 하고 감리를 요청했는데 개인 사정을 핑계로 다음날로 미루는 경우도 있었다. 솔직히 감리 능력에 대한 신뢰성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감리가 공사 과정을 제대로 감독하도록 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현장 업무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주무관청의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영준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감리가 제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인허가권자가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면서 “인력 부족 문제로 모든 현장에 공무원을 파견할 수 없다면 용역이라도 줘서 현장을 점검해 관리·감독을 내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솜방망이’ 제재·처벌 규정도 강화해야
재하도급 관련 처벌 규정이 너무 약할뿐더러, 그나마도 현장에 적용도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재하도급 방지를 위한 법적 제재는 국회에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재하도급의 요건을 더 제한하고, 재하도급을 하더라도 1차 도급업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구체적으로 수급업자에게 전문적 기술이 부족한 경우에만 재하도급을 가능하도록 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재하도급하더라도 수급업자가 안전관리와 손해배상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본격적인 심의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이종배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을 심사할 법안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아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국회 국토위 관계자 역시 “재하도급 관련 법안은 법안 심사 순서가 아니었다”며 “다만 지난해에도 학동 철거 현장 붕괴 사고 이후 철거 현장 안전과 관련된 법안을 연말 국회에서 우선 처리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앞당겨 논의·처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재하도급 문제를 적발할 현장 감독 인원을 대폭 늘리고, 일본 등 선진국의 사례를 따라 처벌 규정을 강화해 편법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우회하는 사례를 원천 봉쇄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거론된다.
◇ 본질은 공사비·공기… “제대로 값 치른다는 인식 자리 잡아야”
건설 현장에서는 결국 낮은 공사비와 공기에 대한 압박이 재하도급 관행의 양분이 되고 있다고 본다.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사 단가는 낮추고 공사 기간은 최대한 짧게 할 필요가 있다. 재하도급은 이같은 비용·시간 압박에 건실한 공사와 안전을 타협하면서 가장 손쉽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난 2020년 11월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공공공사 10건 중 4건이 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가 받은 계약 금액이 실제 공사에 들어간 비용보다 적다는 의미다. 공공공사만 수행하는 업체 1049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9.64%였고, 적자 업체 비중은 39% 수준이었다.
그나마 공공공사의 경우 사업 규모가 300억원 이상이면 종합심사제, 100억원 이상이면 적격성 검토를 거쳐 공사비를 책정한다. 최저가 낙찰제로 인해 발생하는 과도한 가격경쟁과 부실 공사, 저가 자재 사용 등 부작용을 막겠다는 취지다. 그런데도 공사를 맡은 업체들의 40%가 적자를 본 것이다.
이런 제도마저 없는 민간공사의 경우 저가 경쟁이 여전하다. 한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는 “저가 입찰하고 단가 낮게 받으면 하도급사에서 직접 월급제로 채용할 수 있는 인력은 30%에 불과하다”면서 “원청에서 저가로만 내려보내면 우리도 부족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편법 재하도급 형태로 인력을 조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건설 현장 관리자는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과 관련해 만악의 근원은 공사 기간이라고 봐야 한다. 이번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도 결국 공기를 맞추기 위해 겨울철 콘크리트 양생을 소홀히 하면서 속도를 낸 것이 직접적 이유 아닌가”라고 했다. 그는 “재하도급 역시 건설 품질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어떻게든 싸고 빠르게 기한만 맞추기 위해 써먹는 꼼수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결국 건설 현장의 안전과 공사 품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비용 인상을 감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모든 변수를 감안해 아파트를 짓는다면 분양가가 최대 2배 이상 오를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물론 인상된 비용이 공사에 제대로 쓰이는 것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전제하에서다.
하지만 여건이 갖춰졌다고 해도 시장이 실제로 비용 인상을 감내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한번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공 영역뿐 아니라 조합 등 민간 입장에서도 경쟁 입찰을 진행할 때 공사 가격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며 “결국 관건은 안전 시공을 위해 늘어난 공사비를 감수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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